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 히데코,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
이 책의 배경은 프랑스의 커다란 식물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스케치북을 둘러멘 여자아이가 식물원 이곳저곳에서 눈에 띕니다. 식물학자는 이 낯선 아이를 눈여겨보죠. 그리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름을 물어보고, 곳곳을 함께 다니며 식물원의 나무들을 소개하고 설명해 주고, 해바라기 씨앗을 선물합니다.
‘사에라’라는 이름의 아이는 일본에서 프랑스로 잠시 머물러 온 듯합니다. 매일 식물원에 와 꽃들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죠. 식물학자 아저씨에게서 받은 해바라기씨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돼요. 화분 곁을 떠나지 않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싹이 나기를 기다립니다.
저희 부모님은 식물을 무척 좋아하십니다. 하지만 두 분이 식물과 함께하는 모습은 사뭇 달라요.
아빠에게선 제가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하려야 할 수도 없는 문장이 자주 나옵니다. “통영에 동백 보러 가야 하는데.” “이번 주는 이천에 산수유가 절정이야. 다음 주면 없을걸.” “공원에 삼색 버드나무를 심었구나.” 같은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요. 식물학자처럼 말이죠. 백 번을 들었어도 그냥 단풍과 중국단풍을 구별할 수 없는 저는 잎맥의 특징이나 가지가 갈라진 모양만으로 풀과 나무의 정체를 밝히고 학명까지 대는 아빠가 신기하기만 합니다.
엄마는 매년 봄이면 화원에 가는 일을 빼먹지 않습니다. 늘 엄마 집에는 베란다 가득 화분이 있어요. 골고루 햇빛 받을 수 있도록 방향을 돌려놓고, 잎을 닦아주며 꼼꼼히 살피는 엄마의 모습은 자연스럽고 다정합니다. 해바라기를 키우는 사에라의 모습 같아요. 삼천 원짜리 작은 고무 화분에 들어있던 대추야자가 몇 년 새 어른 허리까지 자란 모습은 볼 때마다 놀랍습니다.
돌보는 손길이 있어 엄마의 화분들은 건강하고 빛이 납니다.
돌아보는 눈길 덕분에 아빠에게 식물은 하나하나 의미를 갖습니다.
어쩌면 눈과 손을 통한 돌봄으로 인해 우리 마음속에 있는 나무가 단단히 뿌리내리는지도 모릅니다.
식물학자가 사에라를 돌아본 덕분에, 사에라가 해바라기에 정성을 쏟은 덕분에 둘은 서로 마음속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게 돼요. 뿌리가 튼튼하면 ‘별빛 쏟아지는 밤에도, 눈 내리는 날에도’ 자리를 지키고 버틸 수 있게 되는 법이죠. 혹시 곁에 흔들리는 누군가 있다면 그를 위해 버텨줄 수도 있을 거예요. 사에라와 식물학자가 기댈 수 있도록 줄기를 내어 준 플라타너스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