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살자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아웃풋을 내지 못했다

by 숨님


이력서를 냈는데 연락이 없다. 작년 이맘때도 그랬다.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는 끝내 오지 않았고, 울리지 않는 휴대폰이 다 사그라들어 불씨 하나 남지 않은 내 커리어를 보는 것 같아 속이 쓰리고 입이 텁텁했다.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은 아직 내게 남아 있을 것이다. 10년 넘게 책이며 논문, 관련 텍스트를 읽고 쓰고 읽고 쓰는 일을 반복했으니까. 서울의 끝과 끝을 오가며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이부어 취득한 자격증들도 아직 유효하다. 지금 내게 없는 것, 그건 경험이었다. 육아에 전념한다며 들어앉은 지난 2년간 내게는 실제로 내담자를 만나 나눈 이야기가 없고 함께 보낸 시간이 없었다. 40대 진입을 코앞에 둔 지금, 나는 경단녀가 되었다. 더 정확하게는 내가 경단녀라는 사실에서 도망갈 수 없게 되었다.


한때는 내 직업을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정년이 없잖아”, “나이 들수록 메리트 있는 거 아냐?”,“육아 경험이 도움이 될 거야” 하면서. 그때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학기당 수백만 원을 들여 배운 지식과 여기저기서 노마드로 일한 수련 경험을 잘 녹여 우리 집 두 아이에게만 적용해 보고 관찰하면서 중요한 경험을 하는 거라고 자신을 합리화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시간은 ‘경험’은 되었을지 몰라도 ‘경력’은 되지 못했다. 타인의 삶을 잠시나마 담는 그릇이 되는 일. 행여 손에서 미끄러져 깨지거나 금이 갈까 봐 상담은 늘 조심스러웠다. 공인된 자격이 있다고 해서 내게 과연 이 일을 할 깜냥이 있다고 할 수 있나. 이력서를 완성하고도 매번 ‘보내기’ 버튼 위에서 깜박거리는 마우스 커서를 한참이나 바라보아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답이 오지 않는다. 그간의 공백이 그나마 있던 나의 깜냥을 더욱 신뢰하지 못할 것으로 만든 모양이다.


오롯이 집에 있기로 한 건 나의 선택이었다. 주양육자인 내가 일을 나간다는 건 일주일에 한 번이건 두 번이건 다른 누군가가 나만큼 시간을 내어 아이들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누군가’는 99.99%의 확률로 우리 엄마가 될 것이다. 몇 년 전, 내가 일하는 동안 엄마의 병원 방문 횟수는 눈에 띄게 늘어났고 간격은 짧아졌다. 나의 커리어를 위해 엄마의 시간과 건강을 빼앗았다는 감당하기 버거운 크기의 죄책감이 따라다녔다. 나 하나만 포기하면 모두가 편할 수 있었다. 엄마도, 아이들도, 남편도.


때로는 모든 것이 변명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경력을 잇지 않은 것이 다른 가족들을 위해 나 하나를 희생한 결과라니. 아이를 낳고 가장 따르기 싫었던 것이 <엄마=희생>이라는 묵은 생각인데, 모르는 사이 희생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내 선택의 책임을 다른 가족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대학교 3학년, 프랑스에 가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아빠는 “이왕 할 거면 영어를 하지 왜 쓸 데도 없는 걸 배우냐”고 반대하셨다. 인풋과 아웃풋이 비교적 정확한 일을 했던 아빠는 일의 효율과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창 파트타임 치료사로 일할 무렵, 어느 날인가 아빠로부터 “그래서 너는 언제까지 그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을 할 거냐”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빡빡한 풍선을 힘들여 반쯤 불었는데, 입구를 묶기도 전에 잡고 있던 손을 툭 놓치고 만 것 같은. 겨우겨우 반쯤 들어갔던 자신감과 용기, 성취감 같은 게 순식간에 빠져나가 날아가 버리고 맥이 탁 풀렸다. 아빠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었을 말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이후 뭔가를 할까 말까 고민할 때면‘또 쓸데없는 짓이지. 괜히 돈 들여서 뭐 해’ 하며 입맛을 다시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경단녀가 된 것을 아빠의 예전 시각으로 보자면 인풋 대비 최악의 아웃풋일 것이다. 아빠는 한 번도 ‘거 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내게만 들리는 목소리는 늘 말하고 있다. 그거 보라고, 내가 뭐랬냐고.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아웃풋을 내지 못했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 왔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 외에 얼마나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나. 한창 일할 시기인 삼십 대 초중반에 나는 아이 둘이 잠들면 뜨개질을 했다. 부엌 놀이 장난감을 직접 만들고, 그림도 그렸다. 남아도는 생산성을 어떻게든 해야 했다. 인형 얼굴에 마지막 스티치를 넣거나 그림을 완성하면 하룻밤 정도 뿌듯했다. 하지만 그뿐, 곧이어 ‘이걸 어쩌려고’하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무력감은 고질병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는 병. 딱히 뭘 어쩌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의 시기를 지난 지는 한참 되었다. 청소년기에는 어서 그 시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늘 불안하고 고민 많고 정해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지금이 지나 어른이 되면, 삶이 안정되고 잔잔해질 거라 기대했다. 어찌어찌 어른이 되었지만 불어 닥치는 바람과 파도는 멎을 기미가 없다. 여전히 미래는 불안하고 진로는 불투명한데 이렇다 할 경력 없이 나이만 착실히 먹어간다. 여전히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자주 느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에 대한 지식이 좀 늘었다는 건데, 이제는 내가 강풍에 얼마나 타격을 받는지 어떻게 하면 물벼락을 맞고도 매무새를 가다듬고 일어날 수 있는지 조금은 안다. 이런 앎은 현재를 받아들이고 버티게 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 스크롤을 내리다 황선우 작가의 피드에서 시선이 멈췄다.

[…삶은 길고, 그래서 커리어의 전환도 당연한 변화이고,
의지와 우연이 뒤섞여 우리를 재미있는 곳으로 데려간다고 언제나 믿는다]


전에 하던 일을 기준으로 보면 ‘경력단절’ 상태이지만, 아직 해보지 않은 일들을 기준으로 둔다면 지금 나는 ‘대기 중’이거나 ‘준비 중’일 것이다. 의지와 우연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배운 걸 아까워하지 않기로 하자. 자신을 너무 깎아내리지 않기로 하자. 인풋과 아웃풋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때론 멈추도록 하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나중의 쓰임보다 지금의 즐거움에 집중하자. 나에 대해서는 조금만 생각하기로 하자. 40대에는, 뭘 어떻게 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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