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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가슴으로도 삶은 살만하다.

에리히 프롬 asked me '소유나 존재냐.'

2018년 6월, 갑자기 암일 수 있단다.

피곤하긴 했다. 5월즘엔 극도의 스트레스 사건도 있었고, 몸은 쭈욱 피곤했다. 직장에서 너무 내 몸을 혹사한 탓이겠지. 하고 넘겼다. 창업하고나서는 매년 하던 건강검진도 1년을 건너뛰었다.

뭐 괜찮겠지
이 나이에 뭐 별 거 있겠어?


괜찮지 않았다.

별 게 있었다.

그렇게 2018년 6월 말, 암선고를 받고 모든 일을 멈추게 된다. 내 나이 만 서른다섯.  2018년 7월 17일, 유방암 수술을 하게 된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만약에 암선고와 수술시점이 8월말이었다면 생일이 지난 나는 난 만 서른여섯이었을텐데, 딱 생일을 두달 앞두고 벌어진 일이라 '항암화학치료' 권유 조건인 '만 서른다섯'에 딱 걸려 수술 후, 무시무시한 항암화학치료를 거치게 된다.

그 때가 2018년 8월6일, 그로부터 두달 간. 나의 여름과 가을이 암수술과 항암치료로 지나갔다.


이 일련의 사건만 보면 딱 2년 전 일인데 난 또 참 많은 걸 잊었다. 좋은 것만 쏙 남기는 재주가 있는 지 그 시절을 또 추억하며 글을 쓰고 있다.

여전히 항암을 위해 항호르몬 치료의 일환으로 항암제를 매일 한알씩 복용하고, 한달에 한번 항암주사를 맞으러가지만 그것또한 일상이 되었다.


이렇게도 빠르게 미화할 수 있는 이유는 1기였다는 사실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 만약에 내가 조기검진으로 암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 만약에 내가 유방암 2기, 3기, 4기였다면
- 만약에 유방 이외에 다른 기관에 전이가 있었다면

나는 기질적으로 위험을 잘 못 보는 특성을 타고나서 내 몸의 위험도 지각하지 못하며 35년을 살았다. 이십대 후반에 유방에 혹을 발견하고 제거하는 수술을 했지만 단 한번도 내가 유방암이 걸리면 어쩌지?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건강염려가 제로이기도 했지만, 외가 친가를 모두 통틀어도 암환자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었으니 건강은 더욱 내 관심사 밖이었다.


천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

내가 조기에 암을 발견한 일이다.

그렇게 유방암을 진단받고, 1기였지만 왼쪽 오른쪽 가슴 모두에서 암이 발견되었다.

MRI를 보니 암조직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가슴 전체에 퍼져있었다. 전절제가 불가피했다. 그래서 바로 전절제하시죠 - 내 가슴아 안녕. 얼마나 울었는 지.


가슴은 내 자존감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가슴이라는 물질이 여성으로서의 자부심, 사랑받는 수단, 사랑받은 기억 모두를 담고 있었다. 그런 나의 가슴이 없어진다는 사실은, 추후 항암으로 머리카락을 상실할 때만큼 큰 두려움과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사건이 또 나에게 새로운 교훈을 남겼다.

진짜 가슴을 보내주고 가짜 가슴을 탑재하고 살면서, 샤워 후 거울을 볼 때마다, 옷을 갈아입거나 내 손으로 내 몸을 스칠 때에도 깜짝 깜짝 가짜 가슴의 촉감에 놀랐는데. 최근들어 이것 또한 내 몸에 일부이며, 이렇게 보이는 것이 나의 존재를 바꾸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 나의 화두인 '소유나, 존재냐'


갖고싶은 것도, 욕심도 많은 나에게 남편이 추천한 책이라 읽어보았다.

점점 나의 존재 자체, 사람의 존재 자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존재 자체,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시작했다.


눈 앞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이지 않는 가치도 수없이 존재한다는 걸


그렇게 서른여덟의 나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런 내가 맘에 든다.

아픔을 만나 주저앉지 않고 또 일어날 수 있음을 학습한 내가 맘에 든다.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가?보다 나는 어떤 존재로 살면 좋은가?에 관심을 가지는 내가 맘에 든다.


이렇게 나의 마흔을 준비중이다. 그 때는 또 어떤 역경이 찾아올 지 모르겠지만

삶에서 찾아오는 고통은 피할 수도 없으며

그만큼 행복감도 많이 찾아오는 게 그냥 삶인가보다 하며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며

그렇게 오늘을 살면 될 것 같다.

이 모든건 조기 건강검진 덕분이다.



올해의 건강검진 하셨나요?



글: Chloe Lee

그림: Pixabay,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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