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생일

by 숨님

지안이의 생일을 하루 앞당겨 축하하기로 했다.
길 건너 사는 식구들과 만날 시간을 정하고, 어린이들과 함께 어린 시절 우리 엄마가 생일상에 놓아줬던 나뭇잎 모양 양갱을 만들었다. 양갱 한 개에 나뭇잎이 두 개, 그 위에 색색의 초콜릿을 얹으니 알록달록한 것이 생일상에 딱이었다. 어른 손님들을 위해서는 귤과 사과를 아낌없이 썰어 넣고 시나몬 스틱을 띄워 뱅쇼를 끓였다. 부엌이 금세 따뜻한 겨울 냄새로 가득 찼다.

이제 내 생일까지 15일 남았어요, 14일 남았어요, 하며 매일 손을 꼽던 지안이는 하루 앞선 생일파티에 꽤 만족하는 것 같았다. 지안이로 말할 것 같으면 무욕의 어린이. 선물로 뭐 받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떡”이라고 대답하고, 저녁으로 뭘 먹고 싶냐고 물으니 “양념해서 비벼 먹는 콩나물밥이랑 된장찌개”라고 대답한 바 있다. (실제로 콩나물밥을 해주니 한 그릇을 싹싹 비우기도 했다)

지체없이 포장지를 쫙쫙 찢어버리는 지안이 어깨 너머로 나는 지오의 표정을 살폈다. 부러울 텐데. 괜찮은가? 지오는 꽤 성공적으로 얼굴 근육을 관리하고 있었다. 특별한 표정 없이, 그 말 많은 어린이가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참 많이 컸다. ‘이런 게 선물이구나’ 단계를 지나, ‘너 생일인데 난 왜 선물 없어’ 단계를 거쳐, ‘너 생일엔 네가 주인공이지. 이제 내 생일도 올 거야’ 단계까지 온 것이다.

평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생일선물로 받은 레고를 개봉한 지안이가 선뜻 “형! 형이 1번 해. 2번 3번은 내가 할게.”하고는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눈을 내리깔고 입꼬리도 있는 대로 끌어내린 지안이는 단호하고 진지했다. 역시 무욕의 어린이! 지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1번 봉투의 내용물을 조립했고, 선언과는 달리 지안이가 3번 봉투까지 함께 하자고 제안한 덕분에 어린이들은 아홉 시가 넘을 때까지 설명서 한 장씩 번갈아 가며 레고를 완성했다.

지오는 후에 잠자리에서 이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엄마, 지안이가 1번 나 혼자 하라고 해서 너-무 고마워. 행복해요.”
꿈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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