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한 명 분의 기능을 하는 어른으로 키우는 것,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데에는 수많은 단계와 넘어야 할 벽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한 지난 십 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말을 고르고 혀를 깨물었으며, 감정의 파도에 올라탔다가 밤을 새워 눈물로 자책의 일기를 쓰고 다음 날이면 까맣게 잊었다. 십 년 넘게 배우고 적용해 온 발달심리학 이론은 많은 경우 나를 좀 더 나은 양육자가 되도록 이끌었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본성이 대립할 때면 나는 자주 고장 난 로봇같이 삐거덕거렸다.
“엄마, 저 오늘 영어학원 혼자 갈게요. 엄마는 허리 아파서 빨리 못 걸으니까, 혼자 얼른 가서 준수보다 먼저 도착해야지!” 집에서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 한 블록 아래에 있는 영어학원까지는 걸어서 10분. 꽃 보고 비비탄 주우면서 걸으면 20분 정도 걸리는 길이다. 올해 2학년, 3학년이 된 아이들은 집 앞 편의점과 학교, 옆 단지 할머니네 갈 때를 빼고는 혼자 다녀본 적이 없고, 특히 둘째 아이는 길을 건너다가도 흥이 나면 횡단보도 한가운데에서 눈을 감고 춤을 추는 녀석이다.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난 극성 엄마니까. 안 그래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태권도든 어디든 학원 앞에 가 있노라면 곧잘 마주치던 동네 엄마들이 최근 통 보이지 않았다. 큰애가 3학년이 되면서부터 주위 어디를 봐도 엄마가 옆에 같이 다니는 경우는 없었다. 내게도 핑계는 있다. 우리 애들은 휴대폰이 없으니까, 학원 뒷골목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차가 얼마나 많은데, 저 길은 아무 때나 우회전하는 차가 너무 많다니까. 갑자기 달려드는 커다란 자전거도, 바람을 가르며 공원을 질주하는 전동킥보드도 위험해 보였다. 나는 항상 잔뜩 긴장한 채 아이들 옆을 맴돌았다.
내게 필요한 건 아이들을 믿고 세상을 믿는 마음이다. 설령 자전거와 부딪히거나 무거운 유리문에 손을 끼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하기 위해 나는 나의 불안을 먼저 다스려야 한다.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보호하는 일은 이제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넘어지고 까지고 길을 잃어 울고 돌아오면 약을 발라주고 안고 토닥이는 것. 아프고 깨지는 건 막고 싶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잊지 않고, 충분히 무엇이든 경험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다.
둘째는 신나게 뛰어갔다. 뒤이어 첫째도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두발자전거를 자연스럽게 타게 된 지 이제 겨우 이틀 된 아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잘 갈 거라고 머리로 외고 입으로 중얼거렸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내츄럴 본 극성 엄마. “엄마는 엄마대로 산책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 해 놓고 멀찍이 걸어가며 빨간 자전거를 눈으로 좇았다. 아이는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학원 앞에 도착해 자물쇠 잠근 것만 확인하고 가려고 자전거 보관대로 다가가는데 쪼그려 있어 보이지 않던 아이가 움찔, 움직였다. 나는 재빨리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자꾸 넘어지는 자전거를 일으키고 서툰 손길로 자물쇠를 채우는 걸 숨어서 지켜보는데, 큰아이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기둥에 붙어서 흠칫 놀라는 나를 쳐다보는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하다. 아줌마가 좀 그래. 못 본 척해 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