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고프스타인, <할머니의 저녁 식사>
마음이 바쁘고 머리가 복잡할 때 일부러 찾아보는 그림책이 있다.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매일 아침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아침을 차려 먹고 온종일 호수에서 낚시하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할머니는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잡은 물고기를 손질해 천천히 먹고 재빨리 설거지를 마친 뒤 다시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다시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낚시하러 갈 수 있도록.
이게 끝이다. 이렇다 할 줄거리도, 반전도, 절정으로 치닫는 갈등구조도 없다. 그림책에 대한 글을 쓸 때면 그림책 내용이 지나치게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편인데, 이 책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이게 다인데, 이게 다라서 좋은 것. 처음부터 끝까지 심상한 표정의 할머니의 하루를 무심히 따라가면 그만이다. 생각지 못한 때에 찾아오는 크고 작은 이벤트로 분주했던 하루, 특별한 일 없이도 바스스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같은 내 자신이 초라해서 견디기 힘들 때, 배를 타고 나가 앉은 할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꼭 뭐 대단한 걸 이루지 않아도 괜찮단다, 원래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 매일의 할 일들을 하면서, 밥을 차려 먹고 재빨리 설거지를 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