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외출하고 돌아오니 베란다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열린 문 너머로 얼핏 엄마의 정수리를 보고 다가가니, 휑뎅그렁하니 버려진 땅 같던 우리 집 마당이 많이 달라졌다. 내려설 때마다 발목에 충격을 고스란히 전달하던 낮은 디딤돌 위에 보도블록 여덟 개가 두 층으로 쌓여 있고, 그 앞으로 새로 마련한 공간이 보였다. 큼직한 돌들을 세워 나눈 공간에는 바깥보다 부드러워 보이는 흙 안에 봉숭아 새싹이 심겨 있었고, 엄마는 마당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모양으로 띄엄띄엄 보도블록 심을 자리를 보는 중이었다.
“엄마, 허리 아프다면서!”
“에구 죽겠다. 이게 무슨 일이라고 황서방 올 때까지 기다려. 이렇게 금방 쓱 하면 되는 걸.”
마당 너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난방관 교체 공사라던가 공원 보수공사라던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벌써 일주일째 공원길에는 길게 ‘안전제일’ 가림막이 세워진 참이다. 아파트 맨 가장자리 1층인 우리 집은 공원으로 나가는 샛길을 끼고 있다. 볕 좋은 날 마당에서 빨래라도 말리려면 늘 오가는 사람들이 신경 쓰이곤 했는데, 공사 덕분에 샛길도 통제되어 요 며칠 빨래도 말리고 마음 놓고 나가 흙도 파고 신났다. 며칠 전에는 남편이 버려진 보도블록을 집어와 그걸로 화단도 만들고, 거기에 모종도 심고 있다. 우리 엄마가.
원체 엉덩이가 무거운 데다 할 일이 생기면 실제보다 더 복잡하게 해 나가는 경향이 있는 나는 마당을 어떻게 해 보고 싶어도 좀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지난 8년 간 식물을 키워보겠다고 봄마다 농원에서 모종과 나무들을 사들였지만 살아남은 줄기는 별로 없다. 애플민트는 재가 되어 사라진 모양이고 후쿠시아의 매혹적인 붉은 꽃도 딱 한 번 보고 이별이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딸기 모종도 손톱만 한 딸기 하나씩 수확하고 나면 여지없이 영영 안녕이었다. 매년 처음 식물을 들여보는 것처럼 빈 공간은 넉넉하고 솜씨는 서툴다. 게다가 재작년이었나, 남편과 마당에 꽤 공을 들여 키우던 고추며 방울토마토를 경비아저씨가 불시에 다 베어버렸다는 걸 뒤늦게 알고 한동안 속을 끓이지 않았던가. 경비실을 지날 때마다 울컥거리면서도 항의 한 번 제대로 못 한 새가슴이여.
그때 이후 나는 마당에 최대한 정을 주지 않고 있었다. 올봄에도 어김없이 모종을 사 왔지만 딱히 의욕이 샘솟지는 않았고, ‘남편이 흙을 일구면 심어야지’ 하고 종이컵 반만 한 흙에 심긴 것들을 못 본 체 이틀이나 베란다 구석에 두었다. 가루가 흩날리는 흙에서 말라가던 자그마한 상추들을 발견하고 마당에 자리를 마련해 준 건 엄마였다. 비닐을 덮을까 말까 고민만 하던 게으른 나와 묫자리 파듯 땅을 파대던 요령 없는 남편 대신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토마토에 지지대를 세워준 것도 엄마였다.
역시 아파트 1층인 엄마네 집에도 마당이 있다. 베란다 창을 타고 나팔꽃이 자라고, 밑에는 더덕이 위에는 부추랑 갖은 꽃나무가 자라는 곳. 밥 먹으러 오는 동네 고양이와 까치와 직박구리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 온통 푸릇푸릇해지는 봄이면 화단 가득 원추리 잎이 무성해진다. “이거 우리 어머니가 심어주신 건데. 이렇게 많이 퍼졌어.” 이리저리 휘휘 늘어진 길고 빼죽한 이파리들을 손으로 슬슬 걷어내며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떠올린다. 십 년도 넘게 들었지만 여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할머니가 심어주신 게 원추리 하난가?” 하고 물으면 자주달개비, 비비추, 맥문동, 상사화, 붓꽃, 사철나무, 벌개미취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식물 이름들이 꼬리를 문다. 기억을 되짚는 몇 초의 시간도 불필요하다는 듯이. 늘 되뇌고 있었던 것처럼.
우거진 것들 중 몇 뿌리를 캐다 우리 집 마당에 심어주면서 엄마는 “옛날에 우리 어머니가 심어주시던 것들인데, 이제 내가 이러고 있네” 했다. 쭈그리고 앉아 자주달개비 심은 흙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엄마 옆에 서서 고개를 들었다. 은행나무 어린잎들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고 바람이 꽃가루를 실어 나르는 계절. 모처럼 공기도 깨끗한 날이었다.
“사람 손 닿는 게 신기해.”
마당을 둘러보니 다시금 감탄이 나왔다.
“어휴 그러엄, 돌 하나를 옮겨도 다르지.”
5분만 마당에 나가 있어도 자비 없는 모기들을 마주하게 될 때쯤, 원추리는 이파리보다 더 가늘고 길게 꽃대를 올릴 것이다. 꽃대 끝에 여섯 잎 진노랑 꽃이 피면 엄마는 또 그러겠지. “이거 우리 어머니가 심어주신 건데. 꽃이 저렇게 잘 핀다.” 이제 나는 원추리 긴 잎을 볼 때마다 엄마의 그 말을 떠올릴 것이다. 어딘지 조금 쓸쓸하던 엄마의 표정을, 그 와중에도 계속 분주하던 양 손을. 둥글게 수그린 등허리와, 내가 우리 엄마가 어루만지고 토닥이며 키워낸 수많은 것들 중 하나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