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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만난 초등학교 친구가 지금의 나를 보며 한 말

지금은 지금에 맞게 적응하고 변화중이다.

초등학교 때 여의도성당에서 반주자로 일하면서 만났던 성당선배언니들이 너무 무서웠다. 난 나에게 맡겨진 반주자 역할만 하고 도망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언니들의 '다정하지 않은' 얼굴 표정이 '나를 싫어한다'고 해석했던 것 같다. 나도 그 언니들에게 먼저 다가가거나 다정한 후배역할을 하지 않았고, 그 언니들도 나를 다정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인데, 그냥 그 땐 그 '차가운 온도'가 무서움으로 다가왔던 나였다.


그러던 와중에 새로운 반주자가 들어왔다. 심지어 나랑 동갑친구이었다. 같은 동네,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는 J는 나에게 단비와도 같았다.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고, 그 인연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의지할 곳 없었던 내가 그 친구 한 명의 존재가 생기면서부터 얼굴에 미소도 생길 정도로 난 '관계'적인 사람이 맞나보다.


그런 J를 오랜만에 만났다. 늘 만나던 J 부모님네 가게에서.(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니, 5년즘 되었다고 결론내렸다.) J는 나에게 궁금한 게 참으로 많았다. 결혼할 때쯤 만났던 것 같아 그 이후 소식을 업데이트하고 싶어했던 것. (안 그래도 그 날 말하는 일이 많았던 난 그 날 J랑 헤어지고 목이 아플 정도로 떠들었다.) 요지는 내가 나를 먹여살리는 요즘의 삶이었다.


- 취업 후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 두 개의 직장을 다니다 퇴사후

- 남편과 함께 창업을 하고 2년차에

- 암에 걸려 항암까지 했다

(J는 나의 암이 3,4기쯤 되는 줄 생각하고 걱정이 엄청 많았었다. 실제로 나의 암은 1기였는데)




대략 여기까지만 전화로 듣고 궁금한 게 참으로 많았던 J는 하나하나 디테일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나 목아파!!


라고 승질내면서도 친구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면서 나도 그동안의 삶을 정리해나갔다. 그런 내 얘길 다 듣고 J가 눈을 똥그랗게 뜨며 나에게 한 말은


이런 너의 모습 상상도 못했어!


J가 기억하는 어린시절 나의 모습은 '온실 속의 화초'. 내 손으로는 수저 하나도 놓아보지 않았을 것 같은 공주님. 돌아보니 그 땐 그랬다. 부모님의 경제력에 의지하며 내 손으로 아무 것도 못하던 그 때의 나는 지금의 삶에 또 적응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우린 여기까지 오느라 너무 고생했다고, 서로 대견해했다.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마흔의 삶도 잘 살아보자고, 서로 이렇게 서로를 기억해주고 지지해주자고 얘기하며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리고 언제든 또 보자고. 담백하면서도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흐뭇한 감정이 들었다.


목은(몸은) 피곤했으나 마음은 따듯했다.

내가 잊어버렸던 나의 과거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현재의 내가 애쓰며 살아가고 있음을 담담하게 응원해주는 존재의 소중함을 오랜만에 느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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