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로서의 뜨개

by 숨님


선물에는 주고받는 물건 이상의 무엇이 담겨있다. 선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이 꽃인지 빵인지 아니면 작고 반짝이는 것인지, 그 사람에게 없어서 불편했던 것이 있는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주 눈길이 머물렀던 것이 있는지. 좋아하는 색은 검정인지 노랑인지. 나의 예산 안에서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물건을 고르는 것은 즐겁지만 피곤하고, 설레는 한편 막막한 일이다. 선물을 고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그를 생각하는 마음은 어떤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고민, 나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과정 그 전체가 선물이 된다.


대학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학부 때 수업에서 학자이자 전문가로서의 포스를 내뿜으며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강의를 주도하던 상냥했던 우리 교수님은 어디로 가신 걸까. 석사 1학기 첫 수업에 우리는 알았다. 내가 알던 교수님은 이제 없다는 걸.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을 쏘며 눈빛보다 날카로운 말로 가슴을 후벼 파는 동시에 피 말리는 질문과 침묵으로 심장을 조여오던 그녀. 겉모습은 분명 같은데 도무지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극명한 온도 차. 이제 막 들어온 석사 조무래기들은 그녀가 언제 웃을지, 언제 화낼지 짐작할 수 없어 늘 조마조마했다. 특히 나는 당시 학과 조교로 일하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논리적인 꾸중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는데, 교수님의 연구실이 있는 연구동 4층 복도를 밟으면 만성적인 기침이 더욱 심해지곤 했다. 보고하러 와서는 매번 거의 발작적으로 기침하는 나를 보고 교수님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얘, 너 무슨 신체화 같은 거 아니니?” 하며 정곡을 찌르곤 했다.


“머그컵?”

“교수님 방에 머그 백 개는 될걸.”

“홍삼 같은 건 어때?”

“드실까? 홍삼이 안 맞는 사람도 있대.”


해마다 스승의 날과 교수님 생일이 돌아오면 동기 선배들과 함께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무슨 선물을 할지 고민했다. 지금 같으면 김영란법에 저촉되어 부정 청탁으로 간주되었겠지만 때는 2008년, 김영란법이 발의도 되기 전이었다. 앞서 말했듯 선물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할 텐데, 교수님에 대해 우리가 가진 정보는 리어카에서 급하게 산 이천 원짜리 꽃다발만큼이나 빈약했다.


뜨개인 책상의 5월 모습





졸업을 하고 시간이 흘러 나의 스승보다 내 아이들의 스승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 되니 그때의 고민이 되살아난다. 교수님한테는 이틀 걸러 한 번씩 혼나기라도 했지, 어린이집 선생님과는 함께 보낸 시간도, 정보도 없다. 하는 수 없이 지역 맘카페에 들어가 ‘어린이집 스승의 날’, ‘스승의 날 선물’같은 걸 검색했는데, 작성날짜를 기준으로 3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답변은 비슷비슷했다. 만약 모든 이가 나처럼 검색하여 대세를 따르는 선물을 했다면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매년 스승의 날 디퓨저 수십 개가 놓인 방에서 핸드크림 수십 개와 바디용품 수십 개의 포장을 뜯으며 스타벅스 카드를 종류별로 모았을 테다.


이렇게 정보가 없을 때 뜨개 아이템만큼 선물하기 좋은 게 있을까. 우선 뜨개 아이템에는 ‘핸드메이드’라는 치트키가 적용된다. 같은 도안을 보고 만들었더라도 만드는 사람의 손 땀에 따라 완성작은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한 사람이 여러 개를 만들더라도 다 다른 게 뜨개의 허술함이자 매력이다. 해마다 5월이면 스승의 날과 어버이날을 겨냥한 도안과 DIY 키트가 인터넷 쇼핑몰 팝업창 뜨듯 여기저기서 올라온다. 카네이션 꽃송이, 카네이션 수세미, 카네이션 브로치, 파우치, 샤워볼, 열쇠고리, 책갈피꽂이, 머니 클러치…. 이제 더는 없다고, ‘카네이션’과 ‘뜨개질’을 가지고 나올 건 다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일 년 후 5월이면 또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한다. 그렇게 지갑이 열리고, 눈을 떠도 감아도 보이는 카네이션의 환영에 시달리며 어깨가 시릴 때까지 뜨다 보면 어느새 6월의 푸르름이 시작되고 여름 모자 도안이 다시 팝업창 뜨듯…….


일 년 후면 새로운 카네이션 아이템이 대거 등장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핸드메이드’라는 데에 혼자 의미를 부여하여 올해도 카네이션 수세미를 만들었다. 하나하나 비닐로 포장하고 굳이 ‘HANDMADE’ 스티커도 눈에 잘 띄도록 붙였다. 교수님께도 몇 년 만에 소식을 전하고자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같은 구성으로 선물을 준비하고 짧은 편지를 썼다. ‘학자에게 어울리면서도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고상하고 품격 있어 보이는 무언가’ 대신 핸드메이드의 위력에 의지하여 수세미를 담았다. 그러고보니 비싸고 부담스러운 선물보다 카드 한 장을 더 좋아하던 분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찾은 연구동은 변한 게 없었지만, 4층 복도에서 기침은 나오지 않았다. 연구실 문 앞에 박스를 놓고 돌아 나오며 친한 동기들에게 인증샷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나 교수님한테 수세미 선물한 사람이야] 한때 교수님 앞에 한없이 찌그러져 본 사람들만 아는 웃긴 이야기. 대화창에는‘ㅋㅋㅋㅋㅋㅋㅋㅋ’만 하염없이 찍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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