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세상 가장 추운 곳에서 만난 가장 따뜻한 마음

by 여행생활자KAI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공항에 내리자마자 마치 소용돌이에서 갓 나온듯한 강력한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살을 파고드는 강풍은 비로소 북극의 어느 지점, 세상에서 가장 추운 나라에 도착했음을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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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과 동시에 블루라군을 향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은 하얗거나 혹은 까맣거나였다. 눈과 화산재로 덮인 생경한 풍경은 마치 새로운 행성에 왔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이 섬에 대한 야릇한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하지만 이내 그 공기는 다가올 강력한 추위에 대한 경고였음을 알게 됐다.

살을 에는 추위에 떠밀려 블루라군의 풍경을 감상할 틈도 없이 온천장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칼바람에 일시 정지됐던 몸이 온천에 입수하는 순간 “얼음 땡~”

차가움과 뜨거움이 만나 찌릿한 신호가 울림과 동시에 몸의 한기가 스르르 녹았다. 얼음만큼 차가운 대기와 대비되는 뜨거운 온천수, 눈으로 뒤덮인 풍경과 푸르른 물빛의 극명한 대비는 인상적이었다. 머리는 시원하고 가슴은 따뜻했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내 몸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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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블루라군만큼이나 따뜻한 사람들도 만났다. 아버지 환갑을 맞아 여행을 왔다는 미국에서 온 부자(父子)였다. 모녀 혹은 모자 여행은 많이 봤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여행하는 모습은 내게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미국 이민 1세대였고, 아들은 최근 미국에서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성공했단다. 이번 여행은 아버지를 위해 아들이 몰래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 아버지는 무척이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미국이란 나라에 이민을 가서 정착하기까지.. 긴 세월 동안 겪었을 말 못 할 역경들은 아들의 성공 앞에 한 번에 사라졌을 것이다. 연신 아들을 칭찬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표정이 훈훈했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 쑥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도 풋풋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생각났다. 일본으로 첫 온천 여행을 갔을 때 아이처럼 좋아하셨던 엄마 표정이 떠올랐다. 내가 엄마에게 받은 거에 비하면 그 정도의 여행은 빙산의 일각에도 미치지 못할 텐데 엄마는 돈을 많이 썼을 거라며 미안해하고 고마워하셨다.


결혼을 하니 친정 엄마에 대한 마음이 더 애틋해졌다. 한 가정을 만들고 지켜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귀한 일인지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님들의 마음이 매한가지일 것이다. 한없이 주고도 모자라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마음, 본인의 희생은 생각하지 않은 채 자식이 건강하게 장성했음에 감사하는 마음, 자본주의 논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남아 있는 얼마 되지 않은 고결한 가치.. ‘엄마’.


신이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어 엄마를 내려 보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곁에는 엄마라는 천사가 있다.


그날 저녁, 그 아버지께서 추천해 주신 브런치 레스토랑에 갔다. 말씀에 따르면 미국에서 먹어 본 어떤 브런치보다 맛있었다는 것이다. 실상은 맛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극찬할 정도는 아니었다. 짐작해 보건데 정말 형편없는 레스토랑에 가셨더라도, 그분에게는 지금까지 접해 본 어떤 음식보다 맛있는 음식이었을 것이다. 블루라군 역시 지금까지 가 본 어떤 장소보다 멋진 장소로 기억되어 있을 것이다. 부모님의 마음이란 그런 거니까.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함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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