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를 보다가 첫사랑, 내 청춘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박완서<그 남자네 집>

by 여행생활자KAI


드라마 화양연화를 보는데 이유없이 눈물이 났다. 찻사랑인지 내 청춘인지 모를 그 뭔가가 그리웠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아주 우연히 길거리에서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 아이는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의 모습일까? 아니면 세월을 정면으로 맞은 아저씨가 되어 있을까? 솔직히 지금은 얼굴도 정확히 그려지지가 않는다. 다만 마르고 약간은 성미가 까다로워보였던 이미지만이 뿌옇게 떠오른다. 신기한건 얼굴은 흐릿하지만 그와 내가 공유했던 음악이나 책 같은 것들은 하나같이 또렷이 기억난다는 점이다.

우리는 신해철과 비틀즈를 좋아했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었다. 가령 ‘봄날의 곰만큼 네가 좋아’라든지, ‘호랑이 버터가 녹아내릴 만큼 네가 좋아’와 같은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도 모자라 사라져버릴 것 같은 그런 구절들을 담은 연애편지를 주고받았다. 미대를 지망했던 그는 목공예를 제법 잘해서 가끔 나무를 깎아서 내게 뭔가를 만들어 줬었고, 눈이 소복하게 온 날이면 우리 집 앞 놀이터에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정작 자신은 슥-가버리는, 츤데레같은 낭만적 행동으로 무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자신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달콤했던 첫사랑과의 이별은 물론 썼다. 때로 달달했지만 평소에는 표현에 인색했던 그 아이의 마음을 몰라 나는 답답했다. 더 많은 사랑을 갈구했던 나는 결국엔 사랑을 단념했다. 타고난 성향 자체가 무뚝뚝한 탓도 있었겠지만 나는 만나는 내내 지푸라기 인형만 잡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팽-하고 내팽겨 쳐버렸지만 사랑도 처음이었던 만큼, 이별도 처음이었다. 툭하면 눈물이 쏟아졌다. 도시락을 먹다가도 방송반에서 틀어주는 신해철 노래에 눈물이 쏟아졌고, 밤이 되면 토이의 ‘거짓말 같은 시간’을 워크맨으로 들으면서 이 시간이 꿈이기를 바랐다. 그러다 정신이 나간 듯 그 아이가 줬던 편지들을 펼쳐놓고 읽고 또 읽다 지쳐 잠이 들곤 했다. 눈물은 흘러도 흘러도 고갈되지 않았고 그리움이 그리움을 베어 물어 나는 앙상해져갔다. 언제 끝날지 모를 슬픔 속에 몇 달을 고통스럽게 머물렀다.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리 좋다고 사랑에 목숨을 걸었나 싶지만 그 당시 이별은 내 인생에 주어진 가장 큰 시련이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린 듯 마음이 애달팠다. 그만큼 그때의 나는 순수했다. 첫사랑이 소중한 것은 처음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랑에 진실했던 내 마음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그래서 첫사랑의 존재 가 아득했다. 그때만큼은 순수하게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주지 못할 것임을 알아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임을 알아서.. 내게 첫사랑은 다시는 갖지 못할 ‘아련한 그리움’같은 것이었다.




박완서의 책 <그 남자네 집>에 등장하는 그 여자의 첫사랑은 첫맛은 달지만 끝 맛은 쓴 다크 초콜릿같은 것이었다. 주인공은 6·25전쟁으로 집안의 가장이 되어 힘겨운 나날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상이군인으로 전역을 한 청년이 나타난다. 전쟁 전,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사랑을 받고 자란 막내아들이었지만, 전쟁의 상처는 그의 인생을 본의 아닌 방향으로 흘려보냈다. 그는 여자한텐 한없이 다정한 남자였지만, 홀로 남은 노모에게는 패악을 부린다. 어머니만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자유로울까 싶어 숨이 막혔다.


여자 역시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피붙이들 때문에 숨이 막히긴 마찬가지였다.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미군부대에 취직해 밥을 벌지만 가난은 날로 남루해져 간다.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순간은 이 남자를 마주할 때뿐이었다. 둘만의 만남을 기다리는 일상마저 황홀했다. 누구보다 이 남자는 나를 애지중지했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법을 용케도 잘 알았다. 가령 “그는 여자를 구슬같다고 했다. 구슬같은 눈동자, 구슬같은 눈물, 구슬같은 이슬, 구슬같은 물결.. 어디다 붙여도 그 말은 빛났다.” 정지용의 시를 읊고 독일 가곡 ‘보리수’를 들려주는 남자와의 시간은 현실의 것이 아니기에 더욱 아슬아슬한 몽환의 순간이었다. 사랑이란 화려한 폐허를 딛고 가까스로 버티던 여자는 결국 현실을 택한다. 맞선을 본 돈이 많은 상대와 결혼을 해 버린다.


여자는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자신과 너무 닮은 사람, 같은 상처를 꼭 안고 있는 그 사람과 함께 생활을 꾸려나갈 용기가 없었다. 여자를 불안하게 만든 것은 땅에서 약간은 떠 있는 남자의 나약한 영혼이었고, 이를 감당하지 못할 것임이 분명한 현실적인 자신이었다.

오십여년 뒤 여자는 옛날 그 남자의 집을 찾아간다. 마당에 보리수나무만이 무성한 채 빈집을 지키고 있을 뿐, 청년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풍문으로 들려오는 그의 인생을 융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자는 물밀듯 회한을 느낀다. 그리고 말한다.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게 아니란다.”



그 충고는 후회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대도 여자는 여전히 불안한 남자로부터 도망쳤을 것이다. 씁쓸한 후회 끝에 뒷맛처럼 남는 달콤한 추억의 여운. 떠나온 첫사랑의 남자는 여자에게 그런 존재였다.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첫사랑은 실패한다. 그래서 우리는 첫사랑이란 말만 들어도 가끔 심장이 쿵-내려 앉는다. “첫사랑이란 말이 스칠 때 마다 지루한 시간은 맥박치며 빛나기 때문이다.” 첫사랑이란 지나간 내 젊음의 대명사같은 것이었다. 이 단어에는 젊음, 청춘, 꿈, 무엇보다 눈부셨던 내가 있다. 그 여자의 말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감정이 넘치는 시절이 있었다. 한 시대를 지나온 대작가는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던 그 시절을 마음껏 만끽하라고 말한다. 젊음이 차고 넘칠 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젊음을 마음껏 낭비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젊음에 대한 직무가 아닐까.

돌이켜보니 그때 더 치열하게 사랑하지 못했음이 아쉽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길거리에서 우연히 첫사랑을 다시 만나고 싶지도 않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고 했던 피천득의 <인연>처럼 청춘도 첫사랑도 실은 아니 만나서, 돌이킬 수 없어서 빛나는 것이다. 그리움이란 건 첫사랑에 한해 꼭 슬픈 것만은 아닌 듯 하다. 때로 그 막연한 아릿함이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현실의 나를 가만히 적신다.


까만 밤하늘 가운데
그리운 사람 하나 없는 별은 너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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