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생활자KAI Apr 12. 2020

독일에서는 '성'이 은밀하지 않았다

탈의실이 없다니요;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요가와 필라테스를 병행했었다. 독일에서도 다니고 싶었는데 당체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기를 1년,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되겠다 싶을 때 즈음 등록을 했다.


가끔 별 걸 다 독일에서 개발했구나 싶을 때가 있는데(이를테면 택미미터기 같은 것입니다.), 필라테스도 필라테스(Pilates)라는 이름의 독일인이 고안 했다. 1988년 12월 9일 독일의 몬첸글래드바흐에서 태어난 그는 서커스 단원으로 일을 했다. 1914년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필라테스와 극단은 영국 포로수용소에 구금되었는데, 당시 2만 여명이 넘는 수감자들을 위한 운동을 만들게 된다.

이를 계기로 독일로 송환된 이후에도 건강과 신체 발란스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면서 필라테스 리포머 기구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필라테스의 나라에서 배운 수업은 꽤 괜찮았다. 저렴한 가격이 만족도에 크게 기여한 것도 있지만, 넓은 공간과 녹음으로 드리우진 주변 풍경, 창문을 열면 내 귓가에 들리는 새소리는 꽤 호젓한 경험이었다. “역시 자연친화적인 독일이군..” 하며 나도 모르게 유럽 사대주의에 한껏 빠져 이 순간을 만끽했다.


한 가지 슬픈 사실은 보통 마지막에는 다 눈을 감고 몸을 이완시키며 ‘릴렉스~~~’를 하지만, 유일하게 또랑또랑 눈을 밝힌 채 강사를 보며 수업에 임하는 사람이 나라는 점이다. 눈을 감으면 동작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릴렉스를 할 때도 발가락을 세운다든지, 몸은 누워있되 등은 떠 있는다든지 여러 동작이 있었는데 백지장보다 얕은 내 어휘력으로 다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저도 눈 감고 명상이란 것을 하고 싶습니다.) 마무리를 할 때도 강사가 내면의 평화를 찾으라면서 우당탕탕탕으로 시작해 블라블라 낮은 목소리로 조근거리는데 1도 안 들렸다. ‘자고로 내면의 평화는 스스로 찾는 것이지 암.’





그냥 여기서 수업이 끝나면 모두가 옷을 갈아 입는다


하지만 내가 눈을 감지 않고는 못 베기는 상황은 따로 있었으니 수업 종료 후 옷을 갈아입을 때였다. 한국의 대부분 요가, 필라테스 학원에는 탈의실이 있다.(없는 곳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탈의실을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첫날 탈의실을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대는 내가 민망하게시리 그들은 그 자리에서 옷을 훌러덩 훌러덩 벗어던졌다. (물론 독일의 모든 학원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대형 스포츠 센터에는 탈의실이 있습니다.)


수강생 가운데는 당.연.히 남자도 있었다. 그런데 남자도 여자도 서로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옷을 갈아입는데다가 심지어 서로 간에 대화도 주고받았다. 굳이 남 옷 갈아입는 것을 보면서 할 말은 뭐가 있을까. 내 눈을 어디에 둬야 좋을까? 이 무슨 남사스러운 광경인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불행히도 부끄러움은 온전히 나만의 몫이었다. 도무지 적응하기 힘든 유일한 한 사람은 홀로 조용히 ‘안녕’을 외치고 화장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거나, 입던 옷에 옷을 걸쳐 입고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본 사람 마냥 후다닥 그 자리를 떴다.


이토록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를 잘 지키고 있는 민족이라니.. 그들은 대체 왜! 남녀 구분 없이 태평하게 옷을 갈아입을까. 사우나를 통해 이미 한차례 혼욕 문화를 경험한 나였지만 이 상황만큼은 적응하지 못했다.


독일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봐도 뾰족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오랫동안 자리 잡아온 문화일 뿐이었다. 동독에서 시작된 나체주의 문화는 성에 대한 건전한 접근과 자연주의를 통한 인간 생활의 즐거움이라는 명목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는 개방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독일의 열린사회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독일에서는 ‘성’이 은밀하지 않았다.


 성교육도 굉장히 일찍 이루어지며 학교에서 피임하는 법을 배우고(예를 들면 콘돔 사용법을 배웁니다.) 성과 관련해서 토론도 한다. 그렇다보니 서로에 대해 별 다른 감정이 없는 갑남을녀가 옷을 갈아입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물론 머리로는 독일의 문화를 이해한다. 하지만 남녀 칠세 부동석의 나라에서 태어난 내 머릿속에 남녀는 엄연히 다름으로 구분 지어져 있었다. 도무지 그들처럼 옷을 입고 벗고 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독일에 오래 살아도 영원히 넘지 못할 산은 다름 아닌 ‘개방성’에 있었다.



이 부분은 내게 있어 베를린 장벽보다 더 높은 벽이었다. 진짜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벽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사회적 관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넘지 못 할 벽도 있는 법이다. 굳이 그 벽을 툭툭 쳐대며 넘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무너트리지 못할 바에야 그냥 남겨두기로 했다. 솔직히 이 나라에 100% 적응할 필요도 없었고 하지도 못한다. 그들과 나는 생김새 자체가 달랐으며, 내가 아무리 독일어를 열심히 배운다한들 한국식 독일어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것은 흉내 내기에 불과했다. 독일인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여기 산다고 해서 삶의 방식을 무조건 따라할 마음도 없다.



나는 다만 독일을 좋아하는
독일에 사는 한국인이다.


인생사가 그랬다. 크게 퉁 쳐서보면 나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한 남녀의 뜨거운(?)사랑으로 태어났으며 잠시 이생을 즐기다 가는 것뿐이었다. 마음에 드는 옷은 입되, 맞지 않는 옷을 굳이 끼워 맞춰서 입으려고 아등바등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넉넉히 내게 맞는 옷을 입고 힘 좀 빼고 편하게 살다가 저 세상 가고 싶다며.. 여전히 강사의 명상 멘트를 다 이해하지 못한 나는 혼자 깊은 명상에 잠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발음이 어때서? 인종차별 복수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