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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Apr 07. 2020

부자되기도 어렵지만 극빈층이되기도 어려운 독일에서

만족을 배운 날

                                                                                                                                                       

간단히 내 친구를 소개하자면 직업은 작가다. 하지만 정식으로 책을 출간한 적은 없다. 나이는 44세고 미혼이다. 결혼할 용의는 있지만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다.


이 친구를 만나면서 의아했던 점은 대체 직업이 없는데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사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는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며 몸을 사린다. 그나마 본인 명의의 작은 집이 있다. 방이 두 개이기 때문에 한 방은 자신이 살고 다른 한 방은 월세를 준다. 독일에서는 쯔비쉔이라고 해서 방만 세 들어 살고 거실과 주방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인 거주의 한 형태이다. 이 동네 쯔비쉔이 300~400유로 선 인 것을 감안하면 월세로 살아가기엔 부족하다(이 역시도 주관적인 내 기준이다.). 집을 소유하고 있으니 내야 하는 세금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혼자서 넉넉할 것은 없지만 아쉬울 것 없이 반 백수 상태로 유유자적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글을 쓰고 화초를 키우며 가끔 친구의 고양이를 대신 보살펴 준다. 흔히 말하는 식물남에 가까운 삶이다. 그렇다고 딱히 그의 삶이 비루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삶이 굴러가는 모습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꽤 열심히 살아온 내게는 신기하게 비쳤다.


예전에 MBC 서프라이즈에서 한 번도 일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온 독일인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그 이유인즉슨 국가에서 지급되는 최저생계비로 삶이 보전된다는 것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이 친구도 마찬가지로 노후 걱정이 별로 없다. 나라에서 책임을 져 줄 것이란 신임이 두텁다. 그 믿음에는 탄탄한 사회보장제도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독일인은 정부를 신뢰하고 공교육과 공공 사회복지 제도를 믿는다. (물론 이 사회보장제도는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에게만 월등히 좋은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평범한 독일인의 가계부를 크게 뭉뚱그려 보면 월수입의 1/3은 월세, 1/3은 세금, 나머지 1/3로 생활을 유지한다. 그래서 독일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한탕 큰돈을 벌기 위해서 독일에 이민을 오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말리고 싶다. 부자가 되기 어렵다는 것의 연장선에서 가난한 자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 나라가 독일이다.


대체적으로 이 사회에서 넓은 범주를 차지하는 중간층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이는 훌륭한 사회보장 제도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 사람들은 삶을 대하는 방식 자체가 긍정적이다. 어쩌면 인생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뇌리에 꽂혀있는 ‘유럽=여유’라는 공식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독일인들이 자주 쓰는 단어 중에 “zufrieden” 이란 형용사가 있다. 주된 뜻은 ‘만족한’이란 뜻이다.(나는 이 단어를 인터넷 쇼핑 상품평을 통해 알았다; 여기서 또 만족하지 못하고 채우는 물욕 본능이 드러난다.) 이 단어는 만족한과 동시에 행복한, 즐거운, 평화스러운 이란 의미도 내포한다. 즉 이 사람들의 사고체계에서 만족한다는 것은 곧 행복하다가 형성되어 있다.


만족(滿足): 1. 마음에 흡족함.
2.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함.


한국어에서 ‘만족’에 대한 뜻도 아주 멋지다. 하지만 단어의 의미와 달리  ‘만족’이라는 단어가 죄악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만족하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만족하면 도태된다’는 이상한 명제가 따라붙으면서 게으르고 나태한 자의 어떤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물론 안주하지 않고 발전한다는 것은 인류 도약의 아주 중요한 디딤돌이 되겠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 역시 만족보다는 부족한 쪽이었다.

통장에 돈이 부족했고,

옷장에 옷이 부족했으며,

냉장고에 음식이 부족했다.

항상 모자라지 않나를 걱정하면서 채워 넣는데 급급했다.

심지어 글을 쓸 때도 분량이 좀 적나? 다시 한번 끄적거려 보는 것이

나란 사람의 습성이었다.



이런 내 기준으로는 응당 부족해 보이지만, 부족할 것 없이 사는 그가 처음에는 철없이 보였지만 나중에는 한결같이 행복한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안분지족’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자연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한 번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하게 들었다. 이 역시도 여전히 내 삶에 만족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지금껏 내 감정의 주머니들을 모으기보다는 게으름이라 여기며 밀어내는데 집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처리해 내고 또 처리해 냈는데 또 처리할게 밀려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일의 공격 같은 것이었다. 


나는 30 평생 넘도록 부족에 떠밀려 
만족을 몰랐다.
그래서 항상 결핍에 시달렸다.
명백히  감정을 소홀히  대가였다.


내 몸의 욕구와 내 가슴의 본능에 때때로 충실해도 괜찮다. 내가 좀 빈둥거린다고 해서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만 돌아간다는 것을 나는 한국을 떠나오면서 알게 되었다. 나 아니면 안될 줄 알았던 내 자리는 잘도 채워졌다. 그날로 나란 인간에 만족하며 좀 살아보자고 노트에 대문짝만하게 썼다.


낙천과 긍정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오늘도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돈이 인생의 목표라면 너무 슬프지 않니?

우리는 삶을 즐기기 위해서 태어난 거야.

그러니 공원에 햇볕이나 쬐러 가자.

오늘 햇살이 이번 주 중에 제일 좋아.

인간은 계절의 변화를 등한시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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