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의 나라 하면 핀란드지만 독일 사람들도 그들 못지않게 사우나를 좋아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핀란드로 여행 갔을 때 내가 묵었던 호텔 사우나 이용자 90%가 독일인이었다.)
독일에서 사우나를 하는 방식은 한국의 여느 스파와 비슷하지만 한 가지 다른 규칙이 있다.
“Textile Free”
사우나와 수영장 시설을 이용할 때는 온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남녀가 함께 이용하는 혼용 사우나라니.
얼핏 들었을 때 외설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독일의 누드 문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고유의 문화다.
독일 혼욕 사우나의 기원은 고대 로마 시대에서 찾는다. 그 시대에 이미 공중목욕탕이 등장했는데 본래 혼욕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점차 남탕과 여탕의 기준이 없어졌으며 단순히 목욕의 목적이 아닌 담화실, 스포츠 레저실 같은 레저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또 한 켠으로는 결혼 전에 몸을 깨끗이 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 때 신랑과 신부가 함께 목욕을 했으며, 이것을 독인 혼탕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오늘 날 혼욕 사우나가 보편화 된것은
동베를린에서 비롯됐다.
독일 통일 전 사회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의미를 담아 나체로 시위를 하거나 공공장소에 나체로 등장하던 문화가 사우나에도 반영된 것이다.
그들에게 누드는 “자유의 표현이자 독재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독일에선 호수에서 옷을 다 벗고 수영을 하거나 공원에서 반나체로 일광욕을 하거나, 신발을 신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맨발의 사나이’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요가 및 필라테스 수업을 할 때도 옷을 갈아 입는데, 성인 남녀가 그냥 같은 공간에서 훌러덩 훌러덩 옷을 벗어 던진다. 여전히 이에 적응 못하는 검은 머리 동양인 꼬꼬마는 조용히 혼자 화장실로 가서 옷을 갈아 입었다.
우리도 가보자 누드 사우나
그래도 독일에 왔으니 새로운 문화를 체험해보자며 야심차게 베를린의 한 사우나 방문 계획을 세웠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번잡한 도심에서 조금만 비껴나가면 이렇게 조용한 장소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먼저, 입장하면 데스크 직원이 첫 방문인지 아닌지를 물어보고 이용 방법을 설명해준다. 사우나와 수영장 이용시에는 누드여야 하고, 그 외 시설 이용시에는 가운을 입어야 한다. 한국 스파처럼 팔찌를 주는데 머무른 시간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고, 이 외 음식을 먹거나 추가로 수건 등을 이용하게 되면 팔찌를 찍고, 나중에 나와서 계산하는 방식이다. 물론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하다.
막상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규모가 꽤 컸다. 풀장이 있고 그 옆으로 사우나공간이 두 군데 있었다. 남편과 서로 미적미적 눈치를 보다가 일단 사우나 안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한 50여 명의 갑남을녀가 옷을 다 벚은 채 옹기종기 앉아 있는데.. 무슨 벌을 받는 것 같기도 하고, 모두 다 벗고 있으니 야하다는 느낌 보다는 전체적으로 살색 덩어리로 보였다고 할까. 장신구와 옷을 벗고 이렇게 모여 있으면 다 똑같은 사람일 뿐인데.. 겉모습은 참 많은 차별을 빚어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어쨌든 어색하긴 어색했다. 뭔가 낯부끄럽고 괜히 혼자 민망했으며 특히 내 눈은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우리 두 사람은 차라리 눈을 감자며 눈을 감아 버렸다.
크나큰 공작 부채를 든 여자의 등장
그러던 찰나에 한 여직원이(그녀는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엄청나게 큰 마치 공작새가 귀환한 듯 한 깃털 부채와 함께 입장했다.
오늘 마침 사우나 이벤트가 있다는 것이다. 밖에서 녹차가 담긴 큰 양동이를 가져오더니 구석에 숯이 쌓여있는 곳에다 거침없이 부었다.
숯에서 조금씩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이어 그녀는 우아한 공작 부채로 마구잡이 부채질을 해댔다.
사우나 안을 왔다갔다 하면서 쉬익~~쉬익~ 소리와 함께 부채질을 연거푸 하자..
갑자기 공간 안에 녹차 향이 쏴아 퍼지면서, 온 몸에 열이 올랐다.
나신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녹차 향을 맡으며
“하아~~~~” 탄식의 소리를 자아냈다.
약간 무언가에 취한 사람 같기도 하고..
흡사 영화 "향수"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했다.
그녀는 계속 바람을 일으켰으며 그와 동시에 나의 몸 역시 부채질에 따라 열이 달아올랐다가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땀이 쫘악 나는데..
몸이 완전히 연소되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좋았으나 계속 하니까 나중엔 숨을 못 쉴 정도로 사우나 안에 열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나갈 수가 없었다.
다들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일한 동양인인 우리가 나가면 모든 집중을 한 몸에 받을 것이며, 애써 채워진 열기가 문을 열게 됨과 동시에 나가버릴 것이 분명했기에 피해를 줄 수 없었다.
발가 벗은 내 몸이 어색하고 뭐고를 다 떠나서 이제 내 몸이 타 들어 간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오로지 내 머릿속엔 ‘참을 인‘ 만이 떠올랐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조금만 참자,
곧 끝날 것이다, 그런데 언제? 참자 참자..’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느껴질 때.. 신기하게도 시연이 끝났다. 끝나자마자 사람들도 마치 지옥에서 탈출하듯이 우르르 뛰쳐나갔다. (역시 그들도 뜨거웠던 것이다.)
밖에서 나눠주는 녹차를 한 잔씩 마시며(물론 다들 누드인 채로.. 밖에선 가운을 걸쳐도 되지만 모두다 가운을 걸칠 정신이 없었다. 내 몸에 물을 공급하는 것이 한낱 가운보다 시급했기 때문이다.) 호흡을 안정 시켰다. 정신이 맑아졌다. 그 순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개운함을 느꼈고, 피로가 쏵 풀렸다.
이 고통과 인내의 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나도 누드 사우나에 동화가 됐다. 기본적으로 아무도 타인에게 신경을 안 쓰기 때문에 편했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랑 비슷한 친근한 몸매의 소유자들이다. 다만 엄청난 몸매의 소유자가 등장하면 본능적으로 눈이 돌아 가는 걸 막을 순 없다;
독일 사람들에게 사우나는 휴식의 공간이다. 규칙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사우나를 할 때 대화의 주제는 성, 돈, 권력같은 내용은 배제하는 것이 에티켓이다. 사우나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마사지도 받을 수 있고, 수영도 하고 자유롭게 누워서 책도 보고 야외 풀장에서 일광욕도 한다. 무엇보다 나는 샤워가운을 입고 한가로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인상적 이었다.
혼욕 사우나는 자유, 환경, 휴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일 사람들의 습성과 딱 맞아떨어지는 문화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워낙 흐리고 비오는 날씨가 많아서 건강적인 측면에서도 사우나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도 언젠가부터 사우나 예찬론자가 되어, 몸이 찌뿌둥하다 싶으면 서로 동시에 말한다.
“사우나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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