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방학

이제 이게 일상이다

by 숨님

어디 보자. 며칠이나 됐나. 지난 설 연휴부터 오늘까지 중간에 일주일 등원한 걸 빼면…… 59일.

우리는 59일째 집에 있는 중이다. 거의 두 달이 지나는 동안 바깥 날씨는 찬바람에서 훈기 도는 바람으로 바뀌었고, 중간에 눈도 한 번 오는가 싶더니 이제 창 너머 벚꽃망울은 자줏빛으로 물들고 산수유가 노랗게 피었다. 계절의 변화를 창문으로 보는 아이들과 나를 위해 남편은 베란다 창을 물청소했다. 시원한 물줄기 아래로 겨우 내 집 안에만 있던 화분들도 내어 놓았다. 올해도 봄은 미세먼지와 함께 왔고, 이러나 저러나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외출하기 어려운 시절. 59일 동안 우리집 두 꼬맹이가 신발을 신은 날을 꼼꼼히 세어 보았지만 열 손가락을 다 접지 못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바깥을 탐하지 않았다. 어느 집 아이들은 태풍이 휘몰아치든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든 아파트 현관에라도 나갔다 와야 한다는데, 이제 막 일곱 살, 여덟 살이 된 나의 연년생 두 아들은 여간해서는 밖에 나가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집순이 아들이 집돌이라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을까. 집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집 안에서도 할 일이 너무 많아 하루가 빠듯하다. 그 동안 우리가 한 것들을 순서없이 늘어놓아 보기로 한다.



그림 그리기 : 색연필, 물감, 연필 등을 이용해 마음대로 그린다.

미생물 키우기 : 병에 물과 이것저것을 담아 며칠이고 그대로 두고 부유물을 관찰한다.

베이킹 : 와플, 핫케이크, 당근 케이크, 바나나브레드. 네 가지를 돌아가며 만든다.

호두껍질에 색칠하기 : 정월대보름 부럼 까먹으면서 껍질 챙긴 나를 칭찬하자.

달걀판으로 애벌레 만들기 : 달걀판 버리지 않은 나를 칭찬하자.

페트병으로 미니 소화기 만들기 : 집에 소다와 식초가 다 있어서 감사하다.

종이컵 쌓고 무너뜨리기 : 나무에게 백 번 사과하며 종이컵 세 줄을 뜯었다.

종이컵으로 온갖 것 만들기 : 코끼리, 문어, 쓰레기통, 마이크, 죽방울 등을 만들었다.

김밥 싸기 : 키즈 쿠킹클래스 진행하시는 모든 분을 존경하게 되었다.

택배 상자로 도서관 짓기 : 박스테이프 다 썼다.

이불썰매 : 아빠 찬스로 주말에 탑승 가능.

화석발굴키트 : 반나절 커버 가능하다.

워크시트 활용 : 집, 로켓, 로봇 등을 입체로 만들어 볼 수 있다.

풍선놀이 : 손 잡고 풍선 떨어뜨리지 않기, 불었다 날려 보내기를 좋아했다.

보드게임 : 특히 ‘마우스트랩’을 좋아했다. 쥐덫골드버그장치라고 하면서.

독서 : 실험왕/발명왕 시리즈가 없었다면 이 시기를 이만큼 평화롭게 보낼 수 있었을까.

책 만들기 : 아이들이 지어낸 이야기들을 책으로 만들어 보았다.

상상놀이 : 똥꼬나라, 상상나라, 생각나라, 양파나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천국.

휴지심 폭죽 만들기 : 종이가루 흩날리는 것쯤이야… 청소는 청소기가 폭죽은 내가.

공연 : 미스터트롯에 빠진 첫째가 노래를 하고 우리는 점수를 내고 심사평을 한다.


KakaoTalk_Photo_2020-03-27-23-51-14.jpeg 택배상자로 만든 도서관
KakaoTalk_Photo_2020-03-27-23-52-03.jpeg 책을 여러 권 만들었다
KakaoTalk_Photo_2020-03-27-23-52-23.jpeg 나무야 미안해... 내가 더 잘 할게
KakaoTalk_Photo_2020-03-27-23-53-02.jpeg 어느날은 그림도 그리고
KakaoTalk_Photo_2020-03-27-23-53-23.jpeg 어느날은 우주도 만들고




엊그제는 아직 입학식도 하지 못 한 초등학교의 얼굴도 모르는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간단한 안부인사 후 온라인 클래스에 가입하라고 하시길래 난생 처음 ebs 온라인 클래스도 들어보았다. 화면에 나오는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이냐고 묻는 아이에게 아니라고 설명할 때는 어쩐지 가슴 한 쪽이 시큰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놀이를 얼마나 더 하게 될까. 양갈래 머리에 커다란 리본을 단 화면 속 선생님 말고, 진짜 담임 선생님과 진짜 친구들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무엇도 예측할 수 없고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그냥 지금을 살아야한다고 거듭 생각할 뿐. 이제 이게 일상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언젠가 아이들이 오늘을 회상하며 ‘그 때 코로나 때문에 난리 났을 때 우리 집에서 재밌었잖아!’라고 할 수 있었으면. 엄마와 함께 보낸 날들이 그저 특별한 방학 쯤으로 기억되었으면.


잠들기 전 큰애는 나를 꼭 끌어 안으며 매일 같은 인사를 한다. “엄마 사랑해요.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도 행복한 날 되세요!” 이 인사를 나는 귀 기울여 듣는다. 그리고 “내일은 행복한 날 되세요”가 아니라 “내일도 행복한 날 되세요”라는 데 안도하며 나도 모르게 얕은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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