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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카포 Nov 25. 2020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

건강은 성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

"다카포님은 진짜 체력이 좋은 것 같아요.

 자녀가 셋이나 있는 워킹맘인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해내세요?"

"네, 저는 진짜 해야 할 일들 빼고는 하고 싶은 것만 해요."

지금은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그런데 작년만 해도 이런 대답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네, 저는 그래서 내일부터 앓아누울 예정입니다. 데헷"


자타공인 유리체력이었던 나다.

고3 때는 담임선생님 차에 실려서 집으로 귀가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욕쟁이로 유명했던 우리 담임선생님,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꼭 한 마디씩 하셨다.

"덩치도 코끼리만 한 게 교실을 지켜야지 왜 맨날 아프고 ㅈㄹ이야?"

아픈 것도 서러운데 욕 듣고 수명이 1일 연장되었다...


아이를 갖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아가씨 때도 조금 과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아프고 하혈을 했던 사람이라

막연하게 아이를 갖기 어려운 몸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손발도 늘 차가워서 매년 보약을 연례행사처럼 맞춰 먹었었다.

결혼 전에 운동으로 살을 빼고 싶어서 헬스 PT를 받았는데

신나서 중량 치다 족저근막염이 와서 황망히 운동을 관둬야 했다.



엄마가 되고는 아픈 것도 죄가 되었다.

감기 걸리면 아이에게 옮길까 걱정하며 끙끙 앓으며 아이를 돌봐야 하기에

도와줄 사람마저 없던 상황에선 아픈 게 내 스스로에게 마이너스였다.


자녀가 한 명씩 늘어갈 때마다 체력이 좋아졌다.

먼저는 정신력이 달라져서였던 것 같다.

'아프면 너나 나나 죽는 거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 물고 버텼다.


그러나 체력이 어디 정신력만으로 되는 일인가.

게다가 나는 원체 체력도 약하고 환절기마다 감기를 달고 사는 사람.

그래서 작년부터 시작한 것은 적극적 운동이었다.


봄부터 다섯 가족이 한강변을 걷고 달렸다.

남편은 1,2호 킥보드 하나씩을 발판 삼아,

나는 3호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파워워킹과 걷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렸다.

주말에는 무조건 다섯 가족이 나가서 두어 시간씩을 걸었다.

주말 한 끼는 피크닉. 막내는 자고 일어나먄 바깥인 상황들 ㅋㅋ

여름이 끝날 무렵 필라테스 PT를 받기 시작했다.

첫 애를 임신하면서부터 허리가 약해져서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막연히 마라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코어부터 잡아줘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척추를 하나씩 내리는 동작도 허리가 퉁! 떨어져 몸과 마음이 따로 놀더니

점점 어려운 동작들도 제법 흉내를 내기 시작하게 됐고

일주일에 두 번 운동가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아 홈트로 코어 운동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뱃심으로 삽니다

올봄, 코로나가 생각보다 장기화되기 시작하자

남편 손에 이끌려서 새벽에 두어 번 산책 또는 산에 오르는 경험을 하고 나니

숨에 차는 운동도 하고 싶어서 점점 운동량을 늘였다.

그렇게 천천히 적극적 운동을 늘여가면서 드디어 7월에 마라톤 10km를 완주했다.


체력을 키워가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이 할 수 있는 일들로 바뀌었다.

마라톤 10km 완주 같은 신체와 연결된 목표가 현실이 된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 외에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체력이 되니 언젠가 맞이하게 될 제2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이리저리 좌충우돌해 보면서 실질적 성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른 게 파이프라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애 첫 메달

건강한 몸이 없으면 매일의 삶을 살아내는 것만도 버거워

꿈은 계속 꿈인 채로 두고 매일을 꾸역꾸역 살아내야만 했던 인생이었다.

그래서 셋째를 임신했을 때 난 이제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되는대로 살아야겠거니

반 포기한 심정으로 셋째가 나오면 난 이제 죽었다 생각하고 디데이를 기다렸다.


각오한 것보단 할 만했다.

그리고 시어머니께서 막내가 독감으로 입원하던 날 마침(?) 퇴사하셨다.

은혜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시간들이 쌓여 이제 우리는 여섯 가족이 생활하고

나는 덕분에 아이들을 어머니께 부탁하고 복직할 수 있었다.


만약 내 체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면 복직해도 만족스럽다기보다는

체력이 달린 채로 매일의 삶을 버티며 살아냈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내 몸을 돌본 덕에 월급과 다음 커리어 준비기라는 두 배의 시간을 번 셈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하루속히 적극적 운동을 시작하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유리체력이 콘크리트 체력이 되어가면서 (아직 강철은 아님...) 멘탈 또한 건강해지는 경험은 보너스!

세 공주 따라다니려면 아직 한참 더 운동해야 합니다 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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