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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카포 Nov 16. 2020

남에게 마음 줄 때와 돈 빌려줄 때의 유의점은 같다.

떼여도 괜찮은 만큼만 허락해야 한다.

일하는 엄마의 재택 근무일 아침은 사무실에 출근하는 날의 몇 곱절이 바쁘다.

눈곱도 제대로 못 뗀 얼굴로 등원하는 아이들의 시중 들어주랴

회사 메신저를 통해 업무 문의가 오진 않는지 확인하랴

홍길동 모드로 온 집안을 누비고 다닌다.


엄마가 없어도 아침 챙겨 먹고 세수 깨끗이 하고 잘하는 아이들인데

엄마가 집 안에 존재하는 이상 없는 셈 치는 것이 안 되는 것이다.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내 입으로

"할머니한테 해달라고 그래."

이런 말을 하면서 거절 처리하는 것도 고역이다.


물론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도가 지나치다 싶을 땐 한 번 끊어준다.

"얘들아, 엄마 지금 출근한 거야. 할머니께 부탁드려."

이렇게 되면 할머니도 아이들을 불러들이신다.

재택 하는 날 아침에는 물 한잔도, 화장실 가는 일도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사건의 발단은 그렇다.

나의 이런 재택 근무일과 너무도 대조되던 남편의 아침.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일이 있어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주기로 했고

금요일은 어머니께서 본가에 내려가셔야 하는 날이기에 칼퇴를 위해

남편도 있고 하니 등원 준비는 내가 없어도 되려니 하고 아침부터 정신없이 업무를 했다.


아빠의 호령에 맞춰서 아이들이 세수도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일하는 방에서 나가보지 않았다.

왜 하필 그때 목이 말랐을까.

물을 뜨러 나갔는데 눈 앞의 광경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남편은 어머니가 봐주신 아침상으로 식사를 하고 있고

어머니는 그 옆에서 아이들의 머리를 빗겨주고 계셨다.


나도 출근해서 일하는데?

그전에 나도 집 안에 "존재"하고 있는데?

한 지붕 아래 6명 중 한 분만 식사를 하고 계시는 모습.


좀 더 배경 설명을 하자면 나는 아침에 이미 대충 빵을 구워 끼니를 해결한 상태이긴 했다.

식사만 두고 보자면 그러하다.

그런데, 그동안 종종거린 재택근무하는 날 아침의 내 모습은 뭐였나?

아, 내가 알.아.서. 눈치껏 며느리 역할을 한 거였구나.


눈치 없는 남편은 밥 먹으면서 아이들 건강검진 관련 정보들을 나에게 물어온다.

식사하시는 옆에서 서서 질문에 답을 해주는데 목소리가 좋게 나가지 않는 게 당연지사.

이미 주중에 통화로 두어 번 설명해 준 기억이 있는 이야기를 또 물어오는 데다

코를 괴롭히는 아침 밥상에 샘 아닌 샘이 났다.


친정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풍경이 아니었겠지.

엄마는 아들 입만 입이냐며 온 집안을 카랑한 목소리로 채웠을 거다.

물론, 친정에서는 그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첫째라는 이유로 남동생이 서운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늘 엄마는 내가 먼저셨다.


방으로 돌아와 아침부터 휴지를 적셨다.

이 나이에 엄마가 보고 싶다고 아침부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친한 친구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너는 화난 게 아니라 서운한 거였다고

나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가 잘못한 것은, 떼여도 괜찮지 않을 만큼 마음을 쏟은 것이다.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시간에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헐어가면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애매하게 할애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머니가 알아주시길 바란 것이다.


괜찮은 만큼만 애를 써야 했는데 작은 애씀이 쌓이고 쌓여

기대라는 녀석이 눈덩이만큼 불어난 것이다.


그제야 남편도 나도 동등하다고 주시는 모든 것들을 당당히 챙겨 먹었던 내 모습조차도

애썼던 것임을 알아차렸다.

챙겨 오시는 비타민도 홍삼도 일부러 더 티 내면서 먹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해주시는 음식도 입에 좀 맞지 않더라도 엄지 척해드리는 애씀도 떠올랐다.


그 모든 것을 해주시는 어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이면 표현하면 된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어머니께 "잘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다운 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니라 어머니를 대하는 매 순간 애썼던 것이다.


법으로 묶인 가족이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데 필요한 시간이 있을 텐데

나는 그 시간들을 나의 애씀으로 빨리 지나가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더 이상 애쓰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계속 애쓴다면 나는 집 안에서도 대가를 바라는 감정 노동을 하게 되는 것일 테니.

감정 노동이 아닌 진심이고,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말이나 행동이 아닌 것은

거짓된 나의 모습임을 인정하고 멈추기로 결정했다.


서른 후반, 아직 인생에 배울 것들이 많다.

나름의 과제 분리를 잘해나가고 있는 중에 새로이 만난 과제에서 또 하나 이렇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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