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각은 떠나지 않는다. 인중이나 손톱 밑, 무릎을 펼 때 생기는 깊고 얕은 주름 사이사이에 숨어 있다가 슬그머니 튀어나와 처음처럼 한결같이 부대끼게 하는 생각들. 얼마나 오랫동안 품고 있었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내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이제는 피부처럼 딱 붙어 나 자신이 되려고 하는 생각들. 내가 자격이 있을까. 이 일을 할 만한 사람일까. 내 인생을 거리라고 치고 거기에 가로등을 세우고 건물을 짓는다면, 이 문장들은 가장 크고 번쩍거리는 전광판이 될 것이다. 매일 그 거리를 지나는 나의 시선을 붙들고 발을 멈추게 하는 거대한 전광판.
일기를 뒤져보았다. 거의 매년 비슷한 내용의 글을 많이도 끼적여 놓았다. 2016년도 보라색 표지의 수첩엔 집단상담에 참여했을 때 들었던 말이 반복해 쓰여 있었다. ‘이렇게 허깨비 같은 사람이 있나. 진짜 너는 누구야 그럼. 왜 너만 하루를 30시간인 것처럼 살려고 해? 왜 부모도 선생도 안 그러는데 너는 왜 너를 무시해?’ 이 말들은 내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면서 깊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올라가려고 용을 쓰면서 떠올리는 것들이다. 지난주에는 축어록을 풀다 몇 번이나 멈추었다. 내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또렷하게 들리는 내담자 목소리에 비해 내가 하는 말은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아 녹음파일을 멈췄다 되감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나를 무시하는 나는 이번에도 꿋꿋했다. 중요한 말을 했을 리 없어, 좋은 반응을 했을 리 없어, 듣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언제쯤 나 스스로를 부끄러움 없이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십 년째 같은 말을 하며 한숨짓는 나를 보며 J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J는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올봄, 신촌의 한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언니, 내가 계속 연구하던 주제가 ‘성인 초기’였잖아. 그런데 이번에 학과장님이 불러서 그러는 거야. 나는 영유아 전문가로 임용된 거니까 연구 주제를 싹 바꾸라고.”
“뭐? 그럼 어떡해?”
“이제 영유아 전문가 해야지, 뭐.”
입을 딱 벌린 내 앞에서 J가 흐흐, 순하게 웃었다. 저거였다. 나한테 없는 거. 자신에게 적당히 기대하고 엎어지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툭툭 털어내고 일어나 히죽 웃는 거.
다른 이들이 한 것이라면 파놓은 코딱지도 예술이라고 치켜세울 수 있을 만큼 나 아닌 사람들의 성취는 대단해 보인다.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은 천재, 영감이 내린 예술가, 신이 돕는 손. 나는 왜 나를 인정하지 않나. 내담자에게 하듯 자신에게 질문한다. 인정받는 게 어떤 거죠? 전문가가 된다는 게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스스로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일단 해 보세요. 해보고, 해내면 칭찬해 줘야지. 너 이런 것도 할 수 있네? 대단하다. 애썼다. 아이들에게 하듯이 말이에요.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마음, 스스로 격려하는 것도 노력해야 해요.
멋쩍은 웃음과 잰 손사래가 겸손이 아님을, 나는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