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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카포 Nov 19. 2020

엄마, 나랑 꿈에도 같이 가줘.

나 오늘도 엄마랑 많이 못 놀았단 말이야.

어두운 새벽,

훌쩍이며 손을 더듬으며 내 곁을 파고드는 아이.

첫째구나.


“왜 깼어~ 왜 울어~”

“무서운 꿈 꿨어.”

“아이고, 그랬구나. 이리 와. 엄마가 안아줄게.”


안아주고 잠시 지나 좀 진정이 되면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루는 엄마, 아빠, 할머니랑 같이 가다가 잃어버렸다는 이야기.

하루는 귀신, 유령 등을 봤는데 너무 무서웠다는 이야기.

번갈아가며 대략 두 가지의 꿈을 교차해서 꾼다.

아이가 푹 잠을 자지 못한 지 2주는 족히 되어 가는 것 같다.

엄마 잃어버린 거야 깨어보면 꿈인걸 아니 다행이지만 귀신 꿈은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서울 것 같다.

귀신 꿈을 꾸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해주면 좋을지 생각한 바를 공동체 목사님과 성경공부 하는 분들께 여쭤보고 조언도 받아 들고 다시 맞은 밤.


들은 대로 아이에게 어서 해주어야겠다 마음이 바쁜데 스치는 생각 한 줄기.

‘아, 얘는 귀신 꿈만큼이나 엄마를 잃어버리는 게 무서울 수 있었겠다.’

내가 마음대로 꿈의 공포 척도를 정해 아이에게 대했던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가 신앙적으로 영적인 생활을 하나요?”

“아이에게 요즈음 심리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었나요?”

목사님은 이 두 가지 질문을 주셨다.

묵상도 하고 잠자리 기도도 하고 있으니 첫 번째 질문에는 Yes,

복직한 지 1년이 넘어가니 내가 갑자기 부재하는 상황도 아니니 No.


그런데 생각해보니 안정적이었던 아이가 악몽을 자주 꾸는 기간 직전까지 내가 너무 바빴다.

주중에는 회사일로, 새벽과 주말에는 코칭으로, 독서 모임으로, 저녁에는 두 차례 성경공부로, 눈코 뜰 새 없이 너무 바빴다.

나의 바쁨은 엄마가 집 안에 존재하기만 할 뿐, 공간을 엄격히 분리한다거나 날카로워짐을 의미한다.


생각해보면 공간을 분리한 것은 그 공간 외에서는 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는데

이제는 그 엄격함이 아이들에게 영역 침범을 불허하는 모습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재택근무 시간에도, 다른 분들과의 전화 또는 스터디 시간에도 부탁보다는 괴물 같은 얼굴로 명령하는 엄마가 있었다.

횟수로 따지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했을 말일지도 모른다.

“나가.”

“엄마 회사 안 가면 안 돼?”

“엄마 회사 그냥 그만두면 안 돼?”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나도 참 바보 멍청이다.

“엄마 나 엄마랑 놀고 싶어.”

이 간극을 왜 놓쳤을까.


엄마가 회사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아이에게 이해시키려 했다.

이성적으로는 엄마의 월급이 없어지면 벌어질 상황에 대한 설명을,

감성적으로는 엄마는 일하는 게 좋다며 너도 좋아하는 건 계속하지 않냐는 이야기까지 섞어가며..

부장님, 남편, 어머니의 마음은 공기까지도 힌트로 삼아 보물상자 암호 해석하듯 그렇게 읽어내려 애썼으면서 왜 아이의 마음은 더 빨리 알아차려주지 못했느냔 말이다.


내일은 어머니께 휴가를 드리기 위해 우리 부부가 휴가를 내고 아이들을 케어하기로 했다.

개천절 이후로 주말이 사흘인 주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아이에게 좀 더 다정하게 굴어야겠다.

그리고 아이 마음에 좀 더 곁을 내주어야겠다.


물론 하루 일을 쉬고 시간을 더 많이 보낸 들

아이가 원하는 상태에는 못 미치겠지만

적어도 하룻밤 악몽 정도는 덜어내줄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는 때란 없다. 안 온다.

그러니 너도 나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설득보다는 상생하는 길을 조금씩 찾아가야겠다.

지난 주말 동생들 다 잠들고 큰 아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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