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를 건 사랑은 비극일까?<안나 카레니나>

by 여행생활자KAI


내 연애에는 패턴이 있었다. 나는 첫사랑의 실패 이후 한 번도 내가 먼저 고백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왔고 딱히 싫지 않으면 나를 사랑해 준다는 이유로 만났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나는 감정에 꽤 수동적인 유형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먼저 어떤 누군가로부터 전기 스파크가 파파박 틜 만큼의 전율을 느끼지 못한 것도 있었다.(첫 눈에 반한다는 말은 대체 누가 만들어낸 감정인지 한 번 만나라도 보고 싶다.)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오히려 너를 너무 사랑한다고 마음을 다 보여주면 상대가 떠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나를 속였다. 행여나 상대로부터 마음이 식은 것이 감지되면 먼저 이별을 선언했다. 그 사람을 잡고 싶어도 잡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사랑 앞에 솔직하면 약자로 전락할 것 같았고, 상처받을 것이 두려웠다. 자존심을 잃을 바에야 내 감정을 묻는 게 편했다. 결국 나의 연애는 빈껍데기일 뿐이었다.


나는 왜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할까? 돌이켜보건대 ‘용기’가 없었다. 진실을 터놓았을 때 상대의 반응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나는 대리만족이라도 하듯 자기감정에 솔직한 소설 속 주인공들을 좋아했다.


수많은 소설 인물 가운데 ‘자기감정에 가장 솔직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안나 카레니나>를 들 것이다. 이 여인이 기차역에서 자살로 삶을 마무리한 것은 불륜의 죗값이 아니라 ‘자기감정에 너무 솔직해서’였다.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가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으로,『전쟁과 평화』를 끝내고 차기작을 찾던 그는 기차선로에서 신원 불명의 훌륭한 옷차림을 한 여인이 투신자살했다는 기사를 접한다. 공교롭게도 이 기사의 주인공은 ‘안나 피고로바로’, 톨스토이 이웃의 내연녀였다.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에서는 불륜이 꽤 만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많은 유부녀들이 외도를 일삼았지만 값비싼 원피스 사이로 이를 숨겼다. 안나는 자신의 감정을 ‘기만’이란 치마폭에 가리지 않았다. 솔직함의 결말은 죽음이었지만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가보면 이 죽음이 꼭 비극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된다.





우선 책은 총 3권이나 되는 장서지만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유부녀인 안나가 젊은 미남 브론스키를 만나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사랑이 집착으로 이어지면서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더 짧게 말하면 ‘한 유부녀의 비극적인 사랑’정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한 줄로 요약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이 부분은 <안나 카레니나>의 미덕이자 많은 독자들에게 완독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한데, 사랑뿐만 아니라 당시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과 상류 사회의 관습, 농촌사회와 농노제도, 종교와 구원, 죽음 등이 외우기도 벅찬 긴 이름을 딴 인물들을 통해 방대한 분량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특히 2부에서 펼쳐지는 레빈의 시골 생활과 계몽주의 사상의 전개는 책을 덮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수면제 대용으로 사용한다 해도 톨스토이가 뭐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톨스토이를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고 싶은 독자라면 마의 2부를 이겨내야 한다.)


안나는 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됐을까? 아름답고 지적인 여성 안나는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많지만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과 함께 세속적인 삶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귀족이다. 남편 카레닌은 전형적인 상류 사회의 관료로 정의롭되 감정은 메말랐고 가정보다는 일이 우선이었으며 사랑보다는 셈에 빠른 남자였다. 반대로 안나는 삶을 즐기고 싶어했고 무엇보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여자였다. 그래서 기차역에서의 첫 만남 이후 거침없이 사랑을 고백하는 브론스키에게 끌렸다. ‘이성에 의한 결혼은 정열의 출현으로 먼지처럼 흩날려 버릴 수도 있다’는 브론스키의 말은 적중했다. 안나는 밀물처럼 다가오는 그에게 온 마음을 다 빼앗긴다.





안나는 브론스키를 사랑해서 ‘스스로가 용서가 안 될 만큼 행복’했다. 그녀의 불행은 역설적이게도 스스로도 용서가 안 될 벅찬 행복에 있었고(급하게 끓어오른 사랑에는 끓는점과 식는점이 존재했습니다.), 그녀의 남편 카레닌의 불행은 '나는 결코 불행할 리가 없다'는 신념에서 시작되었다. 승승장구의 길만 걸어온 이 엘리트는 ‘남의 일’이라고 여겼던 불행이 ‘나의 일’이 되자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늘 백점만 받아 온 아이가 갑자기 10점을 받게 되었을 때의 절망감 같은 것이었다.


<안나 카레니나>가 매력적인 이유는 모든 인물들이 파닥거리며 살아있다는 점이다. 카레닌은 초반에는 고루하고 딱딱한 남편으로 읽히지만 갈수록 연민이 가는 것은 바로 이런 말들 때문이다.


“‘너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라’, 옳은 말입니다만 내가 미워하고 있는 자를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슬픔만으로도 충분한 것인데 말입니다. ”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슬픔이 존재한다. 아내로부터 외면당한 고통 앞에서 보편적인 하느님의 사랑을 운운하며 용서를 강요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 살다보면 상흔이 너무 커서 어떤 말이나 설명으로는 치유가 되지 않는 그런 고통이 있다. 누구도 그 슬픔을 대신할 수는 없다. 자기 슬픔에 빠진 이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위로는 처방이 아닌 공감임을 톨스토이는 알고 있었다.


한편 남편을 버린 지독한 사랑의 끝에는 파국이 있었다. 안나는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당한 자신과 달리 태연하게 사교계 생활을 하는 브론스키를 의심한다. 신마저 버리고 택한 사랑의 균열이 감지되자 브론스키에게 죄책감을 주고자 '자살'을 떠올린다. 안나가 죽음까지 생각하며 그에게 집착했던 것은 자신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이 남자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지만 브론스키는 달랐다. 안나를 사랑하되 전부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사랑에는 극명한 차이가 존재했고 이는 안나를 불안하게 했으며 급기야 자살로 이끈다. 모든 것을 건 사랑은 비극이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안나와 마찬가지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레빈’이다. 안나의 눈부심 때문에 조명 밖에 있는 듯 하지만 달리 보면 또 다른 주인공은 레빈이다. 그는 농촌에 사는 귀족으로 브론스키처럼 세속적인 귀족들과는 다른 삶을 산다. 매사에 솔직하고 진중했으며 농촌 계몽과 여전히 귀족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지주 제도를 고민했고, 종교와 삶, 죽음에 대해 고뇌했다. 그는 톨스토이 자신의 자화상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된다. (젊은 시절에는 방탕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금욕적인 삶을 선택한 톨스토이의 행보는 마치 브론스키에서 레빈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레빈은 한 때 브론스키를 사랑했던 키티와 결혼해서 안나-브론스키 커플과 반대로 모범적인 부부생활을 이어나간다. 이 사랑이 해피엔딩일 수 있었던 것은 뜨거운 열정뿐만 아니라 배려, 책임, 진실과 같은 요소들이 새의 둥지처럼 서로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문학사상 최고의 첫 구절로 꼽히는 이 문장에서 의미하는 행복한 가정의 조건은 료빈-키티 부부를 일컫는 것이었다. 배려, 책임, 진실은 너무 당연한 가치여서 외려 지키기가 어렵다. 반대로 불행은 공통된 조항이 없어서 여기서 불쑥-저기서 불쑥- 튀어나온다. 그래서 행복하기가 불행하기보다 어렵다.


“자넨 행복한 사람이야”
“그건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만 만족하고 없는 것에 대해서 슬퍼하지 않는 덕분이겠지”
레빈은 키티를 떠올리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안나의 삶을 레빈과 대조해 불행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녀의 삶은 안타깝지만 스스로에게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면 그 인생 또한 나쁘다고는 말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인생에서 행복은 딱 한 가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라고 했던 조르주 상드의 시점에서 봤을 때, 오히려 안나의 삶은 행복 그 자체였을 수도 있다. 뜨거운 사랑 언저리에도 못 가본 어떤 이에게는 모든 것을 버린 그 사랑이 낭만적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법이다.


안나는 삶과 고통스럽게 싸웠고, 레빈은 진지하게 성찰했다. 방법과 목적에 차이는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솔직한 민낯으로 삶을 마주했다.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 이의 인생에는 후회가 없다.


책을 좋아했던 안나는 독서로 타인의 삶의 그림자를 쫒는 일은 유쾌하지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 활자에서 나와 생동하는 삶을 살았다. 그것은 솔직한 주인공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던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마음을 더 내어 줘도 될까,’ 오늘도 사랑 앞에 갈팡질팡하는 나는 안나로부터 ‘감정에 솔직할 용기’를 읽는다. 내 감정에 귀 기울여줄 유일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상처가 두려워 나를 외면하는 일 따위는 앞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4BClqVU4bs&t=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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