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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Aug 21. 2019

독일인은 왜 명품이 아닌 백팩을 선호할까?

가방에 담긴 독일인의 사회학

트램 정류장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그는 등산 가방에 바람막이 재킷을 입고 있었고 내가 봤을 땐 영락없는 등산 패션이었다.



“등산 가? 아니면 여행?”


돌아온 대답은..


"엥? 아니. 학교 가는데?!"


독일 사람들의 패션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바람막이+백팩이다. 더불어 그들은 진정 버켄스탁과 잭울프스킨을 사랑했다. 남녀노소에 딱히 구분도 없다. 그들이 옷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익히 많이 들어왔음에도 처음엔 어색했다.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나왔던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의 지적은 적확한 것이었다. 베를린이나 뮌헨 같은 대도시는 그나마 괜찮은데 그 외 시골 지역으로 가면 오가닉 패션이 즐비하다고.. 너무 공감되어서 박장대소했다. 오가닉을 사랑하는 독일인들은 패션도 오가닉스러운 걸까..


빅백보다 미니백이 대세인 요즘 트렌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물론 젊은 세대들은 미니백을 들고 다니기도 하고, 오페라 등을 보러 가면 핸드백을 들고 온 중년 여성을 마주하게 되지만 일상에서는 여전히 빅백과 에코백이 대세다. 마트 가방도 데일리백으로 잘 들고 다닌다. 딱히 유행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평소 매던 걸 매는 거다. "나는 내 갈길 가리라~~"





그 이후로 나는 다른 독일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봤다.

“왜 큰 가방을 메고 다녀?”


빅백에 대한 선호는 준비성 강한 독일인 특유의 완벽성에 기인한다.

그들의 가방엔 별의별 게 다 있었다.

'물'은 기본이다. 그것도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500ml 보다는 1.5l 대병을 들고 다닌다. 가격 면에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 외 샌드위치 도시락(독일 사람들은 도시락을 자주 싸서 다닌다. 학원, 학교, 기차에서도 도시락을 먹는 풍경은 흔하다.), 화장품(여기서 화장품이란 단순히 립밤, 핸드크림을 넘어서서 샴푸린스 등도 포함된다.), 우산, 책, 휴지 등등..


그들에게 가방은 마치 하나의 작은 집이다. 

티나 같은 경우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적어도 2~3일 정도는 밖에서 잘 수 있을 정도로 준비 한다고 했다. 미리미리 계획하는 것이 몸에 베여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갑자기 바깥에서 잘 일이 얼마나 생기겠냐 싶지만 뭐든지 준비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평소 성격을 비추어 왔을 때 아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좀 더 이유를 덧붙이자면 외식비용이 비싼 탓에 독일 사람들은 주로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다. 때문에 장을 보기 위함도 있다. 자신이 가져온 가방에 식료품을 담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독일인에게 명품가방이란?!


그들에게 가방은 패션이라기보다는 실용에 입각한 아이템이었다. 그래서일까. 독일 길거리에선 명품가방이 흔하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라이프치히가 중소 도시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명품 가방을 멘 사람을 본 게 손에 꼽을 정도다. 거리에 5분만 서있어도 몇 개의 명품가방이 내 눈을 스쳐가는 서울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독일 부자들도 명품을 들고 다니고 슈퍼카 역시 몇 대씩 보유하고 있다. 당연히 허세 가득한 부자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부류가 많지 않으며 크게 도드러지지가 않는다. 평등한 자본주의에 입각해 있다 보니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위화감을 덜 느끼고 산다.

특히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그 당시 독일 사회가 워낙 빈곤했기 때문에 절약 정신이 몸에 베여있기도 하고,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것을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고백건대 나 역시 온갖 비싼 가방을 사며 소비에 현혹됐던 시절이 있었다. 직업적 특성상 만나게 되는 화려한 사람들에게 밀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내 만족이라는 이유로, 옷이며 가방이며 참 많이도 샀다. 워낙 보이는 것이 많은 소비의 도시 서울에 살았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가 될 것이다.


채워지는 가방만큼, 욕망도 채워졌을까?


채우면 채울수록 더 많은 것을 갈망하는 욕망의 화수분 속에 10년을 살았다. 물론 어떤 심리학자는 "여자는 멋진 가방을 들었을 때 자신감과 안정감을 느낀다"라고 설명했다. 좋은 가방을,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가방을 멘 순간, 여자의 가슴속에는 왠지 모를 편안함과 자신감이 가득 차오른다. 매일 아침 안락한 집에서 위험이 가득한 바깥으로 나갈 때.. 여자들은 가방이란 무기를 들고나간다.


나는 이 주장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일부분 인정한다.

하지만 독일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무기가 왜 필요하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는 가방이라는 껍데기보다는 그 안에 들어간 내용물이 더 중요하다.

아마 그 내용물이 독일인에게는 무기이지 않을까..


그들은 타인의 시선을 괘념치 않는다. 내가 입고 싶은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삶을 즐긴다. 독일의 패션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긍정적인 의미의 '험블(Humble)'이다. 그들은 패션은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겸손에 있었다. 누가 뭐라 하든 나만 좋으면, 나만 만족하면 되는 것이니까.

                                                                                                                                                                                                                                                                                                                                                                                                                                                  


언젠가부터 나도 예전만큼 옷에 대해 신경을 덜 쓰게 됐다. 기본적으로 내가 뭘 입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으며, 결혼식과 같은 경조사나 중요한 미팅도 없는 지극히 단조로운 삶이기 때문에 비싼 옷을 입고 갈 때도 없다. 독일에 온 이후 옷에 대한 지출 비용은 절반 이상 감소했다. 어떤 옷을 사고 선택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좀 달라졌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원한다는 이유로 참 많이도 구입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과 내가 원하는 것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물건 구입에 앞서 스스로 되묻는 버릇을 만들었다.


“Want” vs “Need”


필요한 것?  vs 원하는 것? 은 여전히 마음속에서 충돌하지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옷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아닌, 나 스스로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각에서 오는 만족감임을 깨달았다.

옷을 잘 입는 사람이 아니라 옷을 멋지게 입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지고 있는 옷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골몰해보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독일인의 바람막이 패션에 동화될 생각은 없다. 나는 여전히 트렌치 코트의 멋스러움을 사랑하고 화이트 셔츠의 단아함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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