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과 용기

이제 우리는 각자의 아이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는 어른이 되었다

by 숨님


1998년 11월 어느 날, 엄마와 동대문 시장에서 실을 샀다. 오래된 주택가 담벼락의 벽돌 같은 불그스레한 색의 실뭉치 네 개. 엄마와 뜨개방 아줌마가 골라주는 대로 실에 맞는 바늘도 한 쌍 샀다. 방학 전에 목도리를 뜨고야 말겠어. 도톰하고 폭신한 목도리를 완성해서 방학식 전에 좋아하는 애한테 선물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뜨개질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우선, 코를 잡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도대체 몇 코를 잡아야 하는지. 너무 많이 잡으면 한 줄을 뜨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지치기 쉬웠고, 너무 적게 잡으면 폭이 좁아져 우스꽝스러울 것이었다. 80코를 만들었다, 100코를 만들었다 하며 실을 계속 쥐었다 풀었다 반복했더니 나중엔 보풀이 생기고 꼬불거려서 결국 꽤 많은 부분을 잘라내야 했다. 중학교 때 가사 시간에 분명 이런 비슷한 걸 했던 것 같은데, 이런 기술은 몸이 기억한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애초에 나한테 기술이라는 게 없었던 건가.

고등학교 입학식 날, 운동장을 가득 메운 우리는 교복을 입고 시커멓게 웅성거리며 서 있었다. 낯선 애들 틈에서 멍하니 혹시 아는 애가 없나 힐끔거리고 있는데, 앞에 서 있던 남자아이 둘이 서로 툭툭 치며 장난을 하다 그만 내 발을 밟고 말았다.
ㅡ어, 미안.
특별할 것도 없는 애였다. 나보다 조금 컸고, 입이 약간 합죽했다. 얼핏 봐도 친절한 눈매는 아니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젓고 몇 발자국 떨어진 곳으로 몸을 옮겼다. 아직 쌀쌀한 공기 속에 서있느라 발 끝이 조금씩 저려올 때쯤 입학식이 끝났다. 교실로 자리를 옮겨 대충 앉은 상태에서 선생님이 말했다.
ㅡ자, 반장선거하기 전까지 또 할 일이 많아. 오늘 첫날이니까, 예비 반장을 뽑자. 하고 싶은 사람?
아직 교실 공기가 훈훈해지기도 전이었다. 서로 눈치를 보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앉아있는데 뒤편에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 그 애였다. 눈매가 사납고 입이 합죽한. 이제 보니 피부가 꽤 하얗고 손은 체격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웃지도 않고 어색한 듯 쑥스러운 듯 딴 데를 보며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 좀 웃겼다. 그렇게 그애는 자진해서 우리 반 예비 반장이 되었고, 학기초 유인물이라든지 걷어야 할 돈 같은 건 다 반장을 거쳐야 했다. 처음 반장한테 돈을 낼 때 나는 손을 조금 떨었다. 키는 나보다 크지만 손은 나보다 작아 보였다. 내 커다란 손으로 그 손바닥에 삼천 원을 올려놓는다는 게 어쩐지 부끄럽고 그랬다. 이상하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멀리 있어도 그 애 웃음소리는 선명하게 들렸고, 반 대항 축구를 할 때도 운동장에서 그 애만은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1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나의 짝사랑은 공공연한 일이 되어 있었다. 그 애도 알고, 우리 반 애들도 알고, 다른 반 애들도 알았으며 선생님들도 알 정도였다. 하루에 두 번 이상 쪽지를 써서 그 애 책상에 올려두었다. 답장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다. 그날의 날씨와 온도에 따른 음료수와 작은 간식, 귀여운 편지지. 행여 축구하다 부상이라도 당한 날엔 연고와 밴드. 그러면 그 애는 모른 척 그걸 받아서 주머니에 넣거나 그 자리에서 읽고는 지나가며 내 머리를 쓱쓱 쓸어 헝클어뜨리곤 했다.

빨간 쟌스포츠 가방을 멘 어깨가 귀에 닿도록 웅크리고 다니는 추위를 많이 타는 그 애한테 선물하기에 벽돌색 목도리만큼 잘 어울리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주지? 아무리 전교가 다 아는 짝사랑이래도 이건 너무 본격적인 거 아닌가. 부담스러워하는 건 아닐까. 이 선물 때문에 멀어지면 어떡하지. 학교는 계속 다녀야 하고 난 얘가 너무 좋은데. 어색해지면 어떡하지. 한 코 한 코 바늘이 들어갈 때마다 실과 함께 설렘과 걱정, 조바심과 두려움이 같이 엮였다. 좋아하는 애한테 뭘 만들어준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피곤한 일이었다. 어깨는 아프고, 시간은 촉박하고. 게다가 목도리는 써 붙이지만 않았지 누가 봐도 초보가 만든 티가 났는데, 죽 펼쳐 놓으면 물결이 연상되는 모양이었다(물론 목표는 반듯한 직사각형이었다).


교실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걔 책상 옆에 슬쩍 걸어두었던 것 같다. 목도리는 최대한 안 보이도록 박스에 잘 담아 가장 눈에 안 띄는 종이봉투에 담았다. 그 애보다 앞쪽 자리였던 나는 대놓고 쳐다보지도 못하고 힐끔힐끔, 책상 밑에 떨어진 볼펜을 찾는 척하며 가끔 뒷자리의 동향을 살폈다.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머리를 쓸어주지도 않았고, 잘 받았다는 말도 없었으며, 평소 같으면 그 애 번호가 찍혀서 한두 번은 울렸을 삐삐도 잠잠했다. 괜한 짓을 했다며 집에 와서 괜한 짓에 오랜 시간 공들인 자신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민망하고 야속했다.
다음 날은 진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억지로 몸을 일으켜 나서면서 생각했다. 아픈 척해야지. 머리를 풀어 얼굴을 거의 가리고 초점 없는 눈으로 비척거리며 교실에 들어갔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는 짝에게 “으응... 감기...”정도로 대답하고 말할 힘도 없다는 듯이 책상에 엎드려 버렸지만, 감각은 어느 때보다 예민해져 있었다. 드르륵 교실 문 여는 소리만 듣고도 그 애가 왔다는 걸 알았으니까.
ㅡ어! 야 뭐냐! 못 보던 건데?
ㅡ시끄러, 꺼져.
자세를 바로잡는 척 슬쩍 몸을 들어 엎드린 팔 아래로 뒤쪽을 보니 익숙한 벽돌색이 눈에 들어왔다. 하고 왔구나. 그 애는 어깨와 귀가 어제보단 조금 멀어진 모습으로, 잘 보면 물결 모양인 그 목도리에 코를 폭 파묻고 있었다.

누군가를 또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참 좋아했다. 그 마음이 너무 커서 꾹꾹 눌러 구석에 처박아둬도 튕겨 나왔고 여러 겹으로 덮어버려도 빛이 새어 나왔다. 숨기고 싶어도 절대로 숨길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부쩍 추워진 오늘 아침, 아이들에게 직접 뜬 목도리를 해 주고 모자를 씌워주면서 열일곱 살의 우리를 생각한다. 긴장과 설렘에 100미터 달리기를 했을 때처럼 심장이 뛰었지만 기어코 그걸 만들어서 주고야 만 나의 집착 섞인 용기를.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학교에 그 어설픈 걸 두르고 온 그 애의 용기 비슷한 마음을. 그때의 용기를 발판 삼아 우리는 각자 몇 차례 만남과 이별을 겪고 굳은살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현관에서, 또는 차 문 옆에서 각자의 아이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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