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 Jan 04. 2017

물웅덩이

심심한 구름의 일상

그날도 나는 심심한 시간을 이겨내고 있었다. 이름 모를 거리 위에서 또 다른 이름 모를 거리로 옮겨가면서 말이다.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그다지 변함이 없어서 내가 같은 지점에 둥둥 떠있는 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던 중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를 보았다. 어제 온 비가 남긴 흔적이었다. 웅덩이 속에 비친 세상에는 내가 보지 못한 얼굴들이 있었다. 이 웅덩이는 내 시선을 사로잡을 만했다. 하늘에선 모든 것이 다 보일 것 같지만, 사실 바닥에 시선을 꽂은 얼굴을 볼 재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지만, 어쩐지 뒤통수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썩 기분 좋아지는 표정은 아니었으나 신기함에 발이 묶인 나는 거울 속에서 계속 그 표정들을 주워담았다....

 물웅덩이 속 구경에 맛들린 나는 다른 웅덩이를 찾아 둥둥 떠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지겨운 살구색 얼굴이 아닌 초록 얼굴들이 비치는 공원 속 웅덩이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자꾸만 보고싶은 한 잎의 얼굴이 담겨있었다.

 그 잎은 땅 위에 서 있는 나인 양 주변을 관찰하기 바빴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그와 함께 온 강아지를 하트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눈치없는 새가 앉아 가지가 흔들릴 때면 깜짝 놀라기도 했고. 나처럼 아래만을 보며 살아가는 누군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신기함보다 더 큰 무언가가 나를 같은 지점에 묶어두었다. 덕분에 햇살에 따라 달라지는 초록빛도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그 즐거운 자리를 떠난 건 그 잎이 웅덩이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잎은 웅덩이 속에서 하늘을 보고는 그 처음 보는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아래와 위의 세계를 동시에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 뒤로 나는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잎의 시선을 따라다녔다. 왼쪽을 보면 왼쪽을 보았고, 오른쪽을 보면 오른쪽을 보았다. 그러다 물웅덩이 안에서 시선이 마주쳤을 때, 나는 생각할 새도 없이 그곳에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후에 나는 꽤 오랫동안 후회했다. 잎을 비추는 거울이 다시 나타날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웅덩이를 되찾기 위해 노력할 동안 사람들은 자꾸만 비가 온다고 투덜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오면, 어차피 난 또 그 초록 없는 세상을 떠돌 수밖에 없게 되니까

 1월 4일
 물웅덩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