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백을 뜨기로 했다. 낮 동안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팔로우 중인 뜨개 명인들의 피드에서 겨울 모자와 스웨터들이 아래로 밀리고 속속 가벼운 가방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민트, 벽돌, 겨자색과 상아색의 다양한 네트백은 구멍이 숭숭 뚫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얼핏 들여다보이는 게 매력이다. 그저 가볍게, 달랑달랑 들고 나서는 마실 가방. 실과 바늘이 만들어 낸 기하학적 무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중에서도 파인애플 무늬가 반복되는 갖은 색의 가방 사진에 매료된 나는 이후 이틀간 고민에 빠졌다. 눈을 감으면 색상별로 완성된 모습이 둥둥 떠다녔고, 눈을 뜨면 장바구니에 옵션을 달리해 담았다 뺐다를 반복했다. 지금 뜨고 있는 인형을 완성하고 해야 할 텐데, 지출을 좀 줄여야 하는데, 벽장 안에 저렇게 실이 많은데 또 실을 산다고? 대충 세어도 사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열 개가 넘었지만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 앞에서는 투명망토라도 뒤집어쓴 마냥 있어도 없는 척, 무시당할 뿐이었다. 그래, 망설이는 시간은 결제를 늦출 뿐이랬어.
다음 날 도착한 뜨개 키트는 분홍 상자에 단정하게 담겨 있었다. 색이 고운 실타래에는 역시 단정하게 종이 띠가 둘러 있었다. 코튼 100% 면사. 면이니까 보들보들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잔뜩 풀을 먹인 연줄처럼 뻣뻣했다. 네트백은 바닥재나 안감이 없기 때문에 안에 물건을 담아 들고 다니다 보면 늘어지게 마련인데, 그래서 이렇게 뻣뻣한 실로 만들어야 한단다. 게다가 늘어질 것을 감안하여 만들 때 짱짱하게 실을 당겨 떠야 한다. 미처 바닥면을 다 뜨기도 전에 실을 지탱하는 왼손 둘째 손가락 가운데에는 실이 지나간 자리가 선명하게 남았고, 5단 정도 더 떴을 즈음엔 슬슬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코바늘을 쥔 오른손도 험난하긴 마찬가지였다. 단단하고 억센 실로 빡빡하게 뜨려니 엄지가 빨갛게 부어올라 쓸리기만 해도 쓰리고 아팠다.
게다가 도안은 또 어떤가. 동그라미와 선으로 된 도안은 마치 고대의 비밀을 간직한 문서 같기도, 암호 같기도 하다. 매직아이 하듯 도안과 편물을 번갈아 보다 보면, 꼭 이전 단에 빠뜨린 코가 있거나 엉뚱하게 뜬 곳이 발견됐다. 풀고 다시 뜨고, 풀고 다시 뜨는 일을 반복하는 사이 손에는 물집이 잡히고 어깨는 단단히 뭉쳐왔다.
“오빠, 나 이거 너무너무 하고 싶은데 너무너무 그만하고 싶어!!”
새벽 한 시, 내 외침에 남편은 실소했다.
“너무 이해가 안 되는데 너무 알겠다. 그 맘.”
세 시간 동안 뜬 걸 다시 다 풀어놓고 자려고 눕는데, 손목과 손가락 마디마디가 누가 선풍기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시리기 시작했다. 내가 왜 내 돈 내고 이러고 있을까. 시린 손을 떨며 검색해봤다. 이삼 만원이면 근사한 네트백 완성품을 살 수 있었다(심지어 어떤 건 천 원대였다). 실값도 안 나오겠네. 하지만 어쩌겠나. 원체 이런 걸 좋아하는 것을.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 내 시력과 어깨를 희생하여 완성되는 잡동사니들, 구멍과 실이 만드는 파인애플 같은 것들.
하룻밤의 시행착오 끝에 네트백은 완성되었다. 처음 무늬 들어갈 때 실수로 몇 코 빼먹긴 했지만, 자세히 도안과 대조하지 않는 한눈에 띄지 않는 나만 아는 실수다. “그렇게 고생하더니 벌써 완성했어요? 수고했네. 예쁘다.” 하는 남편의 말을 등으로 들으며 벽장 문을 열었다. 오빠, 이제 시작이야. 일단 세 개만 떠볼게. 권투 선수 테이핑하듯 손가락 여기저기 붙은 밴드를 갈며 나는 다시 한번 도안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