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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Aug 23. 2019

마늘과 인종차별의 프레임

                                                     

팍팍한 서울살이를 하다가 고향집에 갔을 때, 엄마가 끓여주신 김치찌개 냄새는 위안의 대명사였다. 할머니가 보글보글 끓여주시던 구수한 된장찌개의 향은 온 가족이 두 그릇은 뚝딱하는 명불허전의 음식이었다.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가 독일에서는 눈치 보며 먹어야 하는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으레 서양인들은 한식 냄새를 싫어할 것이라고 인식해서 신경을 썼던 것도 있지만 친하게 지냈던 한국인 이웃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청국장을 끓이던 어느 날. 아랫집에서 한 여성분이 올라오셨다고 한다.


“그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요? 환풍기 틀었습니까?”


그것은 1차 컴플레인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또다시 올라오셨다.


“이 집은 매일 파티를 합니까? 무슨 냄새가 이렇게 나는 거죠? 환풍기 안 튼 거 아닙니까? 확인 좀 해 봅시다.”


그 여성은 무조건 음식을 할 때 환풍기를 틀라며 강조 또 강조를 하고 갔다.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으로서 항의를 할 수도 있지만, 구태여 들어와서 환풍기까지 확인하는 건 어떻게 보면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냄새가 난다고 하니, 그래서 견딜 수 없다고 하니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도 내 마음대로 못 먹나 싶어서 화도 나지만,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으니 신경을 안 쓸 수도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청국장뿐이랴. 한국에서 독일어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의 일화 역시 놀라웠다. 친구들과 삼겹살 그릴 파티를 하고 수업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교수님이 창문을 열더란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 는 것이 이유였다. 딱히 당신이라고 지적당하지는 않았지만 이 일의 트라우마로 그는 무려 7년의 독일 생활 동안 라면조차 먹지 않았다.

꼭 내 주변의 일이 아니더라도 해외 생활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외국 생활의 애로사항, 인종차별의 대명사로 “마늘” 을 언급한다.



서양인들에게 한식에 배인 마늘 냄새는 난생처음 맡아보는 것 일 테다. 내가 가끔 오래 숙성된 치즈 냄새에서 역겨움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애써 이해해보려 하지만.. 구태여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낸다는 것, 동양인에게서 마늘 냄새가 난다는 명제는 미묘하게 선진국 국민이 후진국 국민을 대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져서 기분이 나쁜 것이 사실이다. 그 소리를 듣는 입장에서 마늘은 멸시의 다른 단어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치가 악취를 풍긴다며 유대인을 탄압했고 일제는 마늘 냄새난다고 조선인을 학대했다. 특정 냄새가 인종적·민족적 경계를 만들고 권력관계를 강화하는 수단이 된 역사적 사례들은 많다.



영화 <기생충>에서 냄새는 빈부의 차이를 보여주는 한 대명사로 나온다. 박 사장의 가족 중 막내가 제일 처음 기택 가족의 냄새를 인지하지만, 권력의 구분이 없는 아이는 딱히 냄새에 대한 불쾌한 의식은 없다. 그러나 선을 구분하는 계급형 인물 박 사장에게 그 냄새는 섞이고 싶지 않은 불결함이다.


“하층계급은 냄새가 난다.”

조지 오웰의 계급 구분이 맞아떨어지는 장면이다.



한국인으로부터 마늘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서양인은 서구식 기준의 냄새로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양인의 입장에서 사고할 줄 모르는 편협한 사람들이라며 이웃집을 위로했지만 사실 같은 한국인인 내가 위로할 처지도 못됐다. 나역시 그런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물론 한국인이 마늘을 많이 먹는 것은 유명하다. 백인은 치즈, 일본인은 간장으로 비유된다면 우리는 마늘로 빗대어진다. 거의 모든 한식에 마늘이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밥상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크다. 통계치만 봐도 세계 일인당 연평균 마늘 소비량이 0.8㎏인데, 한국 연평균 소비량은 8㎏ 정도에 달한다. 단군신화에도 등장하는 마늘이니, 단순한 섭취에 그치지 않는 매우 특별한 식재료임은 확실하다.


진짜 마늘 냄새가 나긴 할까?

마늘의 강한 매운맛을 내는 알리신 성분은 휘발성을 가지고 있어 인체에 흡수되면 땀으로도 배출이 된다. 즉 마늘 냄새는 몸에서 발향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대로 외국에 오래 살다 한국 공항에 발을 디디면 제일 먼저 마늘 냄새가 맡아진단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지 그 나라 특유의 향이 있다.

단지 자국민은 무감할 뿐이다.

일본에 내리면 간장이나 생선 비린내 비슷한 것이 나고 동남아에 가면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찌르며 서양인에게서는 소위 노린내라고 하는 것이 난다.


그렇게 보자면 특별히 마늘 냄새가 난다고 창피해할 일은 아니지만 세계 어디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굳이 그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보다 대상의 본질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본능적인 감각이다. 음식을 먹기 전 냄새를 맡아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예쁜 음식도 냄새가 역하면 먹지 않을 것이다.


또한 후각은 지극히 계급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뭔가 수상한 느낌이 나면 “냄새가 나는데”라고 표현을 하거나 “전라도 홍어 냄새”라는 말 역시 지역 차별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인종차별적 발언 역시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냄새가 가진  또 하나의 상반된 속성이 있다.


후각을 후각으로 덮을 수 있다.


즉 향수로 냄새를 무마시키는 거다. 최초의 향수 제조 역시 악취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결코 냄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냄새는 호흡과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의 가슴속으로 들어간 냄새는 그곳에서 관심과 무시, 혐오와 애착, 사랑과 증오의 범주에 따라 분류된다. 냄새를 지배하는 자, 그가 인간의 마음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 파트라크 쥐스킨트, 『향수』 중


서로 다른 냄새를 감싸주는 향수처럼 서로가 서로를 덮어주는 인간적 향기, 어떤 인류애적인 내음을 갈망하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그것이 판타지일 뿐이라면 아마 내 독일 생활 후각의 8할은 마늘냄새 신경 쓰다 끝날 것 같다.


찌개류를 할 땐 창문을 닫고 만든다. 향이 강하다 싶으면 환풍기를 튼다. 독일 사람들을 만나기 전엔 웬만하면 한식을 잘 먹지 않았으며 외출할 땐 무조건 향수를 뿌리고 나갔다. 한 프로그램에서 안정환이 마늘냄새 때문에 향수에 집착하게 됐다고 고백할 때 나는 크게 공감했다. 이따금씩 입 냄새 캔디를 먹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되나 싶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마늘만큼 이곳에서 우리 가족을 위로해 주는 것도 없다. 마늘 팍팍, 고춧가루 툭툭, 두부 송송, 어렵게 공수해 온 엄마표 김치가 들어간 김치찌개 한 입은 향수병을 달래주는 치유제다.

한식을 만들어 먹을 때면 우리 집안의 공기만큼은 한층 따뜻해진다.

뱃속까지 든든해진다.

한국인의 힘은 역시 밥심에서 나온다.

오늘도 환풍기를 틀고 김치찌개를 끓인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결 중 하나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힘내 싸우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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