세계경영연구원(IGM)이 기업의 오너·전문경영인·관리자에게 물었다.
선거의 계절이 왔습니다.
투표일은 4월 15일, 4월 2일 자정부터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었으니까 후보자가 선거 유세하는 기간은 2주일 남짓입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연설하는 일은 없을 듯합니다. 조용한 선거가 될 것 같은데요.
길거리 선거 유세를 하기 곤란한 요즘, 후보자들은 온라인 매체를 이용해서 동영상과 SNS로 공약을 발표합니다.
늘 그래 왔듯이 지하철을 놔주겠다,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해 주겠다, 복지시설을 지어주겠다,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겠다 등의 공약을 제시하고 유권자에게 표를 부탁합니다.
후보자의 공약에서 사실과 의견, 유토피아를 만들어 줄 듯한 ‘일방적인 주장’을 가려내야 합니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하는데, 여기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선택적 주의, 확증편향이 작용하지 않았는지 의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지역을 위해서 일할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세계경영연구원(IGM)이 기업의 오너·전문경영인·관리자 100명에게 다음 질문을 했다.
“부하 직원의 잘못된 보고서 때문에 의사 결정 시 그릇된 판단을 한 경험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4명이 ‘많다’, 78명이 ‘조금 있다’라고 답했다.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82퍼센트 응답자가 보고서의 오류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이다. 경영자·관리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실무자가 쓴 보고서를 보고 결정한다. 중대한 사업에서 ‘잘못된 보고서’로 인해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경영자는 보고서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 같은 설문 조사에서 부하 직원의 보고서에 ‘만족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24명이었다. 55명은 ‘그저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조미나·이경민, [잘못된 보고서 한장에… 비용 팍팍 늘고, 社運까지 영향 미친다], (조선일보 위클리
세계경영연구원의 설문조사처럼 그릇된 판단을 했다는 대답이 80퍼센트가 넘게 나온 결과를 작성자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보고서를 쓰기 전에 작성자는 방향과 결론을 정한다. 시장조사 보고서는 기업에서 사업 방향을 어느 정도 결정한 상태에서 쓴다. 작성자는 관성에 의해서 기업에서 정한 사업 방향을 따르는 쪽으로 자료를 모은다. 사업성이 없다는 결론을 경영자가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추진하기로 잠정적으로 결정하고 쓰는 보고서는 사용자·소비자 수요를 이상적으로 책정한다. 현재 수요가 적어도 환경 변화, 시장 확대, 트렌드 등의 이유를 들어서 점진적으로 수요가 늘어난다는 전망을 보고서에 쓴다. 보고서를 검토하는 상사와 경영자는 각종 근거자료와 함께 제시한 장밋빛 예측을 믿는다. 작성자는 경영진의 사업 방향에 맞춰서 ‘시장성이 있다’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시장조사를 한다. 결론을 정해놓고 쓴 보고서에는 사업 방향을 거스르는 자료나 의견은 없다. 경영자는 이렇게 쓴 보고서에 기초해서 의사결정을 한다. 실제로 시장 상황이 장밋빛 전망대로라면 경영자의 결정은 틀리지 않겠지만, 보고서 결론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면 잘못된 결정이 된다.
세계경영연구원의 조사 결과는 ‘보고서 때문에 그릇된 판단’을 했다는 응답이 82퍼센트였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이다. 경영자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를 작성한 과정을 살펴보면, 그 배경에는 경영자의 생각과 사업 방향에 맞추려고 고민한 작성자가 있다.
직원이 쓴 보고서에 기업에서 정한 방향을 거스르는 자료, 경영자의 생각에 반대하는 결론이 나오기 어렵다. 정부의 사업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토지개발, 신도시 개발, 신공항 개발, 지하철·도로 건설, 발전소 건설 등 대규모 사업은 공청회를 열고 사업성 평가 보고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쓰지만 정권·정책, 기관장이 바뀔 때마다 흐름이 바뀐다. 최고 결정권자의 생각에 따라 다른 결론을 제시한다.
기업 내부 보고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결론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윗선으로 올라갈수록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런 본성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하는 일이 잘 될수록,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하게 나타난다. 인간의 본성은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칵테일파티 효과,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요? ”라는 대사에도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간의 본성이 나타난다.
본성, 즉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특성을 바꿀 수는 없다. 사업 방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결론을 제시하려면 사실과 의견, 주관적인 평가와 근거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
사실과 의견을 분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사실과 의견은 표현을 다르게 한다. 사실은 ‘보았다’ , ‘들었다’ , ‘했다’라고 표현한다. 의견은 ‘좋다’ , ‘될 것이다’ , ‘예상한다’라고 표현한다.
표현이 다르지만 의견을 사실로 혼동하는 이유는 근거 때문이다. 의견·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적인 근거 때문에 읽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사실처럼 받아들인다. 작성자가 의견과 함께 근거를 제시하고 단정적으로 표현하면 읽는 사람은 사실과 의견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이런 오류를 방지하려면, 반대 의견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하면 시장 여건이 개선되어 신상품의 반응 역시 예상치를 웃돌 것으로 예측된다.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려면 2개월 동안 주문 수량과 반품률, 시장 점유율 자료 등을 분석해야 한다. 분석에 필요한 자료는 2주 후에 나오니 소비자 반응에 관한 보고서는 2주 후에 작성한다. 최종 판단은 소비자 반응에 보고서를 보고 판단한다.”
문장에서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라는 표현은 의견이다. ‘분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2주 후에 작성한다’는 판단을 유보한다는 결론을 나타낸다.
둘째, 어디부터 어디까지 의견인지 명확하게 밝힌다. “개인적인 의견 은” , “자료를 분석한 작성자 생각을 덧붙이자면” 등의 표현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 의견임을 적극적으로 알린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의견에서 단정하는 표현은 삼간다. 근거 없이 ‘현재까지 상품 반응은 매우 좋다’ , ‘점유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라는 표현은 ‘단정’이다. 단정적인 표현은 의견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정치인은 단정적인 표현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들은 ‘복지시설을 만들겠습니다’ , ‘예산을 확보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의견을 사실처럼 이야기한다.
보고서 작성자도 정치인과 비슷하게 의견을 사실처럼 단정해서 표현한다. 자기가 쓴 보고서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신념이 강할 때, 사업부에서 오랫동안 추진해온 일을 보고할 때 단정적인 표현이 자주 나온다. 의견과 사실을 구분해야 신뢰할 수 있는 보고서가 나온다.
보고서를 쓴 후에 사실과 의견을 구분했는지 확인하려면 다음 세 가지를 검토한다.
· 사실과 의견을 명확하게 구분했는가?
· 제시한 사실은 정확한가? 근거, 출처를 확인했는가?
· 논리적인 근거가 명확한가? 제시한 근거가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았는가?
인터넷, 논문, 책, 기사 등의 참고자료를 인용해서 의견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때는 단정해서 표현하지 말고 따옴표를 이용해서 원문을 그대로 옮기고 보고서를 읽는 사람이 정보를 직접 찾아볼 수 있게 출처를 밝힌다.
이제 결론을 말하면,
보고서는 반드시 사실에 기초해서 쓴다.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 직접 겪은 일이다.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도, 출처가 분명한 정보 또는 참고 자료를 통해서
알게 된 것, 다양한 분야의 지식은 사실에 포함된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본 사실을 모아서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쓰는 것은 추측성 의견이다.
사실처럼 보이는 작성자의 평가, 의견, 추측을 확실히 구분한다. 사실과 의견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으면 잘못된 판단, 결정으로 손실을 볼 수 있다.
출처
참고문헌
조미나·이경민, [잘못된 보고서 한장에… 비용 팍팍 늘고, 社運까지 영향 미친다], (조선일보 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