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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Apr 16. 2020

나는 왜 여행할때 독일과 다른나라를 비교하는가?

독일여행 OST 외로움 증폭장치

                                                                                                                 

라이프치히보다 작지 않아? 옷 가게가 많은 것 같지?
옷차림들이 확실히 세련됐어.
사람들이 영어를 더 잘하지?



독일에서 여행을 하게 되면 이상하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와 비교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국에 살 때도 꽤나 국내여행을 많이 했는데 굳이 그 장소와 서울을 비교하지는 않았다.

독일에서는 병이다 싶을 만큼 도시들을 비교했고 기승전-결 “살기에는 물가 저렴하고 있을 거 다 있는 라이프치히가 괜찮지”로 끝났다. 이 무슨 라이프치히 사대주의란 말인가?! 독일 옆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독일과 그 나라를 비교했다.



독일보다 물가가 비싸네? 이 냉동피자 독일에서는 3유로야.
 독일 사람들보다 친절하네? 먼저 와서 도와주잖아.독일보다 거리가 깨끗하네? 하.. 독일 담배꽁초..
 독일보다 음식이 맛있네? 독일 사람들은 좀 배워야 돼.
분리수거 제대로 안 하네? 독일 사람들한텐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암..


무슨 대조표라도 만들 기세였다. 우리가 이렇게 비교를 해댄 것은 여전히 독일에 사는 제3자라는 인식이 강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라이프치히의 주민이라기보다는 이주민으로서, 3인칭 시점에서 어떤 현상들을 바라보았다. 소속감과 동질감이 전혀 없었기에 나름의 객관적 평가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이것도 딱히 객관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냥 우리의 경험에 빗대어 장난삼아 해보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비교·평가다.





비교 여행이 끝나고 독일로 돌아오면 집에 돌아온 것 마냥 마음이 편했다. 여전히 잘 못하는 독일어지만 그래도 좀 살았다고 공항에서 독일어가 보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 기이한 반응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지만 고향은 아니되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주는 편안함은 확실히 존재했다. (집에 돌아온 것이 맞긴 하지만, 마음속 진짜 집은 늘 한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 산다는 것, 더욱이 유럽에서도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은 여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자주 다니기도 했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이런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독일에서의 국·내외 여행이 100% 즐겁지는 않았다.


한국에 살 때는 여행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익숙하지 않은 거리, 낯선 사람들, 생경한 언어가 주는 이질감이 좋았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감을 마음껏 누볐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내가 살고 있는 곳 역시 비일상적이었기에 다른 여행이 마냥 편하지 않았다. 약간 붕 뜬 듯한 느낌을 고스란히 안고 어색한 장소를 누빈다는 것이 불편했고, 그래서 어쭙잖은 비교를 해대며 밀려오는 외로움의 공기를 차단하려 했다.



독일이 외로워서 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도 외로웠다. 어디를 가든 한구석이 서늘했고, 황량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었다. 이 바람은 진원지는 ‘관계의 상실’이었다. 어디에도 나와 연관된 것이 없었다. 거리에는 추억이 존재하지 않았다. 외로움의 원인은 연결의 끊김에 있었다. 나와 관계된 모든 연결이 차단된 낯선 대륙에서 나는 부유했다. 매 순간이 약간은 외로웠고 약간은 그리웠다. 일상도 여행도 한결같이 ‘외로움의 시절’이었다.

한때 독일에 꽤 오래 머문 적이 있었던 김연수 작가는 “5월의 에버랜드에서도 나는 외로웠다”라고 독일을 표현했다. 5월은 그나마 날씨가 절정에 달하는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는 이때마저 고독을 느꼈나 보다. 나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누군가 나에게 독일이란 나라의 OST를 고르라고 한다면 일말의 고민 없이 버스커버스커의 <외로움 증폭장치>를 선택하겠다. 사람들이 무뚝뚝해서인지, 날씨가 축축해서인지, 음식이 맛이 없어서인지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라는 절대적으로 외로운 나라다.


좁은 골목에서마저 이방인인 나는 외로움의 끝을 보았다.

작가는 앞서 외롭다는 말에 덧붙이기를.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 정도는 이 말을 이해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나는 그를 이해했다. 그의 글을 통해서 나 역시 그로부터 이해받았다고 여겼다. 내 외로움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진짜 외로운 것은 보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보고 싶은 사람이 많다. 가족도, 친구도, 친정집 방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내 잡동사니들마저 사무치게 보고 싶다.


 그리움은 외로움을 이긴다.
나는 다시 차곡차곡 외로움을 가방에 넣고 다음 여행지를 향해 길을 나섰다.
내 마음의 안부를 물으러 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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