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남편과 나는 두 번째 결혼식을 간소하게 치렀다.
장난감 정리함을 뒤적거리던 아이들이 보석이 달린 장난감 반지를 찾아낸 것이 시작이었다. 큰 아이 지오가 보석함이라며 간직하던 원통 모양의 종이상자를 가져와 안을 비우고 반지를 담았다. 반짝거리는 핫핑크 비닐로 싸인 상자 위에는 화려한 꽃 모양 금색 리본이 붙어 있었다. 상자 안이나 밖이나 묘하게 촌스럽고 과장된 난감한 비주얼이었으나 담아놓으니 꽤 그럴싸해 보였고, 아이들은 두 배로 분주해졌다.
“아빠! 엄마랑 두 번째 결혼식을 해요! 어서 어서요 준비하세요!!”
지오가 누워있는 아빠를 일으키며 외쳤다.
“아빠! 이 반지! 이 반지로 엄마를 홀릴 수 있어요!”
덩달아 신이 난 둘째 아이도 외쳤다. 홀리다니.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엄마를 홀릴 수 있다며 아빠에게 용기를 주는 둘째 아이 앞에서 너무 크게 웃지 않기 위해 우린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아이들이 자라고 할 줄 아는 게 늘어나면서, 이제 어디에서 어떤 것을 보고 듣고 기억했다가 꺼내어 써먹는지 다 파악하는 것은 영 불가능한 일이 됐다.
“지안아, 엄마가 홀리면 어떻게 행동하는 거야?”
“홀리는 건 이렇게, 결혼해요 하면 네! 하는 거죠!”
반바지에 아톰 티셔츠를 입은 남편과 뭐가 좀 묻은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나는 각자 대기석에 섰다. 지오는 거실에 늘어놓은 레고를 치우고 소파를 끌어다 놓은 후 아빠 손에 반지 상자를 쥐어주었고, 지안이는 스파링을 앞둔 복싱 선수의 코치처럼 우리 사이를 오가며 조언하기에 바빴다. “엄마! 엄마는 냉정하게 해야 해요. 아빠! 아빠는 초라하게 해야 해요~ 준비하세요!” 지안이의 단어 선택에 다시 한번 우린 물음표를 띄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럴 때는 반드시 다시 한번 본인에게 확인해야 한다. 달을 가지고 싶다는 공주에게 직접 달의 크기와 위치를 물어서 문제를 해결했던 이야기 속의 광대처럼. 평소 엄마 아빠의 모습이 반영된 건가 싶어 뜨끔했지만 짐짓 태연하게 물었다. “냉정하게 하는 게 어떻게 하는 거야?” 지안이는 곧 턱을 당기고 눈을 무섭게 치뜬 채로 으르렁거렸다. “초라하게 하는 건?” 이번에는 이내 조금 처량한 표정을 하더니 낑낑 소리까지 내며 비 맞은 똥개 같은 얼굴이 되었다. 평소 우리 맞나봐 여보, 물어보길 잘했지. 까딱했으면 연출자의 의도와 전혀 다른 행복한 표정이 될 뻔했잖아.
우리는 트렌드에 맞게 동시입장을 택했다. 딴딴 딴딴하고 노래를 부르며 팔짱을 끼고 소파 앞에까지 걸어오니, 어디에서 났는지 플라스틱 티아라까지 꺼내 신부의 머리에 얹어주었다.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해 빙글빙글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즉석에서 급조한 서약을 했다.
“신랑 황원태는 저를 아내로 맞아 괴로우나 즐거우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항상 함께 하고, 일주일에 한 번 화장실 청소와 분리배출을 맡아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맹세합니다.”
성혼선언을 하고 반지를 끼워주는 순간과 뽀뽀의 순간은 모두 지오가 동영상으로 촬영했고, 지안이는 연출자답게 우리의 표정과 동선을 확인하며 지켜보았다. 연신 싱글벙글하면서. 내내 펄쩍펄쩍 뛰어다니면서. 이렇게 우리는 두 번째로 부부가 되었다.
아이들이 잠든 후에도 남편과 나는 오후의 결혼식을 생각하며 한참 웃었고, 몇 번이나 말해 보았다. 엄마를 홀릴 수 있는 반지래, 냉정하고 초라하게 하래, 하면서 큭큭거렸다. 그 천진함과 밝음과 숨기지 못하는 표정 속 설렘을 떠올리며 지오가 촬영한 동영상을 돌려 보았다. 자신들이 참여하지 못했던 엄마 아빠의 결혼식을 재연해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초라한 신랑이 냉정한 신부를 홀려서 만든 지금의 우리. 굳이 두 번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꼭 해야 한다면 지난 오후 같은 결혼식이라면 좋겠다. 자꾸 돌려보는 동영상 속의 우리는 9년 전 우리보다 훨씬 살찌고 나이 들었지만, 그땐 상상도 못 했던 목소리 둘이 우리 곁을 맴돈다. 엄마 아빠 축하해요!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