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시작
우리 집에는 일곱 살, 여덟 살 연년생 형제가 있다. 나는 아직 우리 집 어린이들과 함께 잔다. 어린이 침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편 옆에 나란히 누우면 침대 매트리스가 남편 쪽으로 미세하게 꺼져 몸이 기우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그냥 어린이들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매일 밤 자리를 펴고 엎드려 삼십 분 정도 책을 읽는다. 어린이들은 낮 동안에는 마음에 드는 책을 각자 읽는 것을 선호하지만, 자기 전 이 시간에는 반드시 엄마가 소리내 읽어주기를 기대하며 책을 고른다. 분량은 엄마의 컨디션이나 잠자리에 드는 시간에 따라 각자 한 권에서 세 권 정도. 그러면 나는 만화책이든 그림책이든, 글자가 없는 책이든 영어책이든 목소리를 바꿔가며 성의껏 소리내 읽는다. 보통 네 번째부터는 눈이 침침해지고 목소리가 잠겨 문장 중간에 크흠, 콜록콜록, 하아 하는 소리가 섞여 나오기 마련이다. 만만찮은 일이다.
마지막 책을 덮을 때면 어린이들은 항상 낙담하며 아쉬워한다. “우리 요즘 매일 같이 있잖아. 낮에도 읽어줄게, 갖고 와.” 해도 낮이면 먼 옛날의 일인 듯 잊어버리고 밤이면 다시 아쉬워하는 어린이들. 덕분에 나의 독서량은 매일 밤 9시경 절정에 달한다.
이제 진짜 불을 끌 시간이다. 아빠가 집에 있으면 마지막 불을 끄는 건 언제나 아빠 몫이다. 어린이들이 내 양옆에 누워 이불을 당겨 덮고 큰 소리로 부른다. “아빠!! 아빠아아!! 불 꺼주세요!!!” 우리가 책 읽는 동안 선잠이 들었던 남편이 부스럭 일어나 발을 끌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문틈으로 푸석한 얼굴을 내밀어 두 아들과 잘 자요, 사랑해요, 인사를 나눈다.
“솔 하면 꺼져요~ 도레미파 솔~” 노래하고 스위치를 누를 때 둘째가 잽싸게 작은 소리로 “라시도!”하면 이제 진짜 정말로 소등.
그 후로는 어둠 속에서 작은 말들이 날아다닌다. 흥얼거리고, 갑자기 궁금한 게 많아진다. (어제는 지오가 “햄버거 같은 걸 먹으면 귀가 좋아져요?”라고 물었다.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루를 마무리하려니 낮 동안의 일들이 이마 위로, 입술 위로 나풀나풀 내려앉는 모양이다. 어둠 속에서 어린이들은 조심하느라 말하지 못한 것들, 조심하다가 그만 잊어버리고 만 것들을 툭툭 꺼내기도 한다.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넘어갔던 친구와의 다툼, 선생님께 혼난 일,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어물쩍 넘어가 버리고 만 사건들이 갑자기 마구마구 떠오른다.
어린이들이 서너 살이던 무렵에는 잠들기 직전, 깜깜한 가운데 들리는 아기 목소리가 좋았다. 곧 사라질 시간을 붙잡으려 아기들의 노래와 웅얼거림을 녹음하기도 했다. 요즘도 나는 어린이들의 자기 전 이야기를 모은다.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잊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외우다가 잠든 걸 확인하면 뛰쳐나와 수첩에 휘갈겨 놓기도 하고, 눈 감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머리 위로 팔만 뻗어 내게 보내는 카톡 창을 열어 대충 적어놓기도 한다. 덕분에 ‘나와의 채팅창’에는 [엄마지ㅏㄴㅎ아] 같은 문장투성이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기억이 다 하기 전에, 어린이들과 같이 누워 잠을 청하는 오직 지금만 할 수 있는 기록을 해 보려고 한다. 매일 잠들기 전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때로 더 어렸던 시절의 말이 될 수도, 지난주에 한 말이 될 수도 있을 거다. 어떤 날은 한 문장일 수도, 어떤 날은 한 페이지일 수도 있겠다.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장강명 작가님이 그랬다. ‘무언가를 사랑하면 그 대상을 유심히 헤아리게 되고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진다’고. 나는 내 옆에 누워 낮게 코 고는 이 어린이들을 사랑한다. 때로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이 재미있고 감정을 이야기할 땐 반갑다. 힘닿는 데까지 써보려고 한다. 우리 집 어린이들의 베드타임스토리:)
#베드타임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