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여기 나무뿌리 있어요!”
“민달팽이다!”
열어놓은 베란다 문틈으로 아이들 목소리가 빛을 타고 넘어 들어온다. 모처럼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서 온 가족이 함께 화훼 마트에 다녀온 참이다. 마트는 통로마다 서서 이름과 가격을 확인하고 놀라거나 감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양귀비, 수국, 팬지, 러넌큘러스 같은 예쁜 꽃나무들을 조금 서서 들여다보다 이내 걸음을 옮겼다. 봉오리가 활짝 열려 다 피어 버린 튤립은 지난주보다 천 원이나 가격이 떨어져 있었다. 이제 질 일만 남은 꽃이라 그런 거겠지. 꽃을 살 땐 봉오리가 많이 달린 것을 고른다. 하지만 꽃은 피어있는 시간보다 피어있지 않은 시간이 더 길기 마련이고, 물기를 머금은 채 활짝 열린 모습이 아름다워 며칠 감탄하고 나면 시드는 과정은 생각보다도 더 초라해서, 빛나는 순간보다 초라함을 더 오래오래 봐야 하는 게 지루하고 시뜻했다.
눈에 들어오는 건 꽃이 피지 않는 것들, 이제나저제나 눈에 띄는 특별한 변화 없이 꾸준히 비슷하게 생긴 것들이다. 오늘은 치자나무와 황금사철나무, 아펠란드라, 페페로미아 나폴리나이트라는 식물들을 담고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찍어 두었다. 초록은 다양하고, 무늬는 하나도 같은 게 없으며 이름은 하나같이 외우기 힘들다. 잎이 약간 도톰하고 단단한 것이 마음이 든다. 어느 계절에도 큰 기복 없이 있어 주리라.
아이들 성화에 조금 일찍 들여온 상추 모종 일곱 개를 임시로 큰 화분에 옮겨 심어 두고, 남편은 팔을 걷어붙이고 등산화를 신고 마당으로 나갔다. 구석에 쌓아 두었던 온갖 잡동사니를 걷어치우고 아이 손바닥만 한 마당을 어른 손바닥만 하게 넓힐 생각이다. 어제는 조그만 땅을 갈아엎고 비료도 뿌려 두었다. 포슬포슬한 흙이 분처럼 일어나고, 훈훈한 기운이 돌면 상추 모종을 옮겨 심고 둘째가 골라 온 당근 씨앗도 뿌려봐야지.
신이 난 아이들은 찬 바람 속에 코를 훌쩍이며 땅을 파고 있다. 그만 들어오지 감기 걸릴라, 하는 내 소리는 못 들은 척하고 모종삽이며 큰 삽까지 동원해 땅을 파고 있다. “그런데 이거 왜 파는 거야?” 물으니 첫째가 코를 쓱 닦으며 웃는다. “몰라요. 그냥.” 조금 더 땅 파는 걸 지켜보다 토분에 옮겨 심은 페페로미아 나폴리나이트(자꾸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다)를 만지작만지작. 그런데 이거 왜 키우는 거야? 몰라, 그냥. 삼십 분 뒤에 내다 본 마당에는 김장독을 묻을 만큼 깊은 구멍이 나 있었다. 뿌듯한 얼굴로 삽자루에 기대선 아이의 발간 볼에, 반짝이는 콧물 자국에, 손톱 밑에도 온통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