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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Sep 11. 2019

독일과 한국, 세계 어디에서든 인간관계는 어렵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최근 또 한 번의 이별을 했다.

내가 사는 라이프치히에 몇 안 되는 한인 중 한 가족이 한국으로 귀국했다. 우리랑 비슷한 시기에 와서 정착기부터 적응기까지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분들이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해외 생활에 잘 적응하려면 이별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크고 작은  이별을 경험하지만, 각자의 이유로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외국이란 공간적 특수성 탓에 헤어짐이 잦은 게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인생 자체가 이별의 연속이기도 하다. 만남과 헤어짐은 인간관계의 필수불가결적인 요소이며, 이 굴레에서 벗어났다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라는 김광석의 가사는 아무리 곱씹어도 명문장이다.

교육, 직장, 학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독일에 오고 또 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앞서 가족들처럼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했던 사람도 있지만, 정착기에 필요한 정보나 도움만 받고 얌체처럼 연락을 끊는 이들도 있었다. 처음엔 그들이 야속했고,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퍼주기만 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혹시 내가 문제가 있나?” 자아성찰 하기도 했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모르게 상처 받기 싫어서 처음 보는 이들에게는 무조건 마음을 닫기도 했다.


그러다 1년 즈음 지났을 때였나.. 불현듯 그냥 그 상황에 충실했으면 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연락 두절쯤이야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아주 작은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었다.. ‘외국 나오면 한국인을 조심하라’는 속어처럼 가끔 독일 내 한인 커뮤니티를 보면 같은 한국인인데 이거 너무 하잖아.. 싶은 일들도 많이 올라온다. 한인에게 돈을 떼였다거나, 나쁜 일을 당했다거나 하는 류의 글들이 잊힐만하면 게시된다. 그런 상처를 받지 않은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실 내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도와준 것도 아닌데 배은망덕이라며 욕할 필요도 없었고 서운해할 것도 없었다. 단지 그들은 그 시기에 내 도움이 절실했던 것이고, 인간 대 인간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기에는 서로가 맞지 않았던 것뿐이다.


인생에서 “인간관계”는 무릎을 탁-칠 말한 정답이 없는 어려운 숙제다. 독일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간관계는 어려웠다. 하물며 한국에 살았다면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을, 전혀 공통분모가 없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독일’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친해진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어불성설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을 만나게 되는 건.. 가끔 미친 듯이 한국말을 쏟아내고 싶을 때가 있으며..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같은 민족이라는 공감대로 서로를 쓰담 쓰담해주며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는 그 단 하나의 공통점은 기댈 곳 없는 타국에서 형언할 수 없는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큰 기대를 해서도 안 된다. 성인이 되어서 새로운 친구를 맺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통해 체득해왔다. 뭐랄까. 그들과 나 사이엔 약간의 선이 있다. 지켜야 하는 어떤 적정선 같은 것 말이다. 마냥 중고등학교 친구들처럼 편하지는 않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에 있는 오래 형성된 인간관계 역시 다른 이유로 약간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7~8시간의 시차가 크다. 그만큼 그들과 내가 딛고 있는 땅의 감촉이 다르다. 가령 내가 눈뜬 아침 시간에 친구들은 이미 활발한 대화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갑자기 끼어드는 것이 개면 쩍을 때가 있다. 내가 대화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느낌이랄까.


대화의 주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집을 사고 아이를 낳고 승진을 하고..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현재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나 역시 한국에 있었다면 분명히 중요한 주제였을 것이다.) 공감이 힘들다.  그들 역시 매일 비가 오는 우울한 날씨와 독일어 배우기의 어려움을 다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친구도 자주 만나야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 가끔 연락을 하다 보면..


“잘 지내?”

“응 잘 지내, 너도 잘 지내지?”

“별일 없지 뭐. 너도 외국에서 건강 조심해”


이런 형식적인 문답으로 끊나 버리기 일쑤다.

정확히 꼬집어서 설명할 순 없지만 나 혼자 주변을 빙빙 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이따금씩 찾아왔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친구들은 나를 반겨줄 것이고 나 역시 그들처럼 살아갈 것이다.


다만 이곳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이 시간 동안은 약간 빗나간 다른 궤도를 빙빙 돌 수밖에 없다. 여기도 흡수되지 못하고 저기도 흡수되지 못해 어중이떠중이처럼 이방인이 된 듯한 나 자신을 발견할 때 향수병이란 것이 터져버리곤 했다. 흡수되지 못함의 서러움이 표류한다.


Eugene de Blaas /The Friendly Gossips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이 모든 것은 외국에 살기로 결심한 나 스스로가 짊어져야 할 ‘무게’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야 외국에서의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누굴 탓할 것도 없고 탓할 사람도 없는 나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해야 할 문제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좀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여기도 저기도 속해있지 않은 경계인이란 것이 묘하게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매슬로우가 위계론에서 설명했든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과 소외감을 싫어하고 타인과 접촉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그렇지만 수만 겁의 생애 한가운데 무소속이 편한 시기도 있다. 혹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독일에서 무소속에 가깝다.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학원을 다니고 글을 쓰고 꽤 단조로운 일상일 뿐인데, 이 가운데에서도 관계라는 것이 생성되기는 한다.

몇몇 독일인, 혹은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 친구들과 인연이 되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연락이 끊긴다는 것에서 짐작이 가듯 외국인은 외국인대로 어렵다. 같은 모국어를 쓰는 한국인도 힘든데 외국인은 말해서 무엇하랴. 더군다나 몇십 년을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일해왔으며 이미 인격적인 자아가 익을 때로 익은 성인의 경우 더욱 그렇다.


처음에는 서로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만났다가 언어적 한계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어떤 접점을 못 찾게 되고 서로 답답해하는 일들이 생겼다.


내가 느낀 독일 사람들을 과일에 빗대자면 ‘납작 복숭아’였다. 처음에는 친해질 수 있을지언정 더 이상 칼날이 들어가지 않는 복숭아의 딱딱한 씨앗처럼 독일 사회에는 외국인인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어떤 지점이 있었다.


그녀와 대화하다 보면 가끔 그런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복숭아를 자르는 것과 비슷하다.
겉은 부드럽지만 어떤 지점에 이르면  더는 날이 들어가지 않는다.
진짜 감정은 딱딱하게 응결된 채 부드러운 과육 아래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김영하/<퀴즈쇼>


미국인은 처음 만나는 그날부터 너와 나는 친구다. 하지만 독일인은 다르다. 그들은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굉장히 신중했다. 

독일 정착기에 우리는 한 독일인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외국인청을 갈 때 통역을 해주었으며, 각종 독일어 서류를 해석해 주었다. 우리가 집을 알아볼 때도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팁을 주기도 했다.


“정말 고마워. 나는 네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라고 얘기했는데 상대의 돌아오는 답은 뜻밖이었다.


“친구? 독일에서 친구는 진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면서 서로의 마음을 다 내어줄 수 있는 사이를

‘친구’라고 해”


정색하며 말하는데 대꾸할 말이 없었다. 사람 무안하게 저렇게 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싶으면서도 반박할 여지도 없어서 나는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그는 뭐랄까. 어떤 인류애(?) 차원에서 우리를 도와준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반전은 독일인은 이 딱딱한 씨앗의 지점을 통과한다면,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가족처럼 친구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관계까지 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워낙 유년시절에 형성된 교우관계를 중시하고, 가족 중심적인 문화가 자리잡아 있으며, 약간은 무뚝뚝하고 자존심 강한 그들의 성향 자체가 다가가기를 망설이게 한다


나는 지금까지 독일에 살면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2년 이상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두 명 있다. 관계에 큰 욕심이 없는 나로서는 그들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한국이 그리울때가 친구와 허심탄회하게 치맥 한 잔 하고 싶을 때라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더불어 우리는 이야기했다. 독일에서 만난 한국인·독일인을 통틀어 나중에 돌아가서도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인연이란 상대뿐만 아니라 나 역시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가능하다는 전제가 따라붙는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법이다. 누군가는 좋은 관계란 네 가지 동사가 알맞게 공존하는 관계를 뜻한다고 했다. 네 가지 동사란..


주다, 받다, 요구하다, 거절하다


나의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는 태도와 내게 따뜻한 마음을 주는 사람으로부터의 받음이 있어야 어떤 관계든 신뢰와 사랑이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사람들 사이의 많은 문제가 거절할 줄 모르고 주기만 하면서 남에게 끌려다니거나. 줄 줄은 모르고 받으려고만 하는 이기심 때문에 힘들어진다.


주다, 받다, 요구하다, 거절하다

과연 나는 네 가지 동사의 균형을 얼마나 잘 맞추고 있을까?


키스 해링 <팝숍 시리즈>


밝은 노란색과 어두운 보라색을 같이 두면 각각의 밝기는 최대치가 되는 동시에 조화의 느낌 역시 절정이 된다. 돋보이면서도 동시에 잘 어울리는 존재가 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과 어울리며 나만의 고유의 색을 유지하는 것..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앞으로 만나게 될 많은 풍경과 관계 속에서 가장 밝은 조화와 색깔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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