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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전달자 정경수 May 15. 2020

모든 생각은 숙성해야 완전해진다

집중해서 생각했다면 실행하기 전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상품기획, 마케팅 기획, 이벤트 기획, 콘텐츠 기획, 다양한 영역의 기획회의를 했습니다.

기획팀에서 꽤 오래 일했는데, 기획회의를 한 번에 끝낸 적은 없습니다.

기획 업무 프로세스는 대기업, IT기업, 중소기업, 1인 기업 모두 같습니다. 규모가 작으면, 여러 가지 이유로 부수적인 업무 또는 검증 과정을 축소하거나 생략합니다. 생략한 업무 과정으로 시간은 단축되지만 기획의 치밀함과 맞바꾼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획회의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저는 콘텐츠 개발 회의를 세 번에 나눠서 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회의에서는 기획할 안건을 브리핑하고 문제 또는 이슈를 공유합니다.

두 번째 회의는 며칠 후에 소집합니다. 구성원들이 조사한 자료를 한 데 모으고 아이디어 개발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합니다. 각자 생각한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구성원이 수집한 자료만 봐도 기획 방향을 맞출 수 있습니다. 엉뚱한 자료를 수집한 구성원에게 이유를 물어보고 그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각자 수집한 자료에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간단히 의견을 나누고 내용을 훑어보면서 중요한 부분을 표시하고 다른 구성원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다음날 세 번째 회의를 진행합니다. 세 번째 회의에서는 두 번째 회의에서 나온 구성원의 아이디어가 섞이고 숙성되어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순조롭게 나옵니다.


때로는 엉뚱한 자료에서 힌트를 얻어서 색다른 방향으로 기획안이 나오기도 합니다.

첫 번째 회의를 하고 며칠 있다가 두 번째 회의를 하는 이유는 자료를 찾는 기간을 충분히 갖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 회의를 하고 바로 다음날 세 번째 회의를 하는 이유는 구성원이 수집한 자료를 공유하고 자기 생각과 구성원의 생각이 물리적, 화학적 작용을 일으켜서 떠오른 기발한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회의를 세 번에 나눠서 진행할 때, 구성원이 각자 조사한 자료를 공유하는 두 번째 회의에서 가장 많은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물론 정리되지 않은 아이디어지만, 이 과정에서 구성원은 각자 조사한 자료를 공유하면서 자기가 발견하지 못한 내용과 생각하지 못한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양적으로 많은 자료를 검토했다면, 자료를 덮어두고 쉽니다. 다른 분야의 일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쉬거나 다른 일을 하는 동안에도 머리에서는 자료의 조각들이 기존의 지식과 계속 연결되고 아이디어가 나올 듯 말 듯 합니다.

저는 자료를 집중해서 검토하고 하루, 적어도 반나절 정도 의식적으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무실 밖을 나와서 동네를 한 바퀴 돌기도 합니다. 모아둔 자료를 덮어두고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데도 생각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자료를 볼 때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이 생기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럴 때 그 자료를 다시 살펴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아이디어가 나오는 과정을 준비-부화-발상-검증, 네 단계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각각의 과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연속적으로 진행된다.

부화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아이디어 숙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는 이전부터 무의식에서 숙성된 결과다.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화요일 오전 10시에 아이디어 회의를 시작한다고 일주일 전에 공지하고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세 개 이상 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어도 좋은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는다. 어떤 때는 회의를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연쇄적으로 서너 가지씩 떠오르기도 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이면에는 수집한 자료를 읽고 또 읽으면서 생각하는 시간이 있다. 기획자가 가만히 있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게 아니다. 책상 앞에서 자료만 본다고 열심히 일하는 것도 아니다.


회의를 통해서 아이디어를 찾는다면 브레인스토밍의 단점과 한계를 이야기할 게 아니라 생각이 숙성되는 시간을 인정해야 한다.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회의를 해도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면, 구성원이 각자 생각을 숙성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바람직하다.


좋은 아이디어는 생각에 집중할 때보다 한 걸음 물러서 있을 때 나온다.

기획안을 제출해야 하는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생각만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면 잠들기 전에 많은 자료를 검토한다. 며칠 동안 잠들기 전에 기획에 필요한 자료를 반복해서 읽고, 중요한 내용을 체크하면 잠을 자는 동안 생각이 숙성되어 다음날 또는 며칠 뒤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 많이 떠오른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다이어리나 노트에 적어두고 다른 일을 한다. 운동이나 산책, 잠을 자는 것도 좋다. 그러는 동안 무위식에서 아이디어에 오류가 없는지, 타당한지 검증한다.


아이디어를 숙성하려고 반드시 잠을 잘 필요는 없다. 수면이 생각을 정리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후에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서 눈을 감고 편안히 쉬기만 해도 동일한 효과를 얻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뇌에 입력되는 정보를 차단하면 생각이 정리된다.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 좋지만 여건상 그럴 수 없을 때는 조용한 곳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아이디어를 숙성하는 시간에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게 좋다. 쉬는 동안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 생각을 정리하는 효과를 볼 수 없다.

화면을 통해서 의식 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차단해야 생각이 정리된다. 아이디어 숙성은 발산과 수렴 중 어디에 속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발산과 수렴의 중간에 해당한다. 아이디어가 숙성되는 동안 아이디어 발산 과정에서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아이디어에 집중하면 나머지 아이디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 아이디어에 수렴하기도 한다.


심리학자 도널드 캠벨은 아이디어 숙성 단계를 발산과 수렴 사이에 다리를 놓아 연결한다고 말하며 ‘아이디어가 정처 없이 흐르는 상태 ’라고 했다. “걷는 시간은 가치 있다. 차를 타고 간다면 라디오를 켜지 말아야 한다. 창의력이란 낭비적인 프로세스이다. 정신적으로 정처 없이 흐르고, 마음 또한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프로세스다. 만일 당신의 정신이 라디오나 TV, 다른 사람과 대화에 의해 움직인다면 지적으로 탐험할 시간을 잘라내 버리는 것이다.”

도로시 레너드 지음, 나상억 옮김, 《스파크》, (세종서적, 2001), 142쪽


그는 걷는 시간과 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 생각이 숙성되는 시간이며 이 시간에는 라디오나 TV를 끄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멈추라고 했다. 아이디어를 내는 시간만큼 숙성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뉴욕대학 신경과학과 릴라 다바치 박사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우리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에게 여러 가지 영상을 20분 동안 보여주고 8분 동안 눈을 뜬 채로 쉬게 했다. 영상을 본 다음 쉬는 동안 뇌 활동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관찰했다. 영상을 보기 전에는 평온했던 뇌가 영상을 보는 동안, 장기기억과 공간을 지각하는 해마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시각피질 사이에 상호작용이 활발해졌다. 이런 상호작용은 영상을 보고 나서 쉬는 동안에도 계속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쉬는 동안 자기가 본 영상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뇌에서는 영상에서 본 내용을 저장하고 과거의 정보와 연결하는 상호작용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KBS 〈과학카페〉 기억력 제작팀 지음, 《기억력도 스펙이다》, (비전코리아, 2013), 169쪽


아이디어 개발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집중하는 작업이다. 집중을 하면 시야가 좁아진다. 집중(集中)이 ‘ 한 곳으로 모은다’라는 의미다. 좁아진 시야를 넓혀서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려면 잠시 생각을 중단해야 한다. 집중을 멈추면 아이디어가 숙성된다.

집중을 멈추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산책은 공간을 이용해서 아이디어를 숙성하는 방법으로 이미 검증되었다. 가벼운 운동도 생각을 정리하고 아이디어 숙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집중해서 생각했다면 바로 실행하기 전에 숙성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출처

정경수 지음, 《아이디어 기획서 최소원칙》, (큰그림, 2019), 97~99쪽

참고문헌

도로시 레너드 지음, 나상억 옮김, 《스파크》, (세종서적, 2001), 142쪽

KBS 〈과학카페〉 기억력 제작팀 지음, 《기억력도 스펙이다》, (비전코리아, 2013),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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