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하하하! 일어서래~”
아이들 깔깔대는 소리에 거실로 나가보니, 티비에서 웬 커다란 청년이 탁자 위에 올려둔 돌멩이에게 “앉아! 일어서! 기다려! 그렇지 잘했어~”를 외치고 있었다. 이어진 장면은 산책. 청년은 힘든 훈련을 마쳤으니 산책을 가자며 돌을 집어들고 길을 나섰고, 계단 위에 밀짚모자 씌운 돌을 올려놓고 “뛰어! 올라가! 할 수 있어!!” 하는 게 아닌가. “요즘 저렇게 돌을 키운다더라. 전에 미우새인가 거기서도 나왔어.” 동공이 확장된 채 눈도 깜박이지 않고 티비에 시선을 고정하고 서 있는데, 엄마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말했다. “와! 돌이다!” 언제 나갔다 왔는지, 엄마는 마당에서 주워온 맨질맨질 예쁘장한 돌멩이 서너 개를 아이들에게 내밀었다. 둘째 아이는 곧장 세면대에 물을 받아 정성스럽게 돌들을 씻기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이름도 붙여 주고는 종이를 잘라 침대를 만든다, 모자를 만든다 한참 법석을 떨었다.
애완돌을 검색하니 만 원 내외의 가격으로 구성된 다양한 상품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회색, 검은색, 황토색 돌멩이들은 각각 바닷바람을 맞고 둥글게 자란(?) 돌, 검은 피부가 매력적인 돌, 홍해바다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돌로 소개되었고, 추가구성품으로는 돌멩이에게 잘 어울리는 털모자, 산책을 위한 휴대용 파우치, 애완돌을 관찰할 수 있도록 투명 PVC 창이 달린 보관함, 애완돌 등록증, 가이드북, 편안한 보금자리가 되어 줄 토끼 모양의 털 방석 등이 있었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계속 읽어내려 갔다. 애완돌의 가장 좋은 점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란다. 먹이를 안 줘도 되니 돈이 안 들고, 배설을 하지 않으니 청소해 줄 필요도 없고, 가만히 내버려둬도 상관없을 테니 편하다는 얘기. 돌봄에 관련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애완돌의 단점은 단 하나. ‘교감을 할 수 없다’.
<샬롯의 애완돌>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간절히 동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샬롯에게 부모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커다란 돌을 선물한다. “짜잔~ 애완돌이다!”하고 팔을 활짝 벌리면서. 기대했던 선물이 아니지만 샬롯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어쨌거나 돌은 샬롯의 이야기를 무엇이든 잘 들어주었고, 조용하고 털도 날리지 않았으며 수영도(특히 잠수를) 잘했으니까. 샬롯은 거대한 돌에게 이름을 붙여 주고, 끈을 묶어 산책도 시킨다. 비탈길을 끙끙대고 올라가고, 함께 만화도 보고, 쌓기놀이도 한다. ‘교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끔 샬롯을 한숨쉬게 하지만, 샬롯은 돌을 마음 깊이 사랑하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돌에게는 눈코입이 없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도 알 수 없다. 살아 숨쉬는 무언가가 건네는 순한 눈빛, 보드라운 털, 축축한 혓바닥 같은 건 돌에게 기대할 수 없다. 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돌은 ‘키우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돌이 가장 잘 하는 것, 억지로 그렇게 만들지 않아도 그냥 하는 것, 돌이 생겨날 때부터 간직한 가장 큰 특징, 그건 아마 ’아무 말 없이 거기에 있어주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내가 사랑하고 싶은 방식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이 돌의 가장 큰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샬롯이 돌에게 했던 것처럼.
“엄마, 스왓(둘째가 붙여 준 이름이다)이 지금 영양제를 먹고 있어요.” 할머니집에서 종이를 잘라 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 둘째는 집으로 데려온 돌을 한번 더 씻기고 레모나 봉투 위에 올려두었다. 한 살 더 먹은 첫째는 이름을 붙여주거나 먹을 것을 주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드는 놈을 골라 책상 한 켠에 잘 올려 두었다. 반질반질 예쁜 돌을 쥐어 보았다. 손 안에 쏙 들어오는 느낌이 좋다. 처음엔 차갑지만 쥐고 있으면 이내 따뜻해지고 마는 돌. 동글동글 맨들거리는 돌. 손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다 코바늘을 들었다. 얼기설기 실을 엮어 옷을 입힌 돌은 본래의 냉기를 감춘 채 따뜻하고 부드러워 보인다. 좋아하는 언니에게 선물하고 문진이라고 우겨볼 참이다. 나의 온기와 돌의 성정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