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직업부자가 되고 싶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아이슬란드는 큰 관심을 받았다. 축구 강국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무승부의 쾌거를 거둔 것뿐만 아니라, 역대 월드컵 출전국 중 가장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 나온 선수들의 독특한 이력이 한몫을 했다. 헤이미르 하들그림손 감독은 치과의사, 골키퍼 하네스 할도르손은 영화감독, 수비수 비르키르 사이바르손은 소금 포장 공장에서 일했다. 사람들은 '직업 부자'인 그들을 놀라워했으며, 평범한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빚어낸 그 광대한 에너지에 열광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 평생 한 직장 혹은 많아봐야 두세 개 정도의 직업을 갖는 게 전부인 우리의 개념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묵었던 에어비앤비 호스트 역시 숙소 임대뿐만 아니라 교사와 여행사를 겸하고 있었다.
아이슬란드인 중 하나의 직업으로 사는 이는 드물다. 그들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는 사람들인 셈이다. 이 부분 역시 이 나라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일 것이다. 인생에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욱이 그 직업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이번 여행에서 부쩍 많이 했던 말이 있다.
“백세시대라는데 우리 앞으로 뭐 해 먹고살지?”
나는 그래도 하고 싶었던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행복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는 10대의 꿈을 이뤘고 아등바등 어떻게 버티다 보니 10년 넘게 업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다. 방송계는 빛의 속도로 변해 가는데, 그 속도를 따라가는 건 내 나이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소위 말하는 ‘감’이라는 것도 잃어가는 것 같고,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고, 동료들은 죄다 나보다 잘 나가는 것 같고, 한창 올라가야 할 시기에 독일의 시골에 눌러앉아 있으니.. 과연 방송작가로서의 내 경력은 어디로 향할 수 있을까. 줄줄이 소시지마냥 늘어놓는 신세 한탄에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미나 역시 고민은 매한가지라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밥벌이의 무거움은 육중해진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하얀 눈은 소복 소북 쌓여만 갔다. 행복한 나라 아이슬란드에 왔다고 해서 행복해진 것도 아니고, 직업이 다양한 나라 아이슬란드에 왔다고 해서 제2의 인생으로 향하는 문을 찾은 것도 아니다. 여행을 떠나면 현실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또한 방송과 여행 에세이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사람들을 보며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방송작가가 아닌 전혀 다른 분야에 내 머리와 가슴이 원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바로 그것이다. 4차 혁명이 시작된 이 최첨단 시대에 나는 너무 한 직업만을 고수하며 고리타분한 편견에 갇혀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는 낮에는 북 카페를 운영하고, 밤에는 글을 써요.
그리고 주말에는 가드너 및 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뭐 이런 류의, 멋지게 나를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눈치 보지 말고 재지 말고 따지지도 말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할 수 있는 데 까지는 다 해보고 살아봐야겠다. 나도 직업부자가 되고 싶다. 일단 하고 싶은 일을 저축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