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JTBC드라마 <바람이 분다>의 명장면, 명대사

아래의 글은 출간 예정인 <우리는 늘 같은 곳에서 넘어진다(가제), 스몰빅라이프> 초고의 일부입니다.


드라마 <바람이 분다> 7화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외쳤다

(미친연출! 미친대사! 미친연기!)


그 전까지는 그냥 잔잔하게 드라마 보는 시간에 보기 적절한 드라마라 별 생각 없이 보고 있었는데 7화의 이 장면을 보면서 내 마음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내가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보다 싶을 정도로 숨이 멎을뻔한 장면을 공유한다. 16부작이라는데 나는 여기서 이미 감동 다 받았다.

(스포 맞다)


말끔히 씻고 차려입은 알츠하이머 환자 도훈(38세~43세 이야기로 추정됨)이 스마트폰 녹화버튼을 누른다.

(도훈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걸 알고는 자신의 아이를 어렵게 임신한 사랑하는 아내에게 모질게 등을 돌리고 숨어 지내는 중이다)


-JTBC드라마 바람이분다 대사 중에서-

[동영상 녹화음]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숨을 한모금 깊게 들이쉰 후 도훈의 떨리는 말이 시작된다.

[목을 가다듬는다]

2019년 3월 23일

밤 11시 12분

도훈아

네 이름은 도훈이야, 권 도 훈

네가 사랑하는 사람 이름은 이 수 진

네 딸 이름은 아람이

.

아무것도 기억 못 하겠지만

어, 오늘은 기적이 일어난 날이라서

도저히 잊으면 안 되는 날이라서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거야


잘 들어, 도훈아

네가 죽을 만큼 사랑하는 네 딸 아람이

오늘은 네가 아람이를 본 날이야


[씁쓸한 음악]

기억을 잃어 가는 몹쓸 병 때문에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네 딸 아람이

.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쁘고

보고 싶었던 네 딸 아람이

.

‘아람아, 안녕’하고

아람이하고 인사를 했어

(눈을 꼬옥 감으며) 처음으로

[떨리는 신음]

(한참을 말을 못 이어가다)

음, 눈은 널 똑 닮았고

입술하고 이마는

너가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수진이를 똑 닮았어

.

손은 딱 요만했는데

너무 작고 예뻐서 만지기가 두려웠어


오늘은 기적 같은 날이야

진짜 천사를 만났거든

매일 매일 기억을 잃어 가겠지만

제발 절대 오늘은 잊지 마라

그리고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쁘게

아람이를 키워 준 수진이

.

사랑하고

[울먹이는 숨소리]

[목을 가다듬으며]

고맙고

미안하고

[눈물을 닦으며 말을 끝맺지 못하고 일어선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진이의 일상.



(장면이 바뀌며 도훈이 뇌MRI 결과를 듣는 날)


의사: 제 경험으로 보면 지금쯤 환자분은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야 하거든요. 신기한 건 물리적으로 뇌는 점점 노화가 돼 가는데 권도훈 씨의 인지 능력은 크게 나빠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현대 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기적들은 대부분 환자의 어떤 간절한 의지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엄마지만 어린 자식을 두고 죽어도 못 죽는 그런 필사적인 의지 말입니다


인간의 몸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자연적인 치유 능력이 있습니다

뇌도 마찬가집니다

퇴화는 막을 수 없지만 뇌를 사용하고자 하는 주인의 의지까지 파괴할 수는 없는 겁니다

아직 완치할 능력도 없는 의사지만 감히 말씀드립니다


의사는 희망을 보았다.

확신할 근거는 없지만 뭔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무엇. 이것이 자기초월(Self-transcendence*), 우리가 어찌할 수 없고 과학적 근거로는 설명이 어렵지만 왠지 신이 관할할 것 같은 영역, 우주의 기운, 뭐 그런 게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Self-transcendence is a personality trait that involves the expansion of personal boundaries, including, potentially, experiencing spiritual ideas such as considering oneself an integral part of the universe. 자기초월이란 성격의 한 차원으로, '자기'라는 경계를 초월하여 영성, 즉 우주/자연/신의 한 부분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하는 측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일어날 수 있는 영역의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


자기초월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퀄리티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것 또한 나의 자기초월에서 나오는 믿음이고, 심리학자로서 실험이나 서베이 연구로만 제안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영역에 대한 나의 깊은 신뢰다. 마음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 그래서 내 마음은 오늘의 내가 가장 잘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은 우리의 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몸을 돌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음과의 연결선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계속 전하고 싶다.




글: Chloe Lee

사진: pinterest

https://brunch.co.kr/@itselfcompany




매거진의 이전글 이유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