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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님 Apr 27. 2021

텅 빈 마음은 어디에서 채우죠?

세바스티엥 무랭 <루이의 특별한 하루>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시간, 교문 앞에는 아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습니다. 더러는 유모차에 탄 동생이, 더러는 자전거 탄 형이 엄마와 함께 언니 동생을 기다립니다. 멀리 운동장을 우다다다 가로질러 뛰어오는 아이가 보입니다. 또 그 아이입니다. 어제도, 그제도, 일주일 전에도 제일 먼저 뛰어나오던 아이. 또래보다 마르고 작은 아이는 헐렁한 윗옷 덕분에 한층 더 작아 보입니다. 제일 먼저 교문을 빠져나오는 것도, 공원 벤치에 아무렇게나 가방을 던져 놓고 운동장 가장자리를 서성이는 것도 늘 그 아이였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아이. 아이는 목에 걸었던 휴대폰을 열어 고개를 푹 숙이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엄마들은 시선을 거두고 하던 얘기를 다시 나눕니다.



루이의 일상은 지루하고 빡빡한 일과의 반복입니다. 학교에 가고, 피아노를 배우고, 테니스도 배우죠. 밤이면 루이는 영상 통화로 파푸아 뉴기니에 계시는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비행기 모형으로 가득한 거대한 침실에서 잠이 듭니다. 비행기를 타고 부모님에게 날아가고 싶은 걸까요? 어느 날 아침, 루이는 무거운 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동작은 느리고, 식욕도 없어요. 부모님을 대신해 루이를 돌보는 엑토르 아저씨는 루이의 슬픔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학교로 향하던 차를 돌려 거대한 ‘숲 속 학교’로 향하죠.



에너지를 채울 곳이 필요해요. 거의 모두가 그렇죠. 일과를 소화하느라 빠져나가 버린 나의 일부는 어디에서 채울 수 있을까요? 쾌적하고 아늑한 책방일 수도 있고, 흙냄새 바람 냄새나는 숲 속일 수도, 친구와 함께 하는 맥주일 수도 있겠죠. 엄마 아빠의 포옹이거나 ‘파푸아 뉴기니에서 온 꽃’일 수도 있고요. 화분에 씨앗을 심고 잠든 루이와 엑토르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책장을 되도록 천천히 넘기고 싶어 져요.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데도 늘 가장 먼저 뛰어나오는 아이를 생각합니다.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 아이에게도 그런 존재가 꼭 있으면 좋겠어요. 엑토르 아저씨가 루이에게 해 주었듯이 작고 휑한 목덜미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함께 모험하고 옆에 누워 잠드는 그런 존재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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