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믿을 때

by 문지훈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일을 벌이고자 할 때, 시작점에서 우리 대부분은 두려움을 느낀다. Comfort Zone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익숙했던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스스로 혼란을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혼란은 어두움과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고, 그 누구도 어두움 속에서 걸어 다니고 싶지 않다, 적어도 오래는.



자신을 믿거나,


또는 반대로


믿지 못할 때의


차이를 구분하고 싶을 때


방법이 하나 있다.


자꾸만 다른 성공 사례들을 흉내 내려고 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다면, 아마도 우린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


반면, 특별히 누군가의 의견이나 사례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 하면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있거나,


아니면 정말로 자신을 믿고 있다는 증거가 만들어진 것이다.


책을 내게 위해 글을 쓸 때도, 앨범을 제작할 때도 두 태도에 의해 리얼과 가짜가 갈린다.


표절하는 아티스트를 보고 사람들은 그의 용감함에 대한 신뢰를 의심하게 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강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구는 누구의 영향을 받은 것은 표면적으로 너무 잘 드러내기에, '비겁한 도둑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는 있고 그런 의견도 충분히 합리적인데.


우리는 정말로 참된 오리지널리티, 즉 독특함을 두 눈으로 볼 때 입이 벌어짐을 막을 수 없다.


난 칸예 웨스트를 볼 때 그렇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인기가 많은 것은 단순한 운이나, 마케팅이나, 애인의 인지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많지만 사실 중심에는 보석보다 단단한 노른자가 있다. 그들은 어두운 세상에, 고통과 절망이 가득한 세상에, 내일이 약속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서 용감하기 때문이다. 어두움 속에서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흔들릴 때 봉화를 들고 사람들을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리더이기 때문이다. 리더는 총알받이다. 리더는 도로를 만드는 설계자다.


의미를 창조하기 때문에 그들은 위대하다. 시각에 의해서 현실이 만들어진다.

뉴스에서 아이들이 어떠한 종교인의 리더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성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의미를 잃는다.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묻게 된다. 답이 신에게서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그 답을 찾은 것을 미루거나,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신도 없고, 심판도 없고, 상과 벌이나 선, 심지어는 악마저 없다는 답을 누군가가 내리게 된다면, 의미도 이 모든 것과 함께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어두움 속의 촛불처럼, 아예 존재한 적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종류의 사람들은 그 불을 다시 나타나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불을 준다. 세상은 다시 잠깐이라도 밝아진다.


이 모든 기적들의 본질에는 개개인의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자신감은 성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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