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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Apr 24. 2020

내가 브런치를 하는 이유/독일 생활의 8할은 글쓰기

                                                                                                                                                                           

독일살이 3년차를 돌이켜보며, 내가 여기서 제일 많이 한 일은 무엇일까? 기억의 테이프를 감아보았다. 굳이 되감기를 할 필요도 없이 바로 답이 나왔다. ‘글쓰기’였다.


독일에 오기 전에도 글을 안 썼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일 글을 썼다. 그것은 나를 위한 글이라기보다 ‘일’을 위한 글이었다. 방송작가는 대본이란 것을 쓴다. 그 글은 읽힌다기보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인다. 휘발성을 갖기 때문에 한번 전파를 타고 나가면 끝이다. 방송에 대한 반응이 좋으면 뿌듯했지만 한편으로는 허했다. 다 사라지고 마는 것을 몇 날 며칠 밤새워 쓴 것 같아서..

나는 어떤 한 분야에 있어서 축척된 자료를 갖는 학자 직종의 직업을 선망했다. 일생에 걸쳐 진행해 온 연구가 고스란히 인생이 된다는 것이 근사한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나의 글을 차곡차곡 쓰고 싶다는 갈망은 품고 있었으나 일을 핑계로 실천하지 못했다.




일생에서 쉽게 오지 않을 이 시기를 기록해 두고 싶었다.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했다. 처음엔 순전히 평범한 나의 시간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차원이었다. 여기서 내가 중대하게 할 일이라곤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제일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차선이었다.


문학 작법 강의 첫 시간에 교수님들께서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중 하나가 “나 자신의 이야기를 써라”이다. 꼭 대학 수업이 아니라 글쓰기 문화센터에만 가봐도 대개 시작은 ‘나 자신에서부터’ 라고 조언한다. ‘나’야 말로 제일 잘 아는 이야기이자 잘 쓸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로운 사람일 수록 자신의 이야기를 금방 풀어낼 확률이 높다. 그래서 혹자는 작가란 결핍이 많은 사람이라고도 정의한다. 목마른 결핍에 사랑이 더해져 한 문학 작품이 나온다.



결핍은 사람으로 하여금 쓰게 만든다.


독일에서의 생활은 외로웠다. 목표 의식이 없는 매일이 비슷한 나날들이었고, 그 안의 나는 혼자였다. 하루 종일 나밖에 없는 우리 집은 사위(四圍)가 적막했다. 그 몽글몽글한 외로움이 딱히 싫지는 않았지만, 실체가 없는 외로움이었기에 또다시 더 외로워졌다. 특히 해가 짧은 겨울에는 고독의 동굴을 파고 그 안에 들어가 살았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한인 교회나 모임을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자발적 외로움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다. 계속해서 외로워 보고 싶었고 그 감정들을 세심히 살폈다. 내면의 변화를 단 한 줄이라도 놓칠세라 글을 썼다.



그러니까 나는 쓰지 않고는 베길 수 없었다. 찬란한 햇살에 못 이겨 어떻게 해서든지 척박한 땅을 뚫고 나와 싹을 틔울 수밖에 없는 씨앗처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 <안네의 일기>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같은 책들이 나오게 됐는지 알 것 같았다. 쓰는것만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글쓰기에는 감정을 배설함과 동시에 복잡한 편린들을 정리해 주는 기능이 있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주인공이 왜 그토록 목숨이 위험해질 것을 알면서도 발설하고 싶어 했는지 수긍이 갔다. 결국엔 대나무 숲에 가서 크게 한 번 외치고 나서야 마음이 후련해졌던 주인공처럼, 나는 내면의 감정들을 글에 쏟아부으면서 설명할 수 없는 개운함을 느꼈다. 내가 쓰는 글에는 어떤 제약도 책임도 없었다. 자극적인 소재나 편집점을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냥 나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되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느껴본 유희였다.


고립과 결핍으로 점철된 상황에서 인간에게 글쓰기란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잊히고 싶지 않았다. 나 좀 알아봐달라는 발악일 수도 있다. 나 여기 혼자서 외롭다고, 제발 관심 좀 가져 달라고.. 독백인 듯 편지인 듯 호소인 듯 알 듯 말 듯 한 글들을 매일 써나갔다.


그렇게 글이 쌓이다 보니 보잘것없는 내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겼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 내 글을 통해 위로를 받는 이가 있다는 소중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두 다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 다윈의 갈라파고스의 발견만큼이나 위대한 사건이었다. ‘공감’의 유대는 비록 얼굴을 알지 못했지만 형언할 수 없는 힘이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소중한 구독자님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도 글을 쓰는 것은 내가 나와 만나는 가장 은밀하고 달달한 시간이다. 글을 쓸 때만큼은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었다. 내면을 끄집어내어 자음과 모음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비슷하게 흘러가는 삶을 온전히 나만의 가치로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삶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당신도 글을 써보라고 말하고 싶다. 자전적 글쓰기에는 오롯이 나 자신일 때 나오는 힘이 있다. 나에게서 나온 그 글들은 유난 떨지 않은 채 조용히 나를 위로했다. 친구 하나 없는 독일 생활에서 나를 안아 준 것은 나의 글이었다.



신영복 선생님이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봄을 기다렸듯,
                              나는 나의 글로 나를 위무하며 봄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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