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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Apr 18. 2020

베를린 힙스터의 조건: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될 것

                                                                                                                                                                            내가 사는 도시 라이프치히는 베를린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 정도의 위치에 있다. 그렇다 보니 마치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바람 쐬러 서울에 가듯, 내게 베를린은 서울과 같은 곳이었다. 이따금 베를린에 간다고 한국의 친구들에게 말하면 “바람 쐬러 베를린에 간다고?이야~ 힙하다 힙해!” 이런 메시지들을 보내곤 했다.



힙하다


요즘 참 자주 하는 말이다. 영어 ‘hip’과 ‘하다’를 합친 이 정체불명의 단어는 언젠가부터 세련된, 자유로움의 대명사로서 무엇에도 통용되는 마법의 수식어가 되었다. 특히 독일 베를린은 ‘힙하다’라는 동사의 대명사 같은 도시다. 힙한 힙스터들의 도시, 베를린. 이곳은 예술의 도시가 아니라 예술가의 도시이기 때문에 힙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Poor but Sexy


정말이지 섹시한 슬로건으로 전 세계 가난한 예술가들을 불러 모은 이 도시는 예술가들의 성지답게 세련되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힙스터들로 가득한 곳이다. 동시에 채식주의자, 동물보호자, 동성연애자 등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멋진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체 ‘힙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령 가끔 들르는 베를린의 편집숍에서 나는 힙함을 본다. 값비싼 명품 가방들이 비싸 보이지 않게 툭툭 섞여서 걸려 있다. 멋을 낸 것 같진 않아서 도리어 멋져 보인다. 명품 숍이라고 해서 화려하고 번쩍거리기보다는 오히려 캐주얼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다. 클래식이 아닌 EDM 디제잉과 기본 천유로는 넘는 상품들 사이에서 3.5유로라는 편안한 가격에 판매되는 커피가 공존한다. 쇼핑 온 사람보다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거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책을 보고,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이곳은 하나같이 남 신경 안 쓰고 각자 할 일을 하는 기묘한 장소다.



그 누구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관광객인 나처럼 사진 한 장 찍는 사람도 없다. 마치 ‘힙하다’의 전제조건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에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베를린의 힙스터들은 "Poor but Sexy"라는 도시 슬로건답게 가난해도 기죽지 않았다. 돈과 권력에 기죽지 않고 호기롭게 내 갈 길 가는 것, 그 대찬 마음이 내가 베를린에서 본 ‘힙하다’의 의미였다.


나는 비교와 경쟁으로 가득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무수히도 타인을 신경 쓰며 살아왔다. 그러한 분위기를 싫어하면서도 응당 따를 수밖에 없는 암묵적 규칙에 타협해왔다. 타인의 시선과 기대를 의식해 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를 바랐고, 내가 정해놓은 목표를 달성해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늘 존재했다. 누군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의식해서 매사에 좋은 사람인 냥 행세했다.


예전에 <타인은 놀랄 만큼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제목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오히려 스스로 ‘시선이란 테두리’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아등바등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양산된다.


물론 힙스터들이 많은 곳에 산다고 해서 나는 결코 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베를린에 왔을 때 약간 주눅이 들었다. 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가득 찬 분위기에 촌스러운 내 영혼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고지식하고 꼬장꼬장한 할머니가 창조적인 젊은이들로 가득한 클럽에 입장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돌이켜 생각해보니 마찬가지로 내가 정해놓은 시선의 테두리였다. 뭐든지 미리 속단할 필요가 없었다. 행동에 앞서 거절당할 것을 걱정하고, 나에 대한 평가에 미리 전전긍긍하기엔 생이란 시간은 짧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그들에게 찬사 받는 삶을 살고 싶어 했었다. 하나같이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힙스터들에게 끌렸던 것은 내가 그러하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그들을 보며 나는 내게 주어진 생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에 신경 쓰며 살고 싶어졌다. 타인은 절대적으로 나를 잘 모른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오직 나다. 그러니 다른 사람 신경 쓸 거 없었다.


 가장 안테나를 곤두세워야  상대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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