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모두 한 대의 차를 운전하는 거야

채인선, 박현주 <내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by 숨님

하던 일을 그만둔 지 꽉 채워 4년이 되던 작년 12월 어느 아침 일입니다. 막 잠에서 깨어 아직 눈꺼풀에 졸음을 가득 매단 채 이불 속에서 뒹굴뒹굴하던 둘째 아이가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는 직업이 회사죠?”

“그렇지. 아빠는 회사원.”

“회사원. 그리고 엄마는 직업이...”

설거지하던 저는 슬그머니 물소리를 줄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엄마가 어디 나가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을 텐데. 순간, 어린이집 수업 시간에 “엄마 방은 부엌,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은 프라이팬”이라고 했다던 첫째 아이의 네 살 적 알림장이 떠오르더군요. 몇 날 며칠을 우울했었죠.




조수석에 어린 아들을 태운 아빠는 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네가 살아가는 삶이 바로 너의 자동차라고요. 지금은 엄마나 아빠 차에 투명하게 겹쳐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엄마나 아빠 차에서 자신의 차를 꺼내 홀로 운전하는 거라고 해요. 자신이 떠나면 텅 빌 자리를 걱정하는 아들에게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 자리는 네 자리가 아니야. 아빠의 꿈, 아빠의 사랑, 아빠의 하늘이 거기 앉아 있어.”




지금 저와 남편의 차에는 두 아이의 차가 겹쳐져 있습니다. 이 차에는 조수석에도 브레이크가 있어서, 가끔 아이들이 운전대를 잡는 날이면 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전방을 주시하며 브레이크를 밟을까 말까 망설입니다. 어떤 때에는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도 치고요. 올해 아이들이 8살, 9살이 되었지만 아직 제 차에는 여유 공간이 별로 없습니다. 아이들의 물건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고, 아이들이 가고자 하는 곳이 곧 저의 목적지죠. 말하자면 제 차는 지금 엄마라는 이름의 번호판을 붙이고 육아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번호판을 갈아치울 일은 없겠죠. 하지만 아이들이 혼자 길을 건너 등교하는 모습을 볼 때, 와플 가게 키오스크 화면을 톡톡 건드려 원하는 걸 주문하는 모습을 볼 때, 더는 어두운 침실을 무서워하지 않을 때 저는 느낍니다. 매일 조금씩 아이들의 차가 제 것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을요.


둘째 아이는 잠결에도 엄마의 직업을 ‘작가’라고 하며 문장을 맺었습니다. 사실과 전혀 다르지만 상관없어요. ‘엄마는 직업이 없어요’라는 말이 나올까 봐 가슴 졸였거든요. 우리의 차가 겹쳐있는 지금,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운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다른 차들의 속도를 신경 쓰지 않고 나의 속도로 달리는 방법을 이야기해 줄 수 있다면 가장 뿌듯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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