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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Apr 08. 2020

친구가 집을 사니 배가 아팠다.#처방전:웃음 통장 개설

 친구가 집을 샀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기꺼이 축하해 줬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했던가. 나는 언제 한국 가서 다시 자리 잡고 집을 사지? 불현듯 새까만 미래에 대한 습격이 시작됐다.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라더니,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30대 후반의 결혼한 부부라면 제일 관심을 갖는 것이 아마 내 집 마련일 것이다. 시작은 전세였을지라도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아이도 있고 은행 빚을 내어 무리를 해서라도 내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적으로 한창 돈 벌 나이에 우리 부부는 벌기는커녕 모아 놓은 돈을 까먹고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유유자적하며 살다가도 이따금씩 한국의 친구들 얘기를 듣다 보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독일에서의 감정 기복은 정말 심했다. 여유로운 삶에 만족했다가, 좋은 집과 차를 마련하는 지인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나만 도태되는 것만 같아 쭈그리가 된 듯했다. 통장을 들여다보며 아무래도 한국에 다시 돌아갈 상황에 대비해 식비라도 줄여야겠다고 말하니, 남편은 장난 삼아 ‘먹는 것만큼은 아끼지 말라며 내가 소싯적에 얼마를 벌었는데’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이 말은 나를 더 화나게 했다.


“여보, ‘소싯적에’라는 말이 붙는 건 바로 꼰대의 시작점이야. 지금 못 나가는 사람들이 꼭 과거 운운하며 ‘소싯적에.. 어쩌고 저쩌고, 나 어릴 때는 말이야.. ’ 이런 말들을 구구절절한다니까. 현재가 중요하지, 과거가 무슨 소용인데?! 세상에서 제일 형편없는 유형이 뒤만 돌아보는 인간이야.”



 남편은 말로 주고 되로 받았다. 괜히 의기소침해진 내가 툭 쏘아붙인 한 마디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그에게 적잖은 상처가 됐을 것이다. 독일에 온 것은 다른 길을 걸어가보고 싶다는 그의 목표가 가장 컸고 삶에 대한 새로운 마음가짐을 세워보자는 것도 있었지만, 이 신념은 자주 흔들렸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랬다. 몇 달도 아닌 몇 년의 수입 공백기가 불안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아 놓은 돈이 소리 없이 사라져 갔다. 그것은 마치 케밥집주인이 커다란 덩어리의 고기를 슥삭슥삭 잘라내는 것과 같았다. 주문이 늘어남과 동시에 육중했던 고기는 어느새 철제 기둥만을 남긴 채 고갈된다.마치 내 피와 살로 모은 돈이 떨어져 나가는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한 번 이 생각이 드니 계속 연상이 되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케밥을 싫어하게 됐다. 남편에게 앞으로 그놈의 '개밥'을 안 먹겠다고 선언했다. (참고로 독일은 터키 이주민이 많아서 케밥은 소시지와 동급으로 많이 먹는 간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예상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초조했다. 우리 부부는 경제에 밝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금수저는 무슨 은수저도 못될뿐더러, 태생적 부자가 아니라면 일찌감치 재테크에라도 눈을 떴어야 했으나 무릎을 탁-칠만큼 돈에 대한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숫자 앞에서는 심각할 정도로 약했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우리는 돈에 대한 미련을 좀 더 일찍 버렸어야 했을 것 같다. 뭐 그래도 가장 늦었을 때가 빠른 때라고 하셨던 우리 조상님들의 명언을 믿어보며 부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자고 했다. 돈에 얽매이지 않기위해 노력이라도 해보자는 것이 토론의 결론이었다. 지금 독일에서 돈에 운운하다 보면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우는 마음의 건강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더니 마음이 좀 편했다.  


 그렇다면 내가 한국에서 벌던 경제적 수입의 공백 대신 이곳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었다. 소설 <시간을 파는 남자>에는 제목 그대로 시간을 파는 남자가 등장한다. 시간의 주인이길 꿈꾸기만 할 뿐,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던 주인공은 어느 날 기막힌 상품을 하나 만들어낸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5분을 담아서 특허를 낸 뒤 판매를 시작했는데, 이 ‘시간 상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읽으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밖에 안 나오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같은 이야기이지만 공감이 갔던 것은, 바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5분 만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리학 영역에서 시간은 완벽하게 정의될 수 없으며 태초에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학설이 있다고 한다. 충격적이었다. 대체 왜 나는 없을지도 모를 이 시간을 붙들고 계획을 짜고, 목표에 도달하면 기뻐하고 틀어지면 슬퍼하는 삶을 살았던 것인가.


실체 없는 시간이 생각하기 나름이라면, 나는 소설 속 사람들이 갖고 싶어 했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빨리빨리를 외치던 내가 독일에 온 이후, 한국의 지인들에게 뭔가를 부탁하거나 받게 될 때 제일 자주 하는 말은.. “천천히 하세요. 여기선 남는 게 시간이니까요.”였다.


시간의 주인이 된 시간 부자의 자산은 ‘웃음 통장’이었다. 우리는 이따금 ‘웃음 통장’ 놀이를 했다. 내가 돈 문제로 투덜거리면 그는 “걱정 마, 우린 웃음 통장이 있잖아.” 라며 유명 개그맨을 따라 엉뚱한 제스처를 취했다. 내 이상형은 웃긴 남자였는데 그 한 가지 요인에서만(이 외에 단점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입니다.) 비추어보면 나는 이상형과 결혼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 때문에 웃는다. 그의 유머에 내가 빵~ 터지면 “웃음 계좌에 잔액이 이체되었습니다.” 라며 내게 문자를 보냈다. 물론 이 남자도 처음부터 이렇게 웃겼던 것은 아니다. 연애시절에는 약간 유머스러웠고 결혼 후에는 좀 더 재밌어졌다가 독일에 오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웃긴 사람이 되었다. 누구보다 마음이 여유로워진 사람은 나보다 남편이었다.


독일에서 우리 스스로 개설한 웃음 통장에는 몇 십조의 돈이 예치되어 있다. 단언컨대 이 통장은 영원히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돈돈’ 거리며 발을 동동대던 나는 
어느새 우울한 누군가에게 
기꺼이 웃음을 이체해 줄 만한 
부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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