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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Aug 29. 2019

독일 채식주의자들을 사로잡은 사찰음식

“한국에도 바다가 있어요?”


나를 멍~하게 만들었던 클라우디아의 질문이었다. 그녀는 소위 유럽의 상류계층들이 다닌다는 학교를 나왔고 쾰른에서 언론학 석사를 마치고 기자 및 저술가로 활동하는 독일의 지식인층이다. 이런 그녀조차 한국에 대해 전혀 무지하다는 것이 나로서는 약간 충격이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라고 자신 있게 소개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내가 인지했던 것보다 유럽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더 잘 몰랐다. 이 질문 외에도 “한국, 일본, 중국은 같은 언어를 씁니까?” 라든지, “한국 사람들은 생선을 먹습니까” 라든지.. 각양각색의 질문들을 받아봤다.

대부분이 한국 하면 북한, 삼성, 현대차, 서울, 방탄소년단 및 K-POP 정도를 떠올리며, 꼭 덧붙여 북한에서 왔는지 남한에서 왔는지를, 혹시 북한은 가봤는지를 물어본다.


한국문화에  좀 관심이 있다 하면 방탄소년단의 팬인 경우다.(방탄소년단은 한국을 알리는데 정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랑합니다^^) 내가 사는 곳이 작은 도시여서 인지 몰라도 지금까지 한국을 여행해봤다는 독일인을 딱 두 번 만나봤다. 심지어 서점을 가 봐도 한국 여행책은 없다. 보통 유럽에서 아시아를 여행한다면 가격이 저렴한 태국이나 베트남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 가뭄에 콩 나듯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들에게 받은 질문 가운데 1위는 의외로 “채식”이었다.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결과로 글쓴이 에게만 해당됨을 밝힌다.)


“혹시 정관스님 알아?”


어느 날 수잔나는 내게 한 동영상을 보여주며 "정관스님"을 아냐고 물었다. 그녀가 이 스님을 알게 된 계기는 넷플릭스의 <Chef’s Table>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나는 전혀 몰랐다. 검색해보니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사찰음식을 만드시는 스님으로 출연해 국내에서도 이미 유명하신 분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d65B5wObqA&feature=youtu.be


이 다큐멘터리는 정말이지 명작이어서 한국인인 나도 스님이 계신 백양사 천진암에 가보고 싶게 만들었다. 그녀는 언젠가 꼭 한 번 이 스님의 쿠킹클래스에 참여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수잔나가 아니어도 한국 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채식이나 템플스테이에 대해 소개하면 굉장히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이는 채식과 환경에 대한 독일 사람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


독일 인구의 대략 14%가 채식주의자?!



독일의 채식주의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대략 14%.. 800만여 명에 이른다. (이표에는 14%로 나와있긴 하지만 통상 10%정도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유럽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한국은 2%  (한국 채식연합 집계) 정도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재료도 다양하고, 레스토랑에는 대부분 채식 메뉴가 있다. 화장품, 각종 생활용품, 영양제 등.. 관련 제품들이 넘쳐난다. 독일인의 78%가 친환경 bio 제품을 구입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판매율은 상승 곡선을 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베를린에는 유럽 최초의 채식 슈퍼마켓인 Veganz가 인기를 끌고 있다.


독일연방농업부 BMEL , 2018 기준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발간한 ‘세계경제대전망 2019’을 통해 올해가 ‘비건의 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때문에 독일에서 손님을 초대하거나 음식을 만들어 갈 일이 생기면 상대가 채식주의자인지를 사전에 물어보는 것이 예의다. 가장 가깝게 우리 옆집에 사는 마가렛 네도 채식주의자다.


그렇다고 모두가 채식주의자를 반기냐? 그것도 아니다. 특히 기성세대들의 경우 자식들의 채식주의자 선언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맙소사!! 오늘 내 동생이
채식주의자를 선언했어.”


얼굴이 울그락 붉으락이 되어 나타난 친구 A의 전언이었다. (그녀는 고기를 사랑한다. 한국 음식도 불고기와 삼겹살을 좋아한다.) 동생이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얘기했을 때 그의 가족들은 선택은 인정하되 달가워하진 않았다. 특히 부모님은 “차라리 네가 동성애자인 게 나을 거다”라며 유유히 그 자리를 뜨셨다.  


인구의 10%가 채식주의자이니 여전히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90% 중 당연히 반대 입장이 존재할만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채식주의자를 선택했을까?  


처음엔 다이어트로 시작했다가 몸이 좋아지는 걸 느껴서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하고, 동물 학대 다큐멘터리를 봤거나, 친구의 권유가 있었다거나, 반려동물을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등 계기는 여러 가지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채소만 먹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채식주의자가 된 것엔 결정적으로 합당한 이유가 있으며, 자신만의 철학, 신념이 투영된 결과다. 일종의 인생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독일 사람들이 한국의 사찰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왜 사찰음식일까?”


예를 들어 정관스님은..

"오이 요리를 할 때 나는 오이가 된다"라고 말씀하신다.

"밥을 먹을 땐 밥을 먹는 것만 생각한다."고도하신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오롯이 그것에만 집중하는 것은 마음수행의 1단계다. 이를 음식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알쏭달쏭 한 선문답 같은 화두를 주제로 만들어지는 불교에 담긴 요리 철학은 사고하고 토론하는 걸 좋아하는 독일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기며 매력적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매일 발우공양을 한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스님들의 식사 법 ‘발우공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발우공양이란 먹을 만큼만 담아서 남김없이 식사하는 것이다. 스님들은 오늘 내가 먹는 음식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버리는 것을 금기한다. 독일에서 불교 인구는 극히 소수지만 독일 사람들은 매일 발우공양을 한다. 정말 음식을 소스 한 방울 남기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음식은 남기지 않는 것이라고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가끔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음식을 남기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심지어 남은 소스는 빵으로 야무지게 발라서 다 먹는다. 음식을 남기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동양인인 나에게는 양이 너무 많은 것도 있었지만 반성했다. 과연 지금까지 내가 버린 음식물은 얼마나 될까.


음식을 남기면 안 되는 이유는.. 흙, 물, 햇살, 바람, 농부의 땀으로 하나의 채소가 완성되기까지 우주의 온 생명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에 감사한 마음으로 남김없이 먹어야 한다.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으며 계절을 거스르지 않는 제철 음식, 천천히 먹으며 내 몸과 우주의 온 생명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는 식사. 게다가 이 음식을 사찰, 즉 자연안에서 먹는다니.. 환경주의자 독일인에게는 이보다 더 근사한 문화체험은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 고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는 먹는 편이다.

                                                                                            

인간의 식단에서 육류를 제외시키는 것은
인간 의식의 역사에서 인류학적 전환을 의미한다.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한때 <육식의 종말>을 보고 진지하게 채식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자신이 없는.. 관심은 늘 갖고 있는 1인이다. 그렇기에 동물과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 신념을 지키기위해 생활 방식을 바꾸고 노력하는 모습은 근사하게 다가온다. 독일이 환경, 채식주의자, 동물 보호라는 키워드의 대명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는 사회적 성숙함도 토대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수성이 없는 세상, 폭력도 강요도 없는 평등한 자유의 삶 자연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존재. ”

한강 작가가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말하고자 했던 주제 의식은 추구하는 방식은 달라도 우리 모두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독일 친구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채식주의자>, 정말 반갑기도 하고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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