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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Aug 25. 2019

나는 독일에 요리 유학을 왔다

어릴 때 엄마가 제일 자주 하셨던 말씀이 있다.


“오늘 뭐 먹지?”


그땐 왜 저런 고민을 하실까? 의아했다. 엄마가 해 주시는 대로 밥을 먹는 입장에선 그 음식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독일에 와서야 엄마의 고민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매일 가족을 위해 음식을 하셨던 엄마의 수고로움도 알게 됐다. 며칠 전엔 2시간 끙끙대며 김밥을 싸다가 김밥천국에 독일 체인점을 문의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었다. (분명 대박 날 것 같은데)


사람 개개인에게는 취향이란 것이 있기 마련이기에 나는 요리나 집안일에도 적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 같은 경우 청소는 좋아하지만 요리는 특기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우선적으로.. 성인이 된 지금도 엄마는 나를 보면 “많이 먹어라”라고 잔소리를 하실 정도로 먹는 것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렇다 보니 요리하는 것에는 더욱더 흥미가 가지 않았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맛의 배합을 잘 아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모든 레시피를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요리 블로거들이 언급한 정량대로 넣는 즉 글로 하는 요리파였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2시간에 걸쳐 만든 요리를 남편이 10분 만에 뚝딱 끝내는 모습을 보면 왠지 허탈했다.  보통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요리하는 사람의 기쁨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힘들게 만든 결과물이 단 몇 분 만에 사라지는 현상이 허무했다고 할까. 기회비용 대비 결과가 미약하게 느껴졌다. (아마 먹는 대상이 남편이 아닌 자식이었으면 달랐을 거라 생각한다.)


독일에 오기 전에는 서로 바빠서 외식이 잦았고 나보다는 남편이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일주일에 한 두 번하면 많이 하는 편에 속했다. 하지만 독일은 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일단 내가 남편보다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그는 매일 오전 9시에 학교를 가서 저녁 7시 즈음에 귀가하는 패턴을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내가 요리를 전담하게 되었다. 밥 하는 게 싫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요리 못하는 사람들의 대안으로는 외식과 배달이 있지만 이것은 한국이라는 외식과 배달이 아주 발달한 국가에서만 가능한 처방전이다.

독일 외식 비용은?


독일은 기본적으로 외식 값이 서울과 비슷하거나 좀 더 비싸다.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둘이 먹는다고 하면 40~50유로는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과 비교했을 때 엄청 비싼 가격도 아니기 때문에 값이 좀 나가도 맛이 있으면 가끔씩이라도 먹겠는데 대체적으로 가격 대비 맛이 없다.


독일 음식이 맛없다는 정설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지금껏 독일에 놀러 온 친구들 가운데 그 누구도 음식이 맛있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 “음.. 괜찮네”라고 말했다면 그 마저도 다행이다.

독일 내 한식당도 방법인데, 역시 비싸다. 맛은 천차만별이다. 맛있는 곳도 있지만 만두 6개를 튀겨서 10유로를 받는.. 이건 너무 한다 싶은 곳도 있다. 빈약한 만두 접시를 울며 겨자 먹기로 먹고 나오면 차라리 내가 해 먹고 말지 싶어 진다.

그나마 자주 가는 곳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아시아 레스토랑인데.. 내가 독일에 와서 이렇게 쌀국수를 많이 먹을 줄은 몰랐다. 독일엔 베트남 레스토랑과 케밥집이 진짜 많다. 동남아 음식이 유럽을 휩쓸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러한 이유로 외식 횟수는 한 달 평균으로 봤을 때 아예 안 할 때도 있고 지인을 만날 때 가는 게 거의 전부다.

집밥을 해 먹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외식과 대조적으로 장바구니 물가는 한국 대비 훨씬 저렴하다. 처음 독일 마트에 왔을 때 식료품 가격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물이며 각종 채소, 고기류 등이 상상초월로 저렴했다. 쇠고기를 예로 들어보면 꽃등심 400g을 8~10유로대에 살 수 있다. 돼지고기는 더 저렴해서 삼겹살 400g은 3~4유로대에 판매한다. 물론 이곳에서도 친환경 유기농 식료품은 비싼데, 한국 가격을 생각하면 그 마저도 저렴하다. 이렇게 저렴할 수 있는 데에는 세금의 영향이 크다. 보통 독일 제품 등에 대한 세금은 19%가 붙는데 필수 식재료는 7%로 책정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식료품 등에 대한 조세 저항률은 낮기 때문에 세금에 차별화를 두는 건 한국에서의 도입도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보는 바이다.)

같은 이유로 쌀, 우유등은 마트가 달라도 제일 저렴한 기본 가격은 동일하다. (예를들어 독일 모든 마트에서 밀히 라이스(쌀) 59센트이다.) 정부의 농가 면적당 지원금, 지역 농산물 위주의 공급 정책 등이 저렴한 가격에 기인한다.  



밥하기가 참 싫다가도 음식의 질과 가계 주머니 사정, 무엇보다 한식을 좋아하는 남편. 이 심박자가 절묘하게 합을 이루어 내 한 몸 희생해 밥을 하게 만든다.


독일인들 역시 외식보다는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집들이 많다. 그들도 외식비용이 비싸며 식료품은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해도 저렴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족 중심의 독일 문화도 기인한다.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은 저녁을 가족과 함께 먹는다. 그리고 내가 봤을 때 독일에선 딱히 저녁에 나가서 할 것도 없다. (이곳의 저녁 10시 분위기는 한국의 새벽 2시와 비슷하다. 밤 문화는 한국만 한 곳이 없다.)


독일에 사는 우리에게 집밥은 결국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니, 적성에 안 맞다고 노래를 부르던 요리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화음을 찾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독일에 살게 된 많은 한국인들은 우스갯소리로 요리 유학을 왔다고 한다. 수미네 반찬과 백종원은 내게 빠질 수 없는 키워드가 되었다.

치킨은 시켜서 먹는 것인 줄 알았는데 집에서도 튀길 수가 있었다. 한국에서 짬뽕 분말을 공수해 와 짬뽕을 만들기도 했고, 독일식 김치라고 할 수 있는 절임 양배추 자우어크라우트를 응용해 김치찌개를 끓였으며, 콜라비로 깍두기를 담갔다. 스테이크나 굴라쉬가 일반적인 독일에서는 불고기용 얇은 고기를 당연히 팔지 않는다. 썰어 달라고 요청을 해야 하는데 해 주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다. 경험상 정육점에서는 대부분 썰어주셨고, 마트는 직원에 따라 달랐는데 썰어 주시면 약간의 팁을 드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내가 자르고 말지 싶어서 슬라이서를 샀다. 고기를 덩어리째 사다가 얇게 썰어서 불고기를 만들어 먹는다.

나뿐만 아니라 옛날 방식으로 김치를 땅 속에 묻었다는 한인분도 있었고 깻잎은 기본이고 미나리까지 수경재배로 심는 분도 봤다. 한식에 대한 열망은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매일매일 요리를 하다 보니 먹는 것에 딱히 관심이 없는 나로선 먹는 것뿐만 아니라 음식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 역시 위로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가령.. 어떤 나의 감정을 재료 손질에 치환해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이 방법은 특히 부부싸움 후 한국처럼 어디 갈 데도 없는 답답한 상황에서 주효했다.


나물을 물에 씻으며, 성난 마음을 헹구고 송송송 채소를 썰며, 분노를 잘라내고 아보카도를 손질하며, 실망의 씨를 빼낸다. 소금을 톡톡 뿌리며, 기쁨과 감사를 섞는다. 재료를 손질하며, 내 마음도 손질한다. 정갈하게.. 깨끗하게.. 쓰임새 좋게.. 그렇게 말이다.


흐린 날이 많은 날씨 탓인지 감정 기복이 들쑥날쑥 인 독일에서 오롯이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레시피는 다름 아닌 요리였다. 매일 하는 일에 의미부여를 한다는 것은 지겨움과 하기 싫음, 귀찮음을 반려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지금도 밥하는게 딱히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한 그릇의 밥을 먹기까지 그 안에 담긴 노력과 집 밥의 건강함, 그 위에서 오가는 일상적인 대화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가 된다는 점이다. 같이 집밥을 먹을 때 가장 사람사는 냄새에 가까운 냄새가 난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을 같이 밥먹을 먹는 사람이란 의미의 식구(食口)라고 부른다.


덧붙여 본인이 수고스럽더라도 자식들의 영양을 생각해서 매일 갓 지은 밥을 해 주시던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는 독일행과 매일의 요리가 느끼게 해 준 깨달음이었다. 가끔은 내가 엄마께 새로 알게 된 레시피를 알려드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기하게도 이 나라에서의 불편함은 때때로 내가 새로운 감정에 눈뜨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나저나 대체 오늘은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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