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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Aug 15. 2019

손님은 왕?! 독일에서는 노동자가 왕

서비스 사막과 노동자의 오아시스 사이


“손님은 왕”이라는 흔한 한국식 표현이 독일 노동자 입장에서 어떻게 들릴까? 

서비스 천국인 한국과 달리 서비스 사막인 독일에 살고있는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동자라면 이곳이 오아시스와도 같을 수 있다.  


일단은 근무시간 자체가 짧다. 독일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연평균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이지만, (독일 근로자들은 1년에 평균 1,356시간 일한다) 그들은 이마저도 많다고 파업을 한다. 한국에서도 이미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됐고 작년부터는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 



24시간 운영을 하는 가게도 많이 없을뿐더러 병원 등의 근무시간을 보면 주 3일은 거의 반나절밖에 안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있지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근로 조건이다. 물론 그들도 한 명의 소비자이기 때문에 때때로 불편함을 겪을 것이다. 결국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가능한 제도인 셈이다. 


"우리 직원들도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니까요"



작년 크리스마스 때 독일의 대형 슈퍼마켓인 알디는 “크리스마스에 쉽니다”라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했다. 

이유가 참 아름답게 들렸다. 

“알디 직원들도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기 때문”

연말 특수, 대목 장사를 노리는 우리 정서로는 말도 안 될 일이었다. 


노동시간과 별개로 내가 독일  마트에서 또 한 가지 놀란 점은 직원들이 의자에 앉아서 계산을 하는 풍경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도입이 됐지만 여전히 서서 계산을 하는 곳이 많고 인터뷰를 들어보면 설사 의자가 있더라도 의자 자체가 불편해서 그냥 서서 일을 하시는 분도 있었다. 모든 직원들이 크고 편한 의자에 앉아서 계산을 하는 모습은 그들에게는 일상적 일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 


근로시간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인터넷,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해 이메일, 메신저, 전화 등 퇴근을 해도 업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근무 외 시간에도 아이티 기기들을 통해 일을 해야 하는 건 부지기수다. 나 같은 경우 방송가에서 일을 했었다 보니 일과 일상의 경계 자체가 불분명했다. 집에서 자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를 받고 나가는 건 일상 다반사였다. 그럴 때면 이따금씩 내가 인간적으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고용주에 의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되어 있었다. 

 

“자체로 목적이어야 할 인간이 하나의 수단으로 취급받을 때, 그것은 애정과 소속감뿐 아니라 주체성과 자유를 원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무너뜨린다. 놀랍게도 이러한 환경에 처했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은 우리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활성화되는 곳과 같은 영역이다. 말 그대로 뇌에게도 ‘고통스러운’ 경험인 것이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게랄트 휘터 



우리는 일의 수단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존중받고 있을까?

적어도 독일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지켜진다. 가령 보험회사 등에 문의 메일을 보낸다고 가정했을 때 담당자가 휴가 중이라면 자신은 지금 휴가 중이며 급할 경우 이 분에게 연락을 하라는 자동 메일이 온다. 혹은 미리 공지 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저는 00일~00일까지 휴가입니다. 급한 일은 000에게로 하세요"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휴가 존중 문화는 심지어 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하우스 마이스터에게도 해당한다. 차가운 물이 안 나왔던 어느 날 나는 하우스 마이스터의 5일 휴가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긴급한 일이 아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소비자는 기다려야 한다.  상대의 휴가가 끝날 때까지 그의 시간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며칠이나 휴가를 갈까?


보통 독일 사람들은 학교가 중간 방학을 하는 7~8월과 크리스마스 기간에 2~3주 길게는 6주까지도 휴가를 쓴다. 중간에 부활절 연휴도 꽤 길게 있다. 휴가를 끌어 모으고 모으면 최대 100일 이상도 가능한 것이 이 나라의 휴가 제도다. 감기를 이유로 일주일 쉬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건강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휴가는 일 만큼이나 중요하다. 잘 쉬어야 일 역시 잘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명제가 그들에게는 정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일에 대한 만족도는 일의 품격으로부터 온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에서, 나는 그들이 인간다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더러 불편하더라도 “손님은 왕”도 좋지만 “노동자는 왕”이란 말이 조금은 더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덧붙이는 말: 근무 조건은 독일이 비할바 없이 좋지만 이 나라에도 분명 함정은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독일 사회의 비정규직, 프리랜서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물론 독일에 특화된 자동차, 엔지니어 분야는 좀 사정이 다른 것으로 안다.) 기자의 예만 들어봐도 한국은 언론고시를 보고 입사한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들은 대부분이 정규직이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정규직 기자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70% 이상이 프리랜서 기자였다. 뿐만 아니라 연구직 및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 이것은 어떤 양날의 칼과도 같지만 긱 이코노미긱(Gig economy 빠른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비정규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되는 경제 현상) 활성화로 인해 노동시장 역시 탄력적으로 움직이는 세계적 현상일 수도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에 대한 노동시장의 논의는 어려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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