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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Sep 12. 2019

명절 스트레스가 없어서 오히려 아웃사이더가 된 듯했다

향수병의 맹공격, 외국에서 보내는 추석

#나 지금 출발!

#아마 나는 저녁에나 도착할 것 같은데?

#그럼 저녁 맥주 회동이나 할까?


카톡 카톡~! 명절을 맞아 친정을 찾은 친구들이 만날 시간을 조율 하기 위한 메시지가 단체 카톡에서 쉼 없이 오간다. 이 단톡에 참여하고 있지만, 대꾸할 말이 없는 한 사람..


‘나’다.


“좋겠다.. 좋은 시간 보내” 로 마무리하고 유유히 퇴장할 뿐이다. 

이러한 패턴의 반복을 3년째 하고 있다.


친구들은 명절 스트레스 없는 나를 부러워했지만, 오히려 나는 그래서 아웃사이더가 된 기분이었다. 

"아마 한국에 있었다면", 막히는 교통체증에 볼멘소리를 하며 두 손 가득 바리바리 싸들고 친정집에 갔을 텐데.. 친구들도 만나러 나갔을 텐데.. 수많은 If 용법들을 떠올렸다. 분명 현실은 교통체증, 시댁 스트레스 등을 운운하며 진저리쳤을 명절일텐데, If용법의 범주에는 이상하게 "그리움" 만 포함이 된다.   


아그데 아그데 한 곳에 모여 있는 열매들처럼, 때로 즐겁고 때로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뒤돌아서면 늘 보고 싶은 한국의 사랑하는 그대들과 아그데아그데..옹기종기 살고 싶다.


아그데아그데...
그리운 아그대 아그대..



외국에 살다 보니 (나의 경우) 향수병이 오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명절과 크리스마스가 포함된 연말, 그리고 가끔은 이유 없이 ‘그냥’이다. 그래도 맷집이 좀 생겼다고 초창기보다는 명절을 대하는 자세가 유연해졌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제일 처음 독일에 왔을 때 나는 엄마가 보내신 명절 음식 사진만 보고도 눈물을 쏟았다. 그나마 추석은 독일의 날씨가 괜찮아서 넘어갈만한데, 혹독한 겨울 한가운데에 있는 설날엔 눈물 콧물 범벅 태평양 바다를 만들어 냈다.


독일은 평일과 다름없는 명절이지만 독일에 사는 한인들은 나름 조촐하게 전 등의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지인들끼리 모여서 소소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우리 역시 이 시기를 덜 쓸쓸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같은 동네에 사는 한인 가족들의 초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솜씨 좋은 그녀 덕분에 명절 음식도 얻어먹고 다복한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가는 손에 ‘전’까지 들려주실땐, 친정엄마가 생각이 나 더욱 마음이 뭉클했다.

                                              

                                              

슬프게도 이 이웃이 한국으로 돌아간 올해는 지인의 초대도 없고, 딱히 명절 음식을 만들 의욕도 나지 않아서 ‘추석엔 떡국’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우며 ‘전’ 대비 비교적 만들기 쉬운 ‘떡국’으로 고향에 대한 향수를 채웠다.


음식만큼 향수병을 달래주는 것도 없으며, 반대로 음식만큼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것도 없다. 신기하게도 명절이 되면 어머니가 부치시던 전 냄새.. 온 집안을 기름기로 가득 차게 만들었던 그 전 냄새가 미치도록 그리웠다.


향수병의 향(鄕)은 ‘시골 향’으로 태어난 곳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동음이의어로서 향기 향(香)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고향의 냄새가 지독히 그리워서 어떤 이들은 재료 구하기도 힘든 독일에서 각종 명절 음식을 만들어내는 신공을 발휘하며, 가슴이 시리도록 그리운 마음 역시 매운 떡볶이 한 접시가 달래 준다.


“향수병은 어떤 느낌이야?”


언젠가 한 번도 외국에 나가 본 적 없는 한 친구가 내게 물었을 때 나는 대답했다.


“글쎄.. 음.. 우리 대학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고향집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 그 어색한 자취방의 공기 있잖아. 뭔가 막막하고 서글픈 기분..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랑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가슴이 막 사무치는데 그게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계속 그 안에서 발버둥 쳐.

향수병은 병은 병이지만 딱히 당장 고쳐줄 특효약 같은 게 없으니까.. 그래서 더 답답하고...”


향수병이 들이닥친다 해도 별 수가 없다. 그나마 명절과 연말은 경험상의 예고편이 있는데, 이따금씩 느닷없이 찾아오는 기습은 막아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비행기 10시간이면 가는 거리지만, 향수병 발병과 동시에 독일과 한국의 거리는 이어질 수 없는 몹시 아득한 곳에 있었고, 나는 이 어색한 공기가 부유하는 나라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가 되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으며 가슴이 답답했다. 30년 넘게 살면서 처음으로 “사무치는 그리움”의 의미를 몸소 체험했다. ‘깊이 스며들거나 멀리까지 미치다’라는 의미의 “사무치다”는 내 그리움의 넓이와 깊이를 대변했다. 이러한 내 그리움의 대명사는 고향이었으며 곧 엄마였다.

결국 향수병=엄마가 성립되는 셈이다.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 엄마가 보내신 사진들을 펼쳐봤다.

달라이 라마가 종이 한 장에서 구름을 본다고 했듯 나는 엄마가 보낸 사진 속 작은 연등에서 엄마의 마음을 봤다.



당신이 시인이라면 이 종이 한 장 속에  
구름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나무가 자랄 수 없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우리는 종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달라이라마



엄마가 없었다면.. 나는 태어날 수 없었을 테고.. 내가 없었다면 엄마는 매일 독일에 있는 자식이 잘되라고 기도하시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나는 저렇게 연등을 단다고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지 않는다. 뭐하러 돈을 내고 연등을 다냐며 잔소리도 했다. 하지만 매일매일 자식을 생각하시는 엄마의 마음은 절대적으로 믿는다.


어쩌면 소원이 이뤄지는 건 그것을 이루기 위한 간절한 마음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저 연등 속에서 엄마의 마음이 반짝거린다. 엄마가 미치도록 그리운 오늘도,
나는 그 반짝거림으로 살아간다.


걸어서도, 자전거로도, 자동차로도 갈 수 없는,

오직 비행기에만 의지해서 갈 수 있는..

8,500km라는 어마어마한 거리에 떨어져 살지라도,

우리는 항상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한 번씩 찾아오는 향수병의 근본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지만 동시에 치료제 역시 엄마다.

나는 엄마의 존재로부터 힘을 얻어

제자리를 찾아간다.

다시 내 마음이 이 땅에 적응하기를 기다린다.  

한국에서 나를 기다리시는 엄마의 마음처럼.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마음이 붉게 타버릴지도 모를..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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