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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직장상사를 만났다면

아랫사람을 질투, 시기, 폭언하는 상사로부터 탈출하는 심리적 방법

무능력한 상사가 아닐지라도, 부하직원을 은근히 교묘하게 괴롭히는 유형은 조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꼭 조직의 크기가 크다고 이런 소인배 상사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10인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이라도 이런 유형은 존재할 수 있다.


위압감을 주는 말을 하거나
비하하는 말을 하거나
내 뒷담화 혹은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니거나
이유없이 계속해서 꼬투리를 잡거나
나를 은근히 소외시키거나(예뻐하는 무리를 만들어서)
내 성격이 문제라고 지적하거나


그런데 환장할 노릇은 조직 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그렇게 비인간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인 지 모르는 것 같다는 점이다. 내가 볼때만, 나 앞에서만 소인배 특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교묘하다고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모르니 더 억울하다. 저 사람이 저렇게까지 남을(특히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인간인지 아무도 모르는데. 내가 까발릴 수도 없고. 답답하다. 이직이 답인가. 내가 나가야하나. 그런데 또 억울하다. 내가 왜 저 사람 때문에 나가야해? 여기 일이 좋은데? 포기하고 싶지 않다. 저 인간이 나갔으면 좋겠다.


위의 이야기는 나의 이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저렇게 느꼈다. 그리고 나는 결국 몸도 마음도 지친채로 회사에서 나오게 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상사는 정말 불안했던 것 같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성과를 내야하는데 직속부하(나)는 자기 맘처럼 일을 안 해주고..윗사람 눈치는 보이고..자기는 조직을 '관리'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니 '실무'를 직접하긴 그렇고. 나를 쪼아서 자기가 원하는 성과를 만들고 싶었을 것 같다. 직급은 임원이었지만, 사실상 팀장의 역할을 했던 그는 나를 팀원으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 많은 걸 바랐나.


물론 자신의 불안(좋은 상사, 유능한 상사로 보이고 싶은 욕구 포함) 때문에, 나의 약점을 명확히 피드백해주고, 개발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지도할 여력까진 없었겠다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좋은 상사도 아니었고, 유능한 상사도 되지 못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우리 팀에게는. 내가 퇴사한 이후의 일은 알 수 없지만 나같은 부하직원에게는 너무나도 최악의 상사였다. 그를 보며 저런 상사는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나쁜 상사의 특징을 살펴보면 수치심 불안을 가진 사람이 많다. 책 <나르시시즘의 심리학>에서 정확히 그 지점을 언급하고 있다.




나르시시스트가 지배하는 직장_그들보다 빛을 발하지 마라
<나르시시즘의 심리학, 샌디 호치키스>

나르시시스트에게 필요한 부하직원이 나라고 포착되었다면, 나는 그 사람 몸에 붙은 또 다른 팔처럼 그의 자아의 연장이 된다. 그는 당신에게 곰살맞게 굴고, 보상을 약속하거나, 무슨 수를 쓰든지 자기 그물에 걸려들도록 유인할 것이다. 그는 당신을 계속 자기 지배 아래 묶어놓기 위해 당신을 조종하거나 창피를 주는 수법을 쓸 것이다. 그의 목표는 당신과 그 사이의 경계를 없애고 당신을 완전히 소유하는 것이다. 그는 분리를 일종의 위협으로 본다. 따라서 당신은 당신의 경계가 자꾸 침범당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가정 같은 직장' 운운하며 당신의 사생활, 건강문제, 직장 밖에서의 대인관계 등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P.195-196
01. 가정 같은(?) 직장

직장인 상담에서 이런 유형을 정말 많이 접한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나의 개인생활 SNS에서도 친구가 되려한다. 나의 24시간을 알려는 상사는 나의 모든 시간, 눈에 보이는 시간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까지 통제하고 싶어한다. 그것 또한 그의 불안이다. 나를 장악하려는, 나라는 '인적 자원'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


남자친구는 있냐? 얼마나 만났냐? 왜 결혼을 안하냐?부터 시작해서 둘이 술을 마시자고 하거나, 술자리를 하게 될 경우 성적으로 은밀하게 접근하거나 성적인 농담을 일삼는다. 당황하거나 정색하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 정색할 때 그치는 척 하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는 인간들도 많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직장상사가 나의 개인 생활을 침범하려한다면 반드시 선을 그어야 한다. 그와 나 사이의 경계를 더욱 명확히 하자.


02. 수치심 떠넘기기와 희생양 만들기

부하직원이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가진 걸 보고 열등감을 느끼는 유형이다. 사실은 부럽고 열등감을 느끼는 자신이 수치스러운 상태인데, 오히려 부하직원이 가진 그 면을 약점으로 몰아붙인다. 그렇게 나보다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언행을 통해 자신의 우월성을 회복한다. 그래야 본인이 괜찮을 수 있다.


나보다 잘나보이는, 나보다 유능한, 나보다 빛나는 저 부하직원이 대표자의 칭찬을 받기라도 한다면 비난의 수위는 더욱 높아진다. 그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이 집단의 수치심을 모두 떠넘길 수 있도록 전략을 짜기도 한다. 우리 팀의 실적이 나오지 않는 건 다 그 사람 탓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간다. 성과가 안 나오는 이유가 모두 내 탓일 리가 없다. 아무리 내가 팀에서 큰 역할을 맡고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다 뒤집어 쓸 일이 아니다. 성과가 안 나오는 원인을 명확히 분석하자. 다 내 탓이 아니다.


03. 원대한 비전

이런 걸 왜 해야하나? 생각이 드는 모든 잡무는 우리를 위해서, 꿈의 직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포장된다. 우리는 3년 뒤에 업계 TOP1위가 될 것이며, 5년 뒤에는 아시아 TOP1위, 10년 뒤에는 세계 TOP1위 수준의 연봉을 받게 될 것이라는 포부다. (실제 나도 이런 비전을 들었을 때 믿고 말았다. 너무나 확신에 차 있는 그 비전 선포식을 듣고 팔랑팔랑하던 때에 나.)


물론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미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으나 그 회사는 국내에서도 10년 전의 수준을 유지하고있는 듯 보인다. 그 때 그 원대한 포부를 외쳤던 임원도 그 회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비전은 어떻게 됐을까?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야망이긴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팩트인 것처럼 조직구성원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데 그렇게까지 열정을 들이면 안 되는 거였다. 그렇게 우리에게 사생활을 포기하도록, 밤샘근무와 주말근무를 칭찬하며 번아웃이 될 때까지 써먹으면 안 되는 거였다. 자신의 야망은 자신이 실현할 수 있는 만큼만 부려야 했다. 그 야망을 내가 그를 위해 실현해줄 순 없는 거였다.




나의 직속상사가 제멋대로 나를 조종한다면, 그 사람의 말과 눈빛, 행동 하나하나에 내 감정이 널뛴다면 그 사람은 나르시시스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르시시스트를 상사로 만났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나의 멘탈을 다지는 것이다. 그의 조종에 휘둘리지 않는 멘탈,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이 그의 말로 휘둘리지 않을 멘탈,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쓰기보다는 나의 업무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멘탈이 필요하다. 그를 평생 볼 것도 아닌데 그 때문에 괴로워하느라 낭비될 내 인생, 나의 마음이 너무나 아깝다.


- 그의 조종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자.
- 그와 경쟁하지 말자. 그의 시기심을 위협하면 그는 더 날뛰며 나를 괴롭힐 것이다.
- 나의 속내를 들키지 말자.
- 나를 지켜줄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자. 이럴 때 나를 지지하는 사람의 힘은 강력하다.
- 그리고 기회를 보자. 내가 나로서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는 조직문화로 이직하는 것이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에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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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Chloe Lee

그림: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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