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을 입혀봐

by 문지훈

내가 25살 때쯤에 알게 된 교포 여자 사람 친구가 있었다.
우린 비슷한 시기에 한국 힙합씬/스트릿 문화에서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서로에게 좋은 친구들이다.

몇 년 전에 너무 힘들던 시기에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어떻게 지내냐고 나에게 물었다.
힘들어 보이기 싫어서 나는 나의 상황을 묘사할 때 평소보다 조금 더 긍정적인 빛을
첨가해서 내레이션을 했다.

그랬더니 그의 반응은 … 약간의 ‘그래 부럽다, 너 똥 굵다.’ 이런 식이었다.

그는 분명히 나의 친구이기 때문에 독한 마음을 나에게 품었을 리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반응이 나를 놀라게 한 이유는 두 개였다.

첫 번째는, 그가 자신의 분야에서 매우 잘 되고 있었다고 난 생각하고 있었고,
적어도 겉보기에는 지금도 그렇게 보인다. 그의 커리어는 화려하다, 누가 봐도.

두 번째로 놀란 이유는, 난 속으로 ‘시발 좆같은데 그렇다고 말하긴 좀 결례인 것 같고, 힘든 것 티 내기 싫고, 그래서 적당히만 잘 지낸다고 하자’로 답변을 주고 있었는데
어색함을 애써 가리려 하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치.. 좋겠네.. 에휴 난 힘든데’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이 그 짧은 순간에 깨달음을 줬다. 그래서 놀랐다.

그동안 난 남들이 나의 행복과 성공도를 재주는 기준이라고 생각을 해왔던 것 같았다.
물론, 백 프로 타인에게 맡겼던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대중의 시선을 굉장히 의식했던 것.

그런데 그 와중에 객관적이지도 않았다는 것.

누구는 누구를 실패자로 보고 있을 수 있고,
누구는 본인의 삶이 괜찮은데도 가까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부러워하고 있을 수도 있다.

결론은 내가 나의 상황을 좋게 본다면 내가 괜찮아지는 것이고, 그게 사실 다인데,
속어로 ‘가오’까지 챙기고 싶다면 그렇게 자신과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남들까지도 나의 관점으로 나를 보게 만드는 것.

무엇이 어찌 됐든, 내 상황에 그림자를 괜히 더 얹어서 좋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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