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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Jun 14. 2020

괴테, 대 문호의 치열한 삶 엿보기

괴테 문학 기행 in 바이마르

독일에는 괴테가도가 있을 정도로 전역에 괴테의 흔적이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그의 생가가 있는 프랑크푸르트와 바이마르가 있다.

특히 바이마르는 바이마르 공국 재상을 지냈던 괴테가 살았던 집과, 그가 35년동안이나 관장을 맡았던 세계 7대 도서관으로 꼽히는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이 있어서.. 독일 학생들의 수학 여행지로도 인기인 곳이다.


일단 괴테 하우스는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
위대한 작가들은 모 아니면 도다. 엄청 잘 살았거나 엄청 못 살았거나..귀족집안에서 태어난 괴테는 (보통 독일 이름에 von 이 들어가 있으면 귀족일 가능성이 크다.) 살아 생전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정치가로서도 활동했기 때문에 풍족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괴테는 색채학에도 정통해  방을 색깔별로 구성했다. 대문호의 치열한 디테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손님을 맞이하는 노란 방.
그가 모은 작품 컬렉션들이 배치되어 있었던 핑크방.


파란 방엔 피아노도 있었는데 본인이 가끔 연주를 하기도 했지만, 당대 음악가들을 초청해 음악 듣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괴테의 서재인데 그는 초록색이야말로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색이기 때문에 서재를 초록색 벽으로 꾸몄다.

멋진 서재 옆문은 침실로 이어진다. 침실 역시 초록 벽.
늦게까지 글을 쓰다 잠을 청하기 편하도록 이렇게 배치를 한 것 같다.



침실에서 쭉 나오면, 괴테의 정원이 펼쳐진다.
괴테, 헤르만 헤세 등 독일 작가들을 보면 참 자연을 사랑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들은 정원을 꾸미고 사색하며 걷기를 좋아했다.

그는 신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당대 지식인이었기에 수집품도 어마어마하다. 괴테 하우스 옆에 있는 박물관에는 열기구 그림, 현미경까지..한 사람의 소장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방대한 유품들이 전시되어있다.

과학, 자연 등 전 분야에 걸쳐 관심이 많았다. 르네상스형 인간이라고 칭할 만 하다. 거의 수집광에 가까운 그의 수집력은 도서관에서도 발현된다. 괴테가 도서관 관장을 지내는 35년동안  보유 도서의 양이 12만 권까지 늘어나면서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관 가운데 한 곳으로 부상했다. 이 도서관에는 <파우스트>원본과  1534년에 인쇄된 마틴루터의 성경책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루터 번역에 의한 독일어 성경’은 전 세계에 16권밖에 없는데, 그중에 한권을 보유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서관은 2004년 9월 2일에 대화재를 겪었다.
전기 합선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이 화재로 구서적 6만 2000권을 잃었다. 감동적인 것은 화재 당시 4, 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인간 띠를 이루어 책을 구해냈다는 사실.
심지어 일부 시민들은 불에 휩싸인 도서관 안으로 뛰어들어 책을 옮겨 오기도 했다고..
그들이 구한 한 권 한 권의 책은 그 무엇으로도 매길 수 없는 값진 인류의 유산이었을 것이다.
이후 도서관은 약 3년의 복원 기간을 거쳐 2007년 다시 문을 열었는데, 복구 비용 상당액이 주민 모금으로 채워졌다.지금도 하루 50명만 방문 인원을 제한하기 때문에 이른 시간에 바지런히 움직여야 입장이 가능하다.


바이마르는 괴테와 쉴러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들은 나이를 넘어 우정을 교류했지만 한때 괴테의 여자관계로 인해 소원해 지기도 했지만 우정에 변함은 없었다.

괴테는 사랑에서도 왕성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괴테를 스타 작가로 만들어 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자신의 경험담에서 비롯됐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괴테는 아버지의 뜻대로 법학을 공부하는데,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 몇 달간 베츨라르에 머물게 된다.
이때 요한 케스트너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고 그에게는 샤를로테 부프라는 아름다운 약혼녀가 있었다.
괴테는 친구의 약혼녀를 곧 짝사랑하게 되지만 마음을 전할 수는 없었으리라.



고등법원 실습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곧 비보를 듣게 된다.
자신과 같이 샤를로테 부프를 짝사랑한 한 친구가 권총 자살을 했다는 소식..

Goethe the sorrows of young werther death scene, By Brenton Dickieson,   


괴테는 짝사랑이 주는 지독한 슬픔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녹여냈고, 당시 사랑으로 고통받는 젊은이들의 자살에 영향을 미치며 전 유럽을 휩쓸어 버린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베르테르 효과'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어요.
기쁨, 슬픔, 괴로움  
희로애락의 감정을 
참는 데도 한도가 있는 법이고,
 한도를 넘으면 
당장에 파멸하고 말아요.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엇보다 이 책이 중요한 것은 당시 프랑스 문학이 주를 이루었던 유럽 문학계에서 독일 문학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것에 있었다.
강렬하면서 직접적인 감정 표현을 담은 그의 작품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으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 괴테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작가로 전향한다. 대공작의 초청으로 제2의 고향이 될 "바이마르"로 와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간다.

아이러니한 건 베르테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괴테는 죽기 직전까지 많은 여성들을 사랑하며 충만한 삶을 살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모델인 "샤를로테 부프" 뿐만 아니라,  "릴리 쉐네만"과의 사랑으로 '호수 위에서'를 썼으며(그녀와는 파혼하게 된다.) 평민 출신인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와 동거했고,
기혼녀였던 "슈타인 부인" 과도 오랫동안 정신적 교감을 주고받았으며, 16세였던 "릴리"를 만나 이듬해 4월에 약혼을 했지만, 결국은 실패로 돌아간다. 심지어 74세에 19세 "울리케 폰 레베초프"에게 청혼 한다. 하지만 그녀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샘물 위에  있으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괴테의  <연인의 >



70대의 나이에 10대 소녀에게 사랑을 느끼는 건 평범한 나로서는 사실 이해하기는 힘들다.
여성으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예술가의 정신 세계는 범인으로서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실연을 예술로 승화 시켜 마지막 작품  '파우스트 제 2부' 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평생을 질주해 왔다.
유능한 자에게  세상은 
침묵하지 않으리라.
어떤 순간에도 만족을 모르는 ,
그가 나아가는 길엔 
고통도 행복도 함께 하겠지.
내가 어떤 옷을 입더라도  답답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걸세
나는 그저 놀고먹기에는 너무 늙었고,
희망 없이 살기에는 너무 젊다네.    
괴테 <파우스트>  



파우스트는 괴테 자신의 자화상이었다.
삶에 만족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그는 만족을 몰랐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했다.
더러 실패하더라도 절망을 딛고 일어섰다.  
그는 편하게 빈둥거린다면 그것으로 인생은 끝이라고 말했다.
온갖 여성들을 만나고 난봉짓도 더러 했던 파우스트가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을 방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어로 파우스트는 "주먹"이란 뜻이 있다.
라틴어로는 "행복한 사람"이란 뜻이다.
좌절하지 않고 주먹 쥐고 나아가는 것.
그렇게 나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궁극의 행복한 사람에 이르게 된다는 것.
파우스트가 주는 메시지가 아닐는지.


자아를 실현해 나갈 수 있는 근성
한 독립적인 객체로서 정면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용기
인간은 비록 방황하더라도 노력하는 한 결국 앞을 향해 나아간다.


https://youtu.be/oWScTm9L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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