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버스에는 나밖에 없었다. 버스 기사님은 삼십 분 정도 달려 나를 작은 시골마을에 내려 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울퉁불퉁한 노란 돌을 쌓아 만든 집이 몇 채, 그 외 눈길 닿는 곳은 전부 포도밭이었다. 양껏 가지를 뻗어 올린 나무가 너른 들판에 드문드문 서 있는 모습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흙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니 곧 거대한 종탑과 [아꾀이ACCUEIL](환영)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떼제공동체 입구였다.
떼제공동체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작은 농촌 마을인 떼제에 위치한 수도회로, 종교나 종파에 상관없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일하는 곳이다. 떼제의 수사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아직 한 번도 닿아보지 못한 마음속 깊은 데까지 울리는 기분이 든다. 당시 나는 프랑스에 체류 중이었고, 짧은 방학을 맞아 혼자 떠나는 여행에 떼제만큼 완벽한 곳은 없었다.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고립되지 않되 혼자이고 싶었고, 수사님들의 목소리를 라이브로 듣고 싶었다. 게다가 숙박비도 싸다!
도미토리의 차가운 철제 이층 침대 한구석에 짐을 풀고 공용 컴퓨터 앞에 구부정하게 서서 싸이월드에 접속하고 있을 때였다. “coucou, salut?(안녕?)” 내 어깨를 넘을까 말까 한 프랑스 여자아이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비켜 달라는 건가?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아직 로그인도 못했다고 투덜대자, 그 아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싸이월드 메인에 눈길을 던졌다. “맞아, 너무 느리지. 하지만 여긴 떼제인걸. 난 클로에야.” 그날 이후 클로에는 공중전화 앞에 줄 서 있을 때나 멍하니 호숫가에 누워 있을 때 종종 내 옆에 서 있거나 앉아있곤 했다.
떼제의 삶은 소박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썼는지 표면이 부슬부슬 일어난 플라스틱 그릇에 딱딱한 빵 한 조각, 단단한 버터 한 조각, 역시 딱딱한 초콜릿 조금과 다 마시고 헹궈낸 물 같은 코코아가 아침이었다. 각국에서 모인 청년들은 소박한 식사 후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의 노동을 하고 편한 언어 그룹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도 프랑스어도 유창하지 않은 데다 뻔뻔하지도 못했던 나는 말없이 식사 준비 같은 것을 돕고 유령처럼 혼자 산책하고 그림자처럼 앉아 있었다. 내 키가 조금만 작았더라면 아마 아무도 내가 거기에 있다는 걸 몰랐을 거다. 아담한 클로에와 함께 있으면 배식 줄에 설 때마다 수십 명의 정수리를 보는 내가 더 커다래 보였다. 얇은 스카프를 칭칭 두르고 어딘지 뚱한 표정으로 걷던 클로에.
한 번은 클로에와 둘이 공동체 문 너머 마을로 산책을 갔다.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지는 늦은 오후였다. 클로에는 예의 그 심드렁한 표정이었고, 나는 여전히 유령처럼 걸었다. 언덕을 내려갈수록 가을 들판에 무리 지어 엎드려 있는 흰 소들이 많이 보였다. 지평선이 길게 드러나는 곳에 이르니 이제 들판은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았다. 우리는 창가에 작은 화분이 놓인 어느 집의 야트막한 담장에 나란히 걸터앉아 말없이 뙈 오래 있었다. 가끔 한 명이 나직이 “쎄 마니피끄(정말 멋지다)” 하고 탄성을 뱉으면 한 명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전부였다.
종일 아이들 일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더니 동네 사거리 안에서 돌아다닌 것만으로 걸음 수가 만 보가 넘었다. 길에 시간을 다 버린 것 같아 억울했다.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차오르는 오늘 같은 날은 클로에와 나란히 앉아 바라보던 들판을 생각한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얼굴과 이름뿐이었지만, 더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말도 없었던 그날 오후. 소 울음소리를 따라 하며 웃던 클로에의 쳐진 눈꼬리 너머로 떼제의 풍경이 비친다. 커다란 종탑과 호숫가의 고요, 두런거리는 젊은이들의 말소리와 노랫소리, 함께 앉아 고개를 끄덕이던 돌담 같은 것들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외롭지도, 억울하지도 않다. 이런 기억이 있어 소란스러운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