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 너의 지도

삼십 대 후반의 우리는 여전히 자주 길을 잃는다

by 숨님



굳이 나누자면 내게는 두 종류의 친구가 있다. 이상하게 만나면 내가 돈을 쓰게 되는 친구와 만날 때마다 의도치 않게 얻어먹게 되는 친구. 인영은 후자에 가깝다. 내가 자기 동네에 왔으니 초밥을 사고, 자기가 보자고 했으니까 파스타를 사고, 자기 동네에서 약속 장소가 더 가깝다며 커피를 산다. 이도 저도 이유가 없으면 그냥 산다. 오늘은 너 힘드니까 내가, 오늘은 내가 힘드니까 내가, 이러면서.

그날도 인영은 샌드위치를 한꺼번에 계산하려 했지만 정산이 어렵다는 이유로 내게 저지당했다. 21살의 인영과 나, 우리는 트래펄가 광장 한 귀퉁이 공중전화 부스 옆에 서 있었다. 광란의 한일월드컵 관전을 마치고 이제 막 런던에 도착해 호텔을 찾으려는 참이었다. 아직 스마트폰이 없던 때라 집에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려면 공중전화에서 카드를 이용해야 했다. 광장은 붐볐고, 우리는 커다란 트렁크를 든 말 그대로 조무래기였다. 그때 찍은 사진을 여행 후 두 장씩 현상하여 나눠 가졌는데, 내 얼굴이 어찌나 황당하고 멍하고 허옇게 질려있는지 지금도 3초 이상 쳐다보기가 힘들다. 같이 조무래기였으면 같이 벙쪄 보여야 할 텐데, 인영은 2002년의 사진에서도 여유롭게 미소를 띠고 있다. 잠깐 옆 동네 구경 나온 것 같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사실 인영은 예쁘지 않은 때가 별로 없었다. 말을 안 하고 있으면 무표정한 얼굴에 긴 속눈썹이 돋보였고, 웃으면 다람쥐 같은 앞니가 귀여웠다. 가늘고 긴 팔다리는 옷 태가 절로 나게 했다. 가끔 우리가 어쩌다 친해졌을까 생각해 보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근원 같은 건 모르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제법 서로의 빈틈을 잘 메우는 편이었다는 거다.

영국을 떠나기 하루 전, 우리는 엄마들 선물을 사러 버버리 공장에 가 보기로 했다. 여행 안내서에서 말하길, 런던에서 조금 떨어진 교외에 공장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비교적 싼 가격에 버버리 가방을 살 수 있다고 했다. 깨알 같은 글씨를 찾아 버스 번호를 확인하고 무작정 출발했다. 버스는 꽤 오랜 시간을 달려 우리를 어느 휑한 동네에 내려주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공장에는 특별히 매력적인 가방도, 특별히 눈에 띄는 가격표도 없었다.
“이게 뭐야, 망할 놈의 책.” 인영은 중얼거렸다.
우리는 낯선 동네의 처음 보는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이곳이 어디인지, 버스 정류장은 어느 쪽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구글맵도 자동위치추적시스템도 없던 시절이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면 최소한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주변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유령도시 같았다. 버버리 공장이 있는 유령도시. 인영은 지도를 폈다. 우리 중에 유일하게 지도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 쪽이 동쪽이니까…… 우리가 저 쪽에서 왔던 것 같아. 저리로 가보자.”
나로 말하자면 대부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쪽이다. 지도를 볼 줄 아는 친한 친구의 말이라면 더욱이. 인영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자 또 새로운 곳이 나왔다. 그 동네는 유난히 삼거리며 사거리가 많았고, 낯선 모퉁이에 설 때마다 우리가 의지할 것이라곤 얇은 지도 한 장뿐이었다. 유명한 관광지 근처도 아니었으므로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우리의 위치는 이름도 쓰여 있지 않은 작은 사각형 안이거나 가느다란 선 위 어디쯤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눈빛으로 지도에 구멍이라도 낼 것 같은 인영의 옆에서 나는 휘적거리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때였다. 저 멀리 빨간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 야 나 저 간판 알아! 아까 버스 타고 올 때 본 거 같아!!”
“정말? 확실해?”
“맞아, 저거 맞는 거 같아. 저 쪽으로 가면 저기 무슨 신발가게 나올 거야. 가보자!”
이후에도 여행 내내 우리는 그런 식으로 길을 찾았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방향을 잡는 건 인영이었고, 몇 가지 눈에 띄는 간판이나 조형물을 기억했다가 확신을 더하는 건 내 몫이었다.

삼십 대 후반의 우리는 여전히 자주 길을 잃는다.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건지, 멈춘 곳이 어디인지 도통 알 수가 없을 때 가끔 얘기를 나눈다. 이야기는 많은 경우 하소연이거나 한탄이 된다. 요즘 인영은 자주 화가 나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힘들어지는 육아, 자주 기대에 달하지 못하는 남편,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의 지긋지긋함, 워킹맘으로 살아야 할 날들에 대한 부담감 같은 것들이 그 애 안에 잔뜩 고여있다. 이런 것들은 마치 집안의 먼지 같아서, 일상을 사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쌓이다가 저희끼리 모여서 작은 공이 된다. 그게 또다시 풀풀 날리기도 하고 더 크게 뭉쳐지기도 하면서 마음 곳곳에 때를 씌우고 눈을 가리는 것이다. 인영과 같이 한숨을 쉬면서 나는 기억하려고 한다. 얘는 지도를 볼 줄 알아. 방향을 잡을 줄 아는 친구 옆에서 함께 걸으며 나는 인영이 못 보고 지나친 것들, 봤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눈에 담는다. 걸음마하는 딸을 바라보던 그 애의 눈빛을,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 때의 그 애 표정이나 운전할 때 턱의 각도 같은 것들을. 오늘도 인영이 계산하는 가츠동과, 그 옆에 빙수 얼음처럼 소복한 양배추 더미 같은 것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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